AP(Advanced Placement) 의 로드맵을 미리 계획하자
--- 아래의 이야기는 미국고등학교들에 대해서 제가 경험한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한국의 국제학교와는 다소 맞지 않는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
미국 고등학생들은 대학교 수준의 수업을 듣고 학점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된다. 이런 대학교 수준의 수업을 AP(Advanced Placement)라고 한다. 18여년전만 해도 하버드 학부생들이 고등학교 시절에 AP 과목을 5-6개 정도 들었던게 보통이었다(내가 대학원시절에 만나는 학부애들에게 자주 물어봤었다. ㅎ). 하지만 이제는 아이비리그 진학을 목표로 하는 학생들 대부분이 AP 과목을 8개 이상 듣는걸 목표로 하는걸 보게 된다.
AP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위해서 반드시 이수해야 하는 과정이 아니지만 상위권 대학을 진학하려는 학생중에서 AP를 한과목도 안들은 학생은 이제 찾아보기가 어렵다. AP 과목을 많이 듣고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은 그 학생이 미국 고등학교에서 “공부를 잘했다“라는걸 증명하는 방법중에 제일 확실하고 정직한 방법으로 인식되고 있다. 고등학교시절 내내 매 수업과 매 시험에서 최선을 다해가며 한땀한땀 지난하게 쌓아올려야 하는, 꼼수(?)가 좀처럼 통하지 않고, 실력있고 노력하는 학생이 더 좋은 성과를 갖게 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AP 수업은 보통 가을 첫학기에 고등학교에서 수업이 시작되고 각 고등학교의 제도에 따라 학점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 이듬해 5월에 College Board 라는 기관에서 주관하는 5점 만점의 표준화된 시험이 열리는데 그 시험에 등록을 하고 시험을 치루면 7월에 점수가 나온다. 즉 AP는 학교에서 받는 학점과 5월시험 점수, 두개의 과정으로 평가가 이루어진다.
5월 AP시험은 학교에서 제공하는 커리큘럼 이상의 굉장히 다양한 과목에 걸쳐서 시행이 된다. 영어, 미적분학, 물리같은 과목은 2-3개의 세부시험과목이 있고, 중국어, 그리스어, 라틴어등도 있고, 미술사, 세미나, 거버먼트같은 우리에게 생소한 과목도 있다. 이렇게 다양한 시험과목에 비해 학생이 다니는 학교에서 들을 수 있는 AP 과목은 한정이 되어 있다. 그리고 어떤 AP 과목을 학교에서 들을 수 있는지, 어떤 학생에게 AP 수업을 들을 수 있게 해주는지도 학교마다 다르다. 공립학교조차도 표준화되어 있지 않다. 일반적으로 학군이 좋은 타운에 위치한 공립학교들이 더 많은 AP 과목을 제공한다. 학교에서 제공하지 않는 AP 과목도 학생이 원하면 5월 시험을 봐서 결과가 만족스러우면 대학입학원서에 그 AP 시험결과를 제출할 수 있다. 그리고 학교 AP 수업만 듣고 5월 시험은 안보는 학생도 있다.
AP 수업이 실제 학교에서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학교마다 천차만별이다. 학생이 AP 수업을 듣기 어렵도록 자격요건을 까다롭게 만들어 놓은 학교도 있고, AP 수업을 쉽게 들을 수 있지만 대신 좋은 학점 받기가 엄청 어려운 학교도 있다. AP를 듣기전에 이수를 해야 하는 선행과목을 반드시 들어야 하는 학교도 있고(공립학교가 이런 경우가 많다), 처음에 레벨테스트를 하고 선행과목 듣는걸 스킵할 수 있게 해주는 곳도 있다(사립학교가 이런 경우가 많다). 선행과목을 들었어도 최상위 소수의 학생에게만 AP수업을 들을 수 있게 허가해주는 깐깐한 학교도 있고, 다니는 학교에서 제공하지 않는 AP 과목이라도 학생이 듣고 싶어하면 다른 교육기관(가령 인근 community college)에서 들을 수 있도록 학교가 어레인지 해주는 경우도 있다. 어떤 사립학교는 AP 수업자체가 학교 커리큘럼에 존재하지 않지만 상응하는 레벨의 수업을 들은 학생이 AP 시험을 보기도 한다.
이렇게 학교/학생별로 수많은 변수들이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학생이 10학년을 마치게 되면 그 학생이 몇개의 AP 수업에서 어느정도 성과를 가지고 12학년초에 대학원서를 쓰겠다는게 예측이 상당히 가능해지는 상황이 된다. 즉 그때가 되면 상당부분 굳은자가 되버려서 그 시점에서 뭔가 더 열심히 해볼려고 해도 변수를 만들 수가 없어져 버린다. 선행과목을 안들어서 이제는 들을 수 없는 AP 수업이 생기게 되고, 설령 AP 수업을 들을 수 있다고 해도 그동안 쌓은 실력이 부족하면 안좋은 성적으로 끝나게 될까 두려워서 도전을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일례로 그동안 들은 수학과목이 부족해서 AP 미적분학을 들을 수 없는 상황이 되버리면 공대진학은 힘들어지게 되고 설령 공대에 입학을 하더래도 대학에 가서 고생을 많이 하게 된다. 그리고 11학년에 무리해서 어려운 AP 과목에 도전하다가 다른 과목들까지 학점피해를 받을 수 있어서 정말 중요한 11학년 학점을 망치게 될 수도 있다.
이와같이 AP에서 풍성하고 좋은 성과를 갖고 대학원서를 쓰고 싶었다면 훨씬전부터 그 로드맵을 구체적으로 계획하고 그 계획을 실행했어야 하는데 이를 뒤늦게 깨닫고 후회하는 학생과 학부모님들을 그동안 종종 봐왔다. 그래서 AP의 학업 목표와 그 로드맵을 훨씬 이전에 설정하는게 정말 중요하다는걸 점점 더 느낀다.
그럼 대체 언제부터 로드맵을 계획해야할까? 이에 대한 정답은 없겠지만 6-7학년 정도가 어떨까 싶다. 현재 7학년인 중학생 자녀가 미래에 대학원서를 쓰는 시점인 12학년 첫학기에 어떤 AP 과목들에서 어느정도의 성과를 갖고 있는걸 목표로 할지를 미리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그리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12학년부터 역순으로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어떤 수업들을 들어야 하고 어떤 기본 소양을 다져놔야 할지를 따져내려와 보면서 "그럼 7학년에서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를 질문해보는것까지 귀결시켜보면서 로드맵을 세워보면 어떨까.
구체적인 예로서는 다음과 같은것들이 있다.
1. 11학년에 AP Chemistry와 AP Biology 두 과목을 마친다는 목표를 세웠다고 치자. 진학하려는 고등학교를 조사해보니 Regular Chemistry 나 Honors Chemistry 둘중에 하나를 10학년에만 들을 수 있도록 하고 (즉 9학년에는 Chemistry는 못듣게 하고) 9학년에는 Biology를 들어야 한다고 하자. 그리고 9학년 Biology 수업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야 10학년에 Honors Chemistry 반으로 배정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Regular Chemistry --> AP Chemistry 보다는 Honors Chemistry --> AP Chemistry 트랙이 대학원서를 쓸때 더 유리하다. 그리고 Honors Chemistry에서 배워야 AP Chemistry에서 잘할 가능성이 훨씬 크기도 하다. 그렇다면 9학년에 Biology에서 좋은 성적을 내서 Honors Chemistry 클래스를 가는게 중간 목표가 된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중학생때 Biology의 선행학습을 통해 다른 9학년들에 비해서 competitive edge를 만들어 놓는걸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면 9학년 Biology 수업에서 좋은 성적을 받게 되고, 10학년에 Honors Chemistry 클래스로 이어지게 되며 연쇄적으로 고등학교에서 쌓을 과학과목의 스택 전반에 아주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
사실 이건 내가 직접 목격한 이야기다. 한국에서 미국 여자사립고등학교를 와서 처음에 적응하느라 힘들어 하던 어느 학생이 Biology의 선행학습으로 9학년 Biology 클래스에서 압도적인 성적을 내면서 친구들에게 존경을 받기 시작하며 학교 생활이 즐거워지고 모든 과학과목에 자신감을 갖게 된걸 본적이 있다. Biology의 선행학습의 방법으로서는 중학생 시절부터 Biology 올림피아드 준비를 조금씩 시작해보는것도 좋은것 같다. Biology는 암기가 많고 고등학교 수학을 아직 몰라도 공부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학교에 따라서 9학년 Biology도 Regular 와 Honors로 나눠져 있을 수도 있다. 이런 경우 중학교의 수학과 과학성적이 9학년 Biology의 반배정에서 중요해질 수 있다.
2. 이번엔 AP Calculus AB를 11학년에 마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고 치자. 그런데 학교에서 AP Calculus AB를 듣기 위해서는 Geometry(9학년) --> Algebra 2(10학년) --> Precalculus(11학년) 를 먼저 들어야 한다고 한다면 11학년에 AP Calculus AB를 들을 수가 없게 된다. 그래서 Geometry를 스킵하고 9학년에 Algebra 2를 들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 그 방법으로 8학년 마친 여름방학에 다른 기관에서 Geometry 수업을 듣고 받은 크레딧을 고등학교에 제출하고, placement test를 받아서 Geometry를 스킵하는 방법을 고려해볼 수 있다. 물론 이런걸 해당 고등학교가 허용을 하는지를 알아봐야 한다.
또 다른 케이스로서 만일 수학 실력이 아주 뛰어난 학생이여서 AP Calculus BC를 10학년에 마치는걸 계획한다면 공립학교에서는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만일 가능하다고 해도 상당히 복잡한 절차를 거쳐서 학교를 설득시켜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좋은 학군의 공립학교일 경우가 더 힘들다. 수많은 학생들이 위와같은 특출함을 만들고 싶어하기 때문에 학교에서 더 엄격하게 제한을 한다. 이럴 경우에는 실력만 되면 몇단계도 스킵할 수 있는 제도를 갖고 있는 사립학교로 진학하는걸 생각해봐야 한다.
3. 한국인 부모의 자제들은 미국인 가정의 학생들에 비해 영어 라이팅과 미국역사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 경험상 미국에서 태어났고 영어밖에 못하는 교포자제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10학년에 AP US History를 마치는것을 목표로 한다면 9학년에 듣는 World History와 English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10학년에 Honors US History에 배정이 되버릴 수 있고 이런 경우 우선순위에서 다른 중요과목들에 밀려 AP US History를 나중에 들을 기회는 없어진다고 보면 된다. 따라서 9학년에 World History 와 English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연쇄적으로 AP US History와 AP English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서 중학생때 Academic Writing과 Creative Writing을 과외활동으로 꾸준히 해놓으면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 때 라이팅 선생님이 AP English Language와 AP English Literature를 가르쳐본 선생님이어서 학생이 향후에 들을 AP English 수업을 염두에 두고 중학생 라이팅 수업을 진행해줄 수 있다면 일석이조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것 같다. 한국인 학생들이 미국 유명 보딩고등학교에 진학할 경우 학점에 큰 발목을 잡는 경우가 역사, 문학같은 인문학 수업이다. 따라서 보딩스쿨에 진학하게 될 경우 입학전 여름방학에 인문학 수업의 공부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 놓는것도 좋은 계획이다.
4. 이제는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AP Latin은 좋은 성적을 받아놓으면 여전히 미국 유명대학 입학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여겨지는 과목이다. 하버드 졸업식에서도 라틴어로 학부졸업생 한명이 연설을 하는데 수많은 학부생들이 그 연설에 웃고 박수를 치는걸 경험했던 기억도 있다. 8학년에 National Latin Exam을 준비하며 라틴을 시작을 해놓으면 9학년에 Latin 1을 스킵하고 Latin 2 부터 수업을 들을 수 있고 Latin 2(9학년) --> Latin 3(10학년) --> Latin 4(11학년) --> AP Latin( 12학년) 트랙으로 갈수도 있고 혹은 11학년에 AP Latin을 들을 수 있을수도 있다. 그리고 계속 더 높은 레벨의 National Latin Exam에 도전을 해서 크레딧을 쌓아 올려놓으면 더더욱 좋다.
이와같이 진학하려는 고등학교에 대해서 사전조사를 하고 그 학교가 허용하는 범위안에서 상위레벨의 수업으로 바로 넘어가기 위해서, 그리고 그 상위레벨에서도 좋은 성적을 받고 잘 할 수 있도록 중학생 시절부터 적절한 선행학습을 계획해서 실행하면 대학원서를 쓸때 원하는 수준의 학업적 성과를 얻을 가능성이 한결 높아진다. 그리고 만일 학교가 원하는 트랙으로 도저히 지원해주지 않는다면 그 학교가 아닌 다른 학교로 진학을 하는것(가령 사립학교로 진학시키는것)도 고등학교 입학전에 계획해볼 수 있게 된다.
마지막으로 중요한점은 부모님이 희망하는 트랙과 학생이 감당이 가능한 트랙은 별개의 사항이라는 점이다. 만일 학교에서 원하는 클래스에 배정을 안시켜주거나 스킵을 허용하지 않는다면 그에 맞는 이유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 학교를 무조건 설득시키려 하기보다 학생에게 감당이 가능한 계획을 세우고 있는지 다시 한번 살펴봐야 한다. 하지만 이와같이 부모님이 5-6년전부터 선제적으로 계획해서 학생의 포텐셜을 최대한 끌어낼려고 하는것만큼 학생에게 신경을 써주는 학교도 없는것도 사실이기에 학교의 말이 무조건 맞는다는 보장도 없다. 미국대학입시는 정말 많은 변수가 있다. 하지만 학생의 능력에 대한 메타인지와 도전정신사이에서 발란스를 유지하며 미래를 내다보고 준비를 일찍 시작한 사람들에게 유리한 게임이란점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