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 책 한 권을 들고 갔다.
모든 유리창이 열리고 공기가 흐르기 시작한다.
여름 별장이 천천히 호흡을 되찾아 간다."
오래전 아이들 넷을 데리고 제주도에 6박 7일
일정으로 머문 적이 있다.
제주도에 가기 위해 여러 준비를 했지만,
내가 가장 고민한 것이 있다면, 책이었다.
평소에도 책을 손에 내려놓지 않는 나에게
제주도에 가서도 읽을 책이 없다는 것은
마치 국제공항에 혼자 남게 된 미아 같은 심정이랄까
책은 다자녀를 키우는 나에게 일종의 쉼이자
내가 숨을 쉬는 틈이다.
혼자서 있을 수 있는 자유는 정말 중요하지. 아이들에게도 똑같아. 책을 읽고 있는 동안은 평소에 속한 사회나 가족과 떨어져서 책의 세계에 들어가지. 그러니까 책을 읽는 것은 고독하면서 고독하지 않은 거야.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에서,
어렵게 고른 책이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마쓰이에 마사시 작가의 데뷔작이라고 믿을 수 없는
짜임과 문체로 요미우리문학상을 받은 일본작품이다.
뮤라이 슌스케는 건축가이다.
그에게 배우기 위해 찾아간
그의 시선으로 써 내려가는 이야기이다.
초반을 읽고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작가는 만나는 자를 관찰한다. 그의 관찰은 참 친절하고 예의 바르며 성실하고 부드럽지만 치열하다.
구석구석 가만히 다가간다. 이렇게
섬세한 문학이 다 있을까,
별장에 도착해 창문이 열리고 공기가 흐르기 시작한다라는 한 문장에 어떤 건축가가 설계한 곳에 사람이 드나들기 시작한다는 것을 공기가 흐른다라고 표현한다.
그에게 배우기 위해 낸 졸업작품은 휠체어 생활이 가능한 소형주택 설계도를 내고 채용되었다.
가족 중에 휠체어 타는 가족분이 계시냐는 물음에 휠체어가 들어가면 전체 비율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싶어서요,라고 답한다.
구도가 그려지고 공간이 느껴진다.
여름, 그때 그 집에서 느껴지는 감흥이 참 많았다.
섬세하고 디테일한 건축자재들이 눈에 보이고 묵직하고 두터운 교합과 어우러지는 색의 조합들, 현관문에 들어섰을 때 사선 안에 놓인 공간 속 그림 한점,
새로운 공간은 그렇구나.
또는 새로운 사람을 알게 되는 내밀한 흐름,
여행하는 동안 읽으려고 가져온 딱 한 권인데
아이들을 생각하며 만약, 내가 떠나고
어린 시절을 추억할 때
여기, 제주도의 함덕해변의 잘 짜인 건축물
집을 기억하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억은 퇴색하고 서서히 잊히겠지만 사진을 통해
그날의 따스하고 편안했던 감정들이 일어나
아마도 책 제목처럼 오래
여름은 그곳에 남아있게 되지 않을까, 꿈꾸었다.
시야가 공감각적으로 열리는 작품이다.
문학은 환조에 가깝다.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평면으로 보이는 것 안에 전체가 눈에 들어오게 되기
때문이다.
몸은 게으르지만 생각은 회전하는 책을 읽으며 내 안의 모든 집에 대한 추억들이 되살아 나고
흐른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마쓰이에 마사시
11월 다음 주면 곧 수능인데 벌써 두꺼운 외투를 꺼내 입어야 하는 날씨에 왜 갑자기 여름을 추억하는 글을 썼는지 의아해 할 수도 있겠다.
여름, 그곳에 남아있던 공간의 온기를 가져와
가을을 살고 그 치열하게 무더웠던 오래 지속되던
한 여름의 지루함과 무더위도 지나갔고
어느새 겨울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지나간 시간에
마침표로 책갈피 하나 꽂아 두고 언제나
꺼내 읽으며 아이들과 함께 했던 시간들에
엄마가 보내는 편지인 것이다.
엄마는 말이야, 너희랑 함께 있어 참 더할 나위 없이
풍요롭고 아름다웠다고
이 책을 떠올리고 기억해 읽어 주면 좋겠다고
자주 그날을 기억해 줄 책 한 권을 오래 소중하게
고른다.
시간은 붙잡을 수 없이 빠르게 지나가고 수많은
책이 출간되고 있지만, 엄마가 붙잡은 책 한 권이
마법처럼 너희들을 느린 시간으로 초대하길
바라...
여섯째 막내가 태어나기 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