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ID19 - 정리해고 당하다
피도 눈물도 없게 Laid-off
8주 트레이닝 연후, 보통은 13주 차에 현장으로 투입되는데, 경영진이 이번 분기 마감까지 쪽수를 하나라도 더 늘려 숫자를 만들어 내겠다는 확고한 의지로, 당장 9주 차부터 현장으로 떠밀려 나갔다. 현장에 나선 지 고작 2주가 넘어가던 차, COVID19이 미국을 빠른 속도로 덮치며, 내 뒤에 트레이닝을 대기 중이던 트레이니들이 모두 잘려나갔다고 했다. 불안불안하게 3주가 지나가고, 4주를 마무리하며 나를 포함 함께 트레이닝을 받은 CA Central, Ventura, San Francisco, Sapokane, Arizona 지점의 20여 명 신입 세일즈렙 모두가 정리 해고 통보를 받게 되었다. 너무 원하던 회사에 입사하게 되어 무척 꿈만 같았는데, 지금 일어나는 일은 더 꿈같기만 하다.
냉정한 영업의 세계
영업직이라고 생각하면, 숫자와 성과에 민감하고 그게 수입으로 직결된다. 물론 이제 갓 현장에 나선 신입에게 기대라는 것은 결국 'You just need to go against your previous year's number'이지만, 막상 피부로 느끼는 압박감이 엄청났다. 그러던 와중에 이 COVID19이 시작되었다. 그 어느 주말, Costco, Sam's club 그리고 Walmart까지 모든 매장의 선반이 텅텅 비던 바로 그때부터였다.
고객층이 길거리의 수많은 레스토랑들인데, COVID19 여파로 봉쇄에 가까운 정부 지침이 내리고 레스토랑은 오로지 take-out 혹은 delivery만 가능하게 되었다. 하루아침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러한 운영 형태가 갖춰지지 않은 곳이 많을뿐더러, 갖춰졌다 한들 매출 자체가 기존의 비용을 감당하기에 이해타산이 맞는 매장 자체가 얼마나 될까. 더구나 대부분의 미국 시민들은 사재기를 통해 쌓아 둔 식량들이 가득이고 계속해서 사재기에 가까운 식량 비축이 이어지고 있으니, 누가 굳이 레스토랑을 이용하겠는가. 막말로 이번 사태가 장기화되면 망해 나가는 레스토랑들이 수두룩 할 것이라는 전망도 이어진다.
그래서 이 미국 최대의 식자재 납품 업체는 기존 레스토랑에 공급하던 거대한 물량을 각 거점 물류센터에 대부분 품고 있는 셈이 된 것이다. 왜곡된 수요와 공급 상황 탓에, 어떤 카테고리는 물량을 더 끌어다 놔야 하는데, 어떤 카테고리는 영 빠져나가지 않으니 재고관리가 되지 않아 물류 순환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특단의 조치로 기존에 고려하지 않았던 마트와 같은 소규모 마켓들은 오히려 물류 대란을 겪고 있다고 하니, 그 방향으로 문을 두드려 이것들을 처리해 보겠다는 지침이 내려왔다. 나가서 팔든지 아니면 전부 폐기 혹은 기부해야 된다고, 숫자를 만들어 내라고. 그렇게 세일즈렙 모두에게 관련 리드가 전달되었다. 발에 불이 나게 모든 곳을 돌아다니며 문을 두드려 보았지만 기회가 열리는 곳이 많지는 않아 더 낙담하게 되었다.
이 거대한 물류 공룡은 여지껏 마주하지 못했던 위기 앞에서, 반토막 난 실적을 손에 들고, 불과 이 사태가 2주 정도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결국은 칼날을 날카롭게 세워 제 살을 깎아내기로 결정해 버리고 말았다. 선임된 지 얼마 되지 않은 CEO에게 현재 일어나는 모든 변화는 꽤나 부담이었던 모양이다.
더욱더 냉정한 미국의 기업 현장
화상 회의로 대체 중인 금요일마다 열리는 기존 district meeting의 시간이 변경되었고, Sales VP의 또 다른 미팅 알림이 메일로 도착했다. 또 현 사태에 대비한 긴급 공지인가 보다 했다. 묘하게 기존 미팅 알림 메일과 달리 별다른 상세 내용이라든지 다른 수신인이 숨김 되어 있음을 발견하고 뒷골이 서늘해졌다. 그리고 그 기시감은 틀리지 않았다.
심지어 시스템 오류로 2분 여 늦게 참여한 conference call에서는 각자의 비품들을 어떻게 회수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중이었다. Lay-off는 그렇게 안내되었다. 누가 참여해 있는지도 모르는 그런 음성 안내로, 즉시, 일방적인 정리 해고였다. 그리고 노트북은 즉각 원격 잠금 처리되었고, 핸드폰도 기본적인 전화와 문자 기능만 남겨졌다. 매니저는 위로를 전하며 오늘 중 언제 만나 비품 반납을 할 것인지 물어왔다. 다시 고용이 재개된다면, 너희들은 트레이닝을 다 마친 인원들이니 아마 제일 먼저 연락이 갈 것이라고. 별로 위로가 되진 않았다. 언제? 그게 언제가 될 것인데?
같이 트레이닝을 받은 LA 지부 다섯 명의 그룹채팅 방에는 불이 나기 시작했다. 설마 했는데. 이번 정리 해고 대상이 된 인원은 미 전역 모든 거점에 걸쳐 상당히 기계적으로 이루어졌는데, 입사 연수 1년 미만 or 주간 세일즈가 30k에 못 미치는 모두라고 했다. 거기에는 내게 좋은 멘토가 되어 주었던 15년 경력의 세일즈맨도 포함되어 있었고, 20년 근속을 자랑하는 세일즈맨도 목이 날아갔다. 끝으로, 우리 트레이닝을 이끌어준 Learning and development manager도 5년 근속 후 이제 막 진급한 타이틀이었는데 가차 없이 내쳐졌다. 같이 트레이닝을 받은 52세의 베테랑 세일즈맨인 Jay는 약혼자에게 차마 말을 못하겠다며, 퇴근 시간에 맞춰 옷을 갖춰 입고 오늘 일한 척을 했다고 말했다. 다들 충격에 빠져 있었다.
미국은 정말이지, 신자유주의의 끝판왕이라고 늘 생각해왔지만.. 그래서 고용도 유연하지만 해고도 유연하다는 말을 무척 많이 들어왔지만. 이렇게 상황이 어려워지자 아주 당연하게 정리해고의 수순을 밟는 것이, 그리고 그게 막상 나 자신이 되자 믿기지 않는 현실이었다. 어느 회사들은 CEO나 Executive members가 급여를 자진하여 삭감하고 직원들을 어떻게든 품겠다는 뉴스가 흘러나왔지만 우리에겐 해당이 없는 셈이었다.
Unemployment와 COVID19 relief bill
월에 나가는 비용 자체에 규모가 있으니 당장 몇 달도 버티기 힘든 재정 상태인지라 처음에는 헛웃음이 나더니 나중에는 말 그대로 멘붕이 왔다. 당장 취소 가능한 비용들부터 취소하고, 줄일 수 있는 것들을 검토하고, 혹 납부 지연을 허용해 주는 곳은 없는지 확인에 나섰다.
불행 중 다행이랄까. COVID19의 영향이 너무나 급작스럽고 빨랐던 만큼, Trump 행정부와 California 주정부가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하고 나섰다. Unemployment 규모 자체도 전보다 확대될 것이라니 어쩌면 몇 달 간은 무사히 버티며 차분히 구직 활동을 다시 할 수도 있겠다. Relief bill도 통과되어 개인마다 $1,200 정도를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 우선은 Unemployment application 심사 결과를 기다리는 중인데, 이게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운신의 폭이 결정될 것이다.
What's next? - 어쨌든 업계에서는 가장 큰 회사에서 이름난 sales training은 수료하였고, 어쩌면 자연재해나 교통사고와 같은 불행한 연유로 정리해고된 것이니, 이 경험을 지렛대 삼아 기업들 문을 다시 두드려 보아야 한다. 다만, 무척 짧은 경력들의 나열이니 얼마나 혹은 어떻게 어필할 수 있을지 불안한 것도 사실이다. 어쩌겠는가, 먹고는 살아야 할 것이고, 그저 버티며 나아가야 할 뿐. 얼른 COVID19이 나아졌으면 좋겠는데, 봉쇄령은 4월 말까지 연장되었다. 만약 전 세계적인 불황이 명명백백하게 된다면 상황은 점차 어려워질 테니 그것이 걱정이다.
모두들 안전하게, 건강하게. This shall pass and we will come out much stronger after a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