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이쥬 Oct 18. 2020

사막에 피운 꽃

에미레이트를 떠나는 사람들

 항공업계는 현 코로나 사태로 그 어느 산업보다도 가장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여기저기 앓는 소리, 죽는 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결국 에미레이트에서도 차츰 고용 인원을 밀어내는 수순을 밟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 지도 꽤 되었다.


 10월 17일은 내가 에미레이트에 입사한 이고, 2017년 10월, 3년 계약을 채우며 회사를 떠났다. 내 지인들은 또 다른 3년 계약이 자동 갱신되어 이제 채운 2020년인 셈이다. 즉 6년의 계약이 만료되는 것인데, 이제는 계약 갱신을 해주지 않는단다. 함께 두바이라는 공간과 비행하던 시간을 공유한 가까운 지인들 대부분이 두바이에서의 추억을 정리하고 있다.


 2만여 명의 승무원 - 그 무게


 처음 에미레이트에 입사했을 때, 오롯이 에미레이트 항공의 승무원이 1만여 명 정도라 들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숫자에도 상당히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 숫자는 매주 갱신되어 순식간에 2만여 명을 넘어섰다. 격주로 전 세계에서 100-120여 명이 새롭게 입사하였고, 그만큼이 매주 수료하여 비행 현장으로 나서는 순환이 계속해서 이뤄졌으니 트레이닝 컬리지는 늘 북적북적하였다.


 그때의 그 엄청난 숫자는 업계가 일그러진 현재의 상황에서는 버거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구나 대부분 중동의 항공사들은 승무원들에게 숙소 등을 제공하고 있으니 아무리 무급휴가를 주고 비행을 쉬게 한들, 유지비용 자체의 무게가 무거울 것이다. 특히나 비행이 전면적으로 축소되어 항공업 자체가 이윤을 창출해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고정비용은 애물단지다. 수없이 들여놓은 거대한 항공기들의 유지 비용에 비하면 세 발의 피이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나마 신속하게 제어 가능한 숫자는 결국 감원 카드겠지 않는가.


 비행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었으니, 비행시간에 따라 주어지는 수당(Per diem)이 없이 기본급만 받기에는 부족함이 크다. 더구나 내 나라도 아닌 두바이에서, 매일매일 새로운 도시로 떠나던 삶이 급작스럽게 중단되면서 사실상 목적을 상실한 측면도 있다 보니 자발적으로 퇴사를 결정하고 본국으로 돌아간 사람들도 무척 많다고 했다.


 처음 감원의 물결은, 기존에 워닝(warning)이라든지 앱센(absence)과 같은 흠을 들춰 계약 해지를 통보하는 절차로 이뤄졌다고 한다. 혹은 본국에 휴가차 들어간 인원에게 돌아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든지. 그렇게 해도 만족스럽지 않았는지, 이제는 계약 갱신을 하지 않는 방법으로 전 세계에서 불러들인 승무원들을 집으로 돌려보내고 있다고 한다.


 어떻게 지내니, 별일 없니?


 실정이 이렇다 보니, 게다가 실제로 가까웠던 대만 친구가 퍼포먼스를 문제로 계약 해지를 당했다며 올린 인스타그램의 글을 보자, 아직 남아있는 내 한국인 동료들의 안부도 묻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나 역시, 이곳 미국에서 일하고 싶었던 회사에 들어가 꿈에 부풀어 있었는데, 이놈의 코로나 때문에 가장 먼저 정리해고가 되었으니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누가 뭘 잘못했다고 할 수 있을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선택이 아닌 외부의 상황으로 이렇게 회사를 떠나야 할 때는 누가 웃으며 나갈 수 있을까.


 친구 하나는 대만인 친구처럼 그동안의 퍼포먼스를 이유로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다고 했다. 뭐라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 어쨌든 비행 자체를 못한 지도 꽤 됐고, 다들 떠나가는 분위기가 되어 자신도 정리를 해야 하나 했는데 어찌어찌 이리되었다며 한동안 앞으로 어떻게 할지 고민을 해봐야겠다고 했다.


 그들이 이어준 두바이의 끈


 내가 떠나던 시점에도, 40세를 넘어간 승무원에게서 특정 나이를 넘어서면 그때부터는 사무장, 부사무장 진급을 하지 않고 일반 이코노미/비즈니스/퍼스트의 평 승무원으로 남은 경우, 계약 갱신을 1년 단위로만 하게끔 해서 무언의 압박을 준다더라 하는 카더라 통신을 들어왔던 차였다. 아마 그때였을까. 얼른 정리하고 가야겠다고 확신한 때가. 항공사 경영진에게 승무원이란 정말로 그냥 기계 부품처럼 언제나 손쉽게 공수 가능한 인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을 더 지체할 이유가 없고 충분히 누린 지금 접어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쉽지 않겠다 느꼈다.


 결국 지인들에게 안녕을 고하고 새로운 모험을 재차 떠난 참이었지만, 항상 두바이와 에미레이트의 소식은 그 어디보다도 가깝게 들을 수 있었다. 비행하는 친구들로 인해 모든 게 손에 잡힐 듯 느껴졌다.  당장 인스타그램만 들어가도 전 세계 방방곡곡에서 찍은 풍경들 하며 빨간 모자를 쓴 얼굴들이 올라왔다. 내가 써나간 시간은 추억으로 멈춰졌지만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들은 계속해서 흘러가고 있었다. LA나 미서부에 비행 온 친구들과 만나기도 했으니 오히려 한국에 있는 친구들보다도 더 가까운 게 사실이기도 했다. 어쩌면 그래서 회사를 떠난 지가 재직한 기간만큼이나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게 꽤나 생생하고 마치 아직도 지속 혹은 연결된 것처럼 느껴졌었다.


 그런데 이제는 코로나로 뒤덮인 일상과 소식들 속에서, 두바이에서의 삶을 정리하는 지인들의 흔적을 뒤따르며 나 역시 두바이에 붙든 끈을 완전히 내려놓는 것처럼 느껴져 어쩐지 마음이 더 헛헛하다.


 사막에 피운 꽃


 물론 아직 두바이에 남아있는 사람들도 있다. 계약이 아직 남은 사람들도 있고, 부사무장, 사무장 자리에 있어서 처지가 좀 더 나은 경우도 있다.


 2만여 명이라는 숫자를 처음에 이야기했는데, 내가 입사할 때 900명 정도라고 봤던 한국인 국적 승무원은 어느 시점에는 1천 여명도 훌쩍 넘었을 것이다. 물론 그즈음 숫자에서 채용도 중단되었지만, 꿈을 이루고 더 큰 꿈을 품은 수많은 한국인들이 두바이에 그렇게 터를 잡았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두바이에서의 시간들은 반짝반짝 빛나는 어떤 것이었다. 사막에 세운 기적의 도시 두바이에서 피운 하나하나의 꽃들은 저마다의 생기를 그곳에 불어넣었다. 낯선 땅에서 피워온 수많은 꽃들.


 항공업계가 언제쯤 좋아질까. 알 수 없다. 여행 트렌드도 코로나 사태 이후 많이 바뀔 것으로 예측하기도 하고, 어느 대형 항공사는 회복에 최소 3년 이상을 본다고도 했단다. 그래도 경기는 순환하는 것이고, 항공업 자체는 국가의 기간산업에 해당하기도 하니, 죽으란 법은 없다. 인고의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가면 아마 수요가 곧 차오를 것이다. 그것에 대해 전혀 걱정하진 않는다. 다만 매번 이런 순간들을 지나며 느끼는 것은, 어느 직업이 다 마찬가지겠지만, 유난히 더 부품처럼 소모된다는 아쉬움이다. 다시 승무원이 필요해지면, 승무원을 꿈꾸는 수많은 청춘들을 또 불러 모으겠지.


 떠나가야 하는 사람들, 머무르며 버티게 된 사람들, 혹은 항공업계를 동경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긴 시간이 될 테다. 불확실성만큼 두려운 것이 없지만 잘 견디어 다음에는 더 크고 생기 돋는 꽃을 피워낼 수 있기를.


 어쩌면 이제 정말 건네보는 인사.

 안녕 에미레이트, 안녕 두바이.

매거진의 이전글 그거 뭐, 시집은 잘 가겠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