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이쥬 Jan 06. 2020

미국 생활 2년을 넘기며

"이직을 하게 됐습니다"

 처음 미국을 관광비자로 무작정 들어오며 꽤나 큰 꿈에 부풀어 있었다. 이상한 장거리 연애를 오랫동안 하며 버텨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수 있게 된 것은 물론이거니와, 모아둔 돈으로 공부도 다시 시작하고 싶었고, 그렇게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겠지 하는 설렘에 가득 차 있었다.


 그것이 2년 전이라니.


 현실은 단 하나도 내 마음 같지 않았다. 그동안 살며 겪어보지 못했던 온갖 평지풍파를 다 견뎌냈다. 어느 하나 쉬운 일이 없었고, 세상 모든 불운이 내게 떨어진 것 같은 나락이었으니.. 창살 없는 감옥 같은 집에 틀어박힌 채, 절망만이 반복되었다. 끝이 없는 불행처럼 느껴지던 매일매일에 더해, 끝내는 내 피땀과 같았던 저금도 다 태웠으니 생활고가 눈앞에 있었다.


 그즈음 다행히 EAD(Employment authorization document)가 나오며, 벼랑 끝에 선 심정으로 다급히 취업을 준비하게 되었지만 문제는 완전히 황폐화되어 버린 내 정신 상태에 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야.'


 자신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원하는 것은 저 위에 있는데 현실은 저 바닥에 있었다. 짝꿍의 가족들이 취업을 도와주겠다고 손을 내밀었지만 선뜻 그 손을 잡지도 못했던 것은 내 자신에게 확신이 없어서였다. 그만큼 많이 망가져 있었던 스스로였다.


 어찌저찌 취업을 하고 물류 포워더로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일이 너무 손이 많이 가고 까다로운 손님들이 많아 하루 12시간을 일하는 날이 많아졌다. 폭탄 돌리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무렵, 마음 상한 일들까지 겹치며 이직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다.


 12월 31일 퇴사일


 퇴사일까지 무엇 하나 수월하지 않았다. 늘 일손이 모자라는 일터인데, 팀원 중 한 분은 갑자기 몸이 아파 수술을 하시게 되었고, 다른 분도 개인 사정이 생겨 일을 더 얹어 드리기가 마음이 쓰이는 등 어떻게 보면 참 안 좋은 때에 떠나게 된 셈이었다.


 2019년의 마지막 날이니 3시쯤 종무식을 갖고 갈 사람들은 떠나갔는데, 인수인계조차 시작도 못하였으니 마지막 날까지 야근 확정이었다. 정신이 하나도 없이 인수인계를 마치고, 남아있는 파일들 청구서를 후다닥 찍으며 클로징을 하고 나니 시계가 6시를 넘어간다. 한결같이 정신 없이 노란 파일이 가득했던 책상을 휑하게 치우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니 그제야 불현듯 그만둔다는 실감을 하게 된다.


 회사에서는 사장님과 다른 팀 직원 한 분만이 남아있었다. 사장님께 가 이제 그만 가보겠다며 인사를 드리려는데 어쩐지 눈물이 핑 돌았다.


 참 열심히 일하시는 사장님 밑에서 많이 보호받으며 일을 배웠고 여러모로 신경도 많이 써주셨다는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에, 아버지 같았던 사장님에 대한 감사함이 컸다. 더구나 지나온 시간들을 생각하니, 물류에 대해 1도 모르는 애를 데려다가 어쨌든 고용하여 가르치고 이만큼 일하게 만들어 놓았으니.. 덕분에 나는 차츰 나 자신을 회복해 나갈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못할 것이 없네 느낄 즈음 이직을 할 수 있었으니 사실상 지난 6개월 동안 얻은 것이 잃은 것보다 더 많은 것이었다.


 새 직장/새 직무 - Food distribution sales rep


 "How do you feel about being a fortune 100 company employee?"


 새로운 직장은 미국에서 가장 큰 식자재 유통업체인 Sysco이고, food distribution sales rep으로 입사를 하게 되었다. 두 달 여 동안 트레이닝 기간을 거칠 예정이다.


 사실 나 혼자만의 힘으로는 면접의 문턱조차 가지 못했을 곳이다. 짝꿍 여동생의 남편이 오랫동안 재직했던 회사라 그가 인맥을 끌어다 면접을 볼 수 있도록 기회를 주었던 것이다.


 드디어 내일이다. 첫 출근.


 사람 사는 것이 다 똑같을지언정, 이제는 완전히 '미국' 회사로 간다고 생각하니 마구 걱정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게다가 영업이라니. 잘할 수 있을까? 괜히 또 커리어 리셋만 하는 무모함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생각들이 넘쳐흐른다. 아마 앞으로 엄청난 에피소드들이 대량 생성될 것이다. 대부분 긍정적인 것이 되기를 기대하며.. 글 쓸 기회와 생각할 시간이 부디 늘어나길 바란다. 또 다른 발걸음을 떼는 나 자신에게 cheers.


 Happy New Year, everybody.

매거진의 이전글 영주권(그린카드)을 받아 들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