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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정 Jan 30. 2023

야구, 이깟 공놀이가 뭐라고


처음 야구를 좋아하게 된 건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이었다. 엄마를 따라서 롯데를 좋아할 지 어떨 지 기웃기웃 거리다가 이듬해 친구가 두산 베어스 팬이어서 같이 직관을 가게 됐고, 그 날로 두산 팬이 되었다. 그런데 뭔가 내 의지로(?) 선택한 팀이 아니어서 그런지 별로 정이 안갔던 것 같다. 물론 엄청 좋아해서 외국에 있을 때인데도 경기를 다 챙겨보고, 포스트 시즌에는 수업시간에도 경기를 볼 정도이긴 했다.



그런데 2011년 두산 모 선수의 엄청난 병크가 터지게 되고... "야구 안봐 ec" 를 선언했다. 분명 그랬는데...2011년 심수창 선수와 박병호 선수가 트레이드를 통해 넥센 히어로즈로 오는 것을 보게 된다. 그 전에는 심수창 선수 잘생긴 선수라는 것만 알고 있었는데, 나름 LG에서는 간판 선수라 생각한 선수가 당시엔 생소한 트레이드로 팀을 옮기는 것을 보고 동정심이 생기게 됐다. 그렇게 심수창 선수 때문에... 이 지독한 팀에....발을 들이게 된다.


당시 넥센은 논란 속에서 모기업 없이 창단해서 구단 자체 수입으로 운영을 하는 구단으로 꼴찌만 하던 구단이었다. 그런데 깜짝 FA를 통해 이택근 선수에게 엄청난 연봉을 주고 데려오더니만, 이름 있는 선수들을 과감한 트레이드로 보내고 다른 선수들을 마구마구 데려오기 시작한다. 그때 오게 된 것이 바로 심수창과 박병호였다. 


박병호 선수는 유망주였지만 LG 에서는 이렇다할 활약을 보이지 못했던 선수였는데, 그 해에 트레이드 되어 오자마자 갑자기 홈런 공장을 가동하기 시작해서 커리어 하이를 찍게된다. 그리고 3번 이택근 4번 박병호 5번 강정호로 이어지는 클린업 트리오가 엄청난 활약을 하게된다. 비록 팀은 꼴찌였지만 이 클린업* 트리오의 호쾌한 활약으로 나는 이 팀에 완전히 덕통사고를 당하게 된다.




[데일리포커스] 불타는 방망이…대세는 넥센


2011년에는 저 클린업을 가지고도 성적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그런데..! 2012년엔 신고선수 출신의 신화, 서건창 선수가 등장해서 그 해 신인왕을 타는기엄을 토한다. 서건창 선수는 프로 지명을 받지 못해서 2008년 LG에 육성선수로 등록했지만, 기회를 얻지 못하고 그대로 군입대를 했다가 다시 넥센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아 넥센에서 프로 첫해를 보내게 된 선수였다. 팀은 이 해에 6위를 했지만, 서건창 선수는 독보적인 활약으로 신고선수의 신화를 보여줬으며 넥센은 막강한 클린업에 이어 최고의 테이블 세터**를 보유한 구단이 될 수 있었다.





서건창, 2012시즌 신인상 수상


그리고 감독이 김시진에서 염경엽으로바뀌면서 팀 성적도 올라가고, 2013년 창단 첫 포스트시즌 진출에 이어서 2014년에는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하는 쾌거를 이룬다. 


개인적으로 염경엽이 있을 때의 야구를 좋아하기는 했다. 지도자로서의 자질이나 선수단을 이끄는 포용력과는 별개로 말이다. 2016년 포스트 시즌 업셋을 당하자마자 핸드폰 메모장 사퇴문을 읽고 도망친 미친 감독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2017 시즌 부터는 야구를 잘 보지 않았다. 2016년에 업셋 당해서 진 경기가 마음에 오래 남았던 것 같다. 그러다가 2019 가을야구에서 다시 연어처럼 돌아오게 됐고, 창단 후 두번째 한국시리즈까지 지켜보며 우승의 꿈을 꾸었지만... 결과는 또 준우승.


하지만 2020년에는 2019 선수들의 유출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그래도 우승을 기약할 수 있었다. 실제로 팀 순위도 꽤 상위권이었다. 구단주가 횡령으로 감옥을 가고 내부가 시끄러운 상황이었지만, 팀은 그래도 잘 버티는 듯 했다. 이사회를 대표한다는 뭔 이상한 근본없는 너클볼 투수의 기행이 알려지기 전까진. 그래서 감독이 시즌 중에 그것도 순위싸움 중에 갑자기 바뀌는 미친 일이 생기기 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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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은 그래서 "진짜 진짜 야구 안봐 ec" 를 실천하려고 했는데... 주축 선수이던 김하성 선수 없이 시작한 시즌이었던데다 팀의 주장이었고 오랜시간 지주 역할을 했던 서건창 선수가 트레이드로 다른 구단으로 가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모 선수의 일탈로 선발 로테이션을 소화할 선수가 없다는 이유로.......


게다가 그 해 있었던 올림픽에서 진짜 부끄러울 정도의 처참한 경기력을 보고서 정말 야구 탈덕을 선언하고 한동안 경기도 보지 않았다.


그런데....갑자기 모든 경우의 수를 뚫고 팀이 와일드카드에 진출을 하고 또 연어처럼 나는 홀린듯 직관 결제를 하고..역사적인 와일드카드 1차전을 직관하게 된다. 그리고 1차전을 멋지게 역전으로 승리하는 팀을 보면서, '아,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키움이구나.' 싶어서 단 한 경기였지만 그 경기만으로도 행복했다.


영웅에게 내일은 있습니다


야구는 시간이 길다. 그래서 모든 희로애락을 경기 중에 다 경험할 수 있다. 또 한 사람의 스타 플레이어가 잘한다고 팀이 성적이 좋을 수는 없는 팀스포츠다. 아무리 못해도 9회중 찬스가 한두번은 만들어지는게 야구다. 객관적 전력차가 심하다 해도, 경기를 해보기 전에 결과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심판에 의해 너무 많은게 바뀌고 운동복 같지 않은 벨트가 있는 유니폼을 입고 하는 유사 스포츠 같긴 하지만 그 안에는 매우 정교한 과학이 숨겨져있다. 그래서 전문가도 쉽게 예측하기가 어렵고, 반전과 드라마가 있다. 





*클린업 트리오: 1~9번 중 3,4,5번 타선 보통 앞선 주자들의 출루를 득점으로 연결시키는 역할이다.

**테이블세터: 클린업 트리오가 득점을 생산할 수 있도록 출루를 맡는 1,2번 상위타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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