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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로 May 10. 2020

살고 싶은 삶과 살아지는 삶

<방송인  도전기_나의 시작, 나의 도전기>

 전주 MBC에서 아나운서 면접을 보고 돌아오는 기차 안이었다. 점심 면접이라 새벽부터 메이크업을 받았다. 얼굴이 부을까 봐 전날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아 이제야 매점에서 산 삶은 계란을 톡 깨서 한 입 물었다. 배는 고팠지만 사실은 씹을 기운도 입맛도 없었다. '긴장하느라 고생 많았어요.' 남편의 문자.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순간 창에 비친 내 모습이 보였다. 예쁘게 화장은 되어있지만 전혀 나 자신이 예뻐 보이지 않았다. 한심해. 나 같아도 나 안 뽑겠다.. 참아왔던 미운 말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오늘은 백 번째 도전하던 날이었다.     

< 나 뭐하고 싶지? >

 서른이나 돼서 참 늦은 질문 아닌가? 대학 입학이 삼수로 늦어졌다. 딴에 눈치가 보여 부모님께서 원하시는 (취업 잘된다는) 간호학과로 입학했다. 어찌어찌 졸업해 운 좋게 (바라시는 대로) 대학병원에 취직도 했다. 이십 대 중후반이 무난하게 흘러갔다. 그런데 왜 이렇게 내 마음은 무난하지 않은 건지, 뭔가 이상했다.

   문득 어릴 때 장래 희망 칸에 <아나운서>라고 적던 내 모습이 생각났다. 그래. 학창 시절의 꿈은 언제나 ‘아나운서’였다. “아나운서처럼 예쁘고 똑똑하게 자라면 참 좋겠다!”라고 하셨던 엄마의 말씀도 한 몫했지만, 진짜로 방송에 나오는 나 자신이, 내 목소리가 참 좋았다. 그 당시 넘치는 끼(?)에 아역배우로 활동도 하고, 방송부로 교내 아나운서 활동도 했다.

 명확한 목표 없이 ‘하면 좋겠네’라는 ‘생각’만 해왔다. 또 당시 가정형편 등을 고려해볼 때 가장 먼저 내가 나를 포기하다 보니 소위 말하는 ‘살아지는 대로 사는 삶’ 라인에 합류하게 되지 않았나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면 이 패턴대로 사는 게 좀 지겹지 않나. 여기까지 생각에 다다른 후에는 홀린 듯 ‘아나운서 학원’을 검색했다. 그리고 한달음에 학원을 방문해 (마침 가까웠다.)  정규코스를 (할부로) 결제했다.

 신기했다. 전혀 다른 삶이 펼쳐졌다. 급하게 결정한 것이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했고 열심히 공부했다. 내가 선택한 삶이라 더 의미가 있다고 느꼈다. 카메라 수업, 뉴스 리딩 등을 배우며 다듬어갔다. 다니던 대학병원도 쿨하게 그만뒀다. 간호사 출신 아나운서? 좋았어! 열심히 할 거니까 결국 난 잘될 거라는 확신을 믿었다.

  그러나 그건 정말 ‘희망’에 불과했다. 아나운서 시험은 많지 않은데, 뽑는 인원은 너무 적었다. 경력은 없고, 나이는 많았다. 그뿐인가, 현실적인 문제들은 참 차가웠다. 일하면서 모아놓았던 돈은 떨어져 가고 있었다. 한번 오디션을 볼 때마다 의상비와 헤어 메이크업 비용. 프로필 사진, 교통비도 만만치 않았다. 이러다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조급해졌다. “잘하고 있지?” 친구의 안부가 부담스러웠다. 시험 결과들에 따라 풍선처럼 부풀었다 쪼그라들었다 하는 내 기대들이 이젠 바보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런 와중의 백 번째 시험이었다. 오늘만큼은 너무 고단했다. ‘나 이제 어떡하지?’

 참아왔던 마음들이 무너져 내림과 동시에 억눌렀던 감정들이 폭발했다. 언젠가 친구가 물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니 너 참 행복하겠다?”라고. 자존심이 강했던 나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응 그럼. 행복하지.”라고 대답했다. 나는 과거로 돌아가 그때의 나를 밀쳐버리고 마구 소리치고 화내고 싶었다.

"아니! 아니! 너 사실 안 행복해. 안 행복하잖아.. 생각대로 잘 안돼서 너무 부끄럽고 창피하잖아.. 그래. 사실 알고 있어. 나 합격 못해. 나는 키가 작아, 나는 못생겼어, 나는 나이가 많아. 나는 뚱뚱해. 나는 실력이 모자라. 다 알아... 안다고.."

 내가 안될 수밖에 없는 수백, 수천 가지의 이유들이 떠올라 마음을 온통 찔러댔다.  그 날 세상에서 나를 제일 미워하고 조롱하는 사람은 바로 나였다.

  그 이후로 울적한 시기가 이어졌다. 그렇게 끝이 보이지 않던 찰나.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서류를 냈던 방송사였다. 연락이 너무 없어 떨어진 줄 알았었는데, 면접을 한번 보러 오라 했다.

  그리고 그 해 겨울. 나는 한 작은 케이블방송의 아나운서로 취업을 하게 되었다.

 

  부끄럽지만 이 새로운 시작에 이르기까지. 내가 선택한 방향에 대해 제대로 책임을 져보는 삶의 경험은 처음이었다. ‘책임진다.’는 행위뿐만 아니라 생각과 감정까지도 책임져야 하는 것임을 오롯이 느꼈고. 또 그 감정은 부정적인 것도 포함되는 것임을 이젠 당연히 안다. 지겨웠던 일상을, 굴레를 벗어던지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욱하게 시작을 한 감은 있지만 이 덕분에 한 단계 성숙하게 되었고, 나 자신을 제일 힘들게 하는 사람이 나라는 걸 또한 알게 되어 결국 더 나를 아껴주게 되었으니 이 이야기는 해피앤딩이 맞다고 해야 할까?

 방송을 시작한 지 벌써 1년 반이 되었다. 경력만 있으면 모든 게 잘될 거야!라고 생각했는데, 생각처럼 잘 되지는 않았다. 사실 지금도 여전히 고전의 연속이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살고 싶은 대로 살고 있다는 자부심. 그리고 이 과정에서 성숙해지고 있다는 확신이 확실히 새겨져 있으므로, 지금의 나는 진심으로 행복하다.


세상의 모든 도전하는 이들. 시작의 기로에 서있는 분들에게 진심으로 응원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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