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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생 Oct 05. 2022

유쾌한 가족의 대화 10

밥 잘 나오는 병원, 있었으면 좋겠다.

늦은 오전, 9시 반. 아이는 식탁 앞에 앉아서 밤 만쥬를 먹고 있었다. 어린이집에 가려면 벌써 집을 나서야 했지만 오늘은 그러지 못했다. 아이도 나도 늦잠을 잔 것이다.


원래 우리집 아침 밥은 계란후라이에 나물 한 두 가지, 또는 장조림에 김 등으로 간단히 밥을 먹는다. 아침에 챙겨 먹어야 하는 약을 먹으려면 밥을 먹어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독 힘든 날은 오늘처럼 어쩔 수 없이 빵으로 간단히 때운다.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생리 주기 첫 날은 매달 겪어도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아이 눈에는 그런 내가 꽤 아파 보였던 것 같다. 엄마가 아침에 일어나지도 못하고 밥도 못 차려주고 끙끙대며 누워있으니 걱정이 많이 됐겠지.


혜성 : (오물오물 밤 만쥬를 먹으며) 내가 어른이 되기 전에 엄마, 아빠가 모두 하늘나라로 돌아가면~


아빠 : ???


나 : ???...(갑자기?)


혜성 : 나는 밥 나오는 병원에서 살면 되겠다.(오물오물)


아빠 : 그게 무슨 말이야?


혜성 : 내가 어른이 되기 전에 엄마 아빠 둘다 하늘나라로 돌아가면! 나는 밥 나오는 병원에서 살아도 되지?


아빠 : 무슨 말이야 그게~~ 혜성이 어릴 때 입원했을 때 생각나서 그래? 병원에서 밥 잘 나오던거 생각나?


혜성 : 응. 병원은 밥이 잘 나오잖아. 병원에서 살면 되지?


아빠 : ...에이~ 엄마, 아빠는 너희들이 어른이 될 때까지 절대 먼저 죽지 않아~~ 아빠 이제 겨우 37살이야. 얼마나 젊은데~ 



아이의 말이 왜 가슴을 칠까. 먹먹할까. 그 말에 왜 나는 남편처럼 바로 아니라고 대답을 못 해줬을까. 실제로 남편이 몸이 아파서 휴직을 하고 있어서일까. 우리를 도와줄만한 다른 가족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나는 남편만큼 강하게 버틸 자신이 없어서일까.


아이는 아빠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회사에 나가지 않고 있다는 것도. 어쩌면 아빠와는 다르게 건강한 내가 있어서 안심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런 내가 오늘 아침에 아프다고 끙끙댔으니, 얼마나 불안했을까. 그런데도 덤덤하게 만쥬를 씹으며 밥이 잘 나오는 병원에 가서 살면 되겠다고 대책을 세웠단 말인가.


사실, 나는 아이에게 아무말 않던 그동안 그런 병원이 정말 있다면 좋겠다고 혼자 생각했다. 행여나 엄마, 아빠 모두 하늘로 갈 일이 생기면, 아이들이 돈이 없어도 때되면 밥 잘 나오는 병원에서 밥도 먹고, 몸이 아프면 치료 해주는 그런 곳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너무 꿈 같은 일이지. 


이 세상에 비하면 너무나 순진한 아이들. 병원에 가면 밥이 잘 나오니까 거기서 살면 되겠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은 얼마나 무해한가. 얼마나 꿈 같은가.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엄마, 아빠는 건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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