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별, 진짜 여풍(女風)의 시작을 알리다
여풍(女風)이라 했던가. 청하, 선미 그리고 수지까지 젊은 여성 음악가들이 차례차례 출사표를 내놓고 있다. 단순히 이들이 여성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다. 팀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 오롯이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때로는 드라마 속 주인공이 되는가 하면, 때로는 대중의 시선에 괴로워하는 셀러브리티가 되어 개인의 목소리를 담아낸다. 순수 혹은 관능이라는 형틀로 구속되어 있던 여타 걸그룹과 명확히 구분되는 지점이다. 이제 남은 과제는 이러한 캐릭터를 높은 음악적 완성도로 구현하는 일이다.
그런데 아뿔싸. 잊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을 이루어낼 음악가가 이미 존재한다는 사실을. 데뷔 19년 차에 접어들기까지 오직 이름 두 자만으로 버텨온 아시아의 별, 보아(BoA)다. 오래간만에 얼굴을 내민 TV 프로그램에서 옛날 사람이라 놀림받는 그이지만 음악에 있어서는 다르다. 트렌드를 자신의 것으로 체화하고 숙련된 표현력으로 이를 구현한다. 신구(新舊)가 교차하는 순간, <ONE SHOT, TWO SHOT>이 바로 그곳에 있다.
먼 곳에서 목소리가 한 걸음 두 걸음 다가오고 "ONE SHOT, TWO SHOT"의 시작을 알린다. 디스코그래피 사상 첫 미니 앨범의 시작을 장식하는 곡이건만 결코 조급해하지 않는다. 느슨하게 조직된 리듬이 경쾌한 신시사이저와 만나 소리의 질감을 선명하게 전달한다. 희뿌연 안개가 걷히니 목소리가 더욱 유려하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지사다. 이러한 전략은 "EVERYBODY KNOWS"에서도 빛을 발한다. 통통 튀는 리듬 라인이 소리의 여백을 만나자 되려 몽롱한 분위기 조성에 일조한다. 1+1=2라는 명제가 음악에서만큼은 결코 진리가 아님을 보여주는 순간이다.
음악가는 "내가 돌아 (NEGA DOLA)"에서 반전을 꾀한다. 스패니쉬 기타로 시동을 걸더니 이내 촘촘한 리듬 라인과 일렉트릭 기타가 곡을 밀어붙인다. 여기에 보컬 또한 추임새와 랩핑 등으로 곡에 다채로운 표정을 부여한다. 이토록 들을 거리가 많은 곡이 3분이 채 안 된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그런가 하면 "YOUR SONG (Feat. Junoflo)"는 어떤가. 주노플로라는 든든한 지원군과 함께 힙합의 영역에 발을 걸치며 음울한 에너지를 전한다. 수록곡 간 각기 다른 상황 설정을 통해 사랑이라는 일관된 테마에 차별화를 주고자 한 의도가 전해진다.
달콤 쌉싸름한 회상록 "RECOLLECTION"을 지나 마주한 "ALWAYS, ALL WAYS (Feat. Chancellor)"는 다시금 음반을 몽롱함으로 물들인다. 울렁이는 로우 톤의 신시사이저, 낮게 깔리는 여성 보컬 등이 청자를 깊은 곳으로 끌어당기고 속사포처럼 몰아붙이는 후렴이 고막을 때린다. 마지막 트랙 "CAMO"는 '깜짝 놀랄 신세계를 / 감춘 짙은 색의 Camoufalge'라는 노랫말처럼 농후한 신스 사운드가 인상적이다. 묵직한 베이스와 흩뿌려지는 신시사이저 간의 대비가 극적 효과를 더하니 마지막까지도 긴장감을 풀 수 없게끔 한다.
보아라는 이름이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운 까닭은 음반에 억지로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부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있다. 본 음반에서 그는 '여성스러움'이라는 틀에 자신을 가두기보다 인간이자 음악가 권보아로서 임한다. 나이로, 외모로 여성을 쉼 없이 옥죄는 세태 속에서 그는 자신이 원하는 의상을 입고, 머리 모양을 한다. 자신을 여성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 인식하고 있는 덕이다. 여성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여풍이 아니다. 여풍의 중심에 '여성스러움'이 아닌 '인간다움'이 자리하는 순간, 진짜 여풍이 불어올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이미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음악가: 보아(BoA)
음반명: ONE SHOT, TWO SHOT - The 1st Mini Album
발매일: 2018.02.20.
수록곡
1. ONE SHOT, TWO SHOT
2. EVERYBODY KNOWS
3. 내가 돌아 (NEGA DOLA)
4. YOUR SONG (Feat. Junoflo)
5. RECOLLECTION
6. ALWAYS, ALL WAYS (Feat. Chancellor)
7. CAM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