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저나무 Jun 10. 2017

검정치마│TEAM BABY

평범한 낱말로 빚어낸 반짝이는 모래성

검정치마│TEAM BABY│HIGHGRND, 2017.

음악가 : 검정치마

음반명 : TEAM BABY

발매일 : 2017.05.30.

수록곡

1. 난 아니에요

2. Big Love

3. Diamond

4. 폭죽과 풍선들

5. 내 고향 서울엔

6. Love Is All

7. 한시 오분 (1:05)

8. 나랑 아니면

9. 혜야

10. EVERYTHING


 첫눈에 반한 연인, 집안의 반대, 사랑의 도피. 어느 TV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클리셰 덩어리. 미디어 속 사랑의 방정식이 정답과 오답을 되풀이하며 격렬한 포물선을 그리고 있을 때, 현실의 사랑은 작은 모래알과도 같은 것이었다. 햇빛 아래 눈부신 빛을 발하면서도 손안에 쥐고 보면 작기 그지없는 알갱이 하나처럼 말이다. 어떻게든 세상에 태어나, 어떻게든 사회에 나가, 어떻게든 사랑을 하게 된 우리네 사랑은 운명적이기보단 차라리 우연적이다. 그리고 여기, 한없이 우연적이고 평범한 사랑을 노래하는 음악가가 있다. 사랑을 뜨거운 엔진이 아닌 부동액("Antifreeze")에 빗대는 그의 상상력은 나른한 목소리를 타고 또 한 번 고막을 간질인다. 검정치마의 3번째 음반이 찾아왔다.


난 배고프고 절박한 그런 예술가 아니에요
내 시대는 아직 나를 위한 준비조차 안된 걸요

- "난 아니에요" 中 -


 음반은 도입부에서부터 충격적인 말을 내뱉는다. '웃으면서 영업하고 빈말하는 저들'의 맞은편에 '별이 되고 싶지 않은 나'를 설정함으로써 <TEAM BABY>가 찬란히 빛나는 스타의 이야기가 아님을 고백한다. 화자가 좋아하는 것은 오히려 '좋은 술과 저급한 웃음' 따위의 하찮은 대상들이다. 위선의 가면을 쓰고 환상을 노래하느니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노래하겠다는 음악가의 선언인 셈이다("난 아니에요"). 희뿌연 안개 같은 도입부를 지나고 나면 이어지는 트랙 "Big Love"가 청자를 반긴다. '내 큰 사랑은 자로 잰 듯이 반듯'하다며 날아드는 돌직구 노랫말, 경쾌한 드럼을 따라 밀려드는 선율은 1집을 사랑했던 이라면 결코 거부할 수 없을 것이다.


 검정치마 표 돌직구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화자는 청자 따윈 안중에도 없는 듯 '자기'를 향해 '사랑 = 다이아몬드'라는 식상한 공식을 들이민다("Diamond"). 그런가 하면 컨트리 풍의 "Love Is All"에서는 새롭지 않은 사실도 새롭게 만드는 사랑의 힘에 대해 낯 간지러운 줄 모르고 노래한다. 남의 사랑놀음에 끼어드는 것만큼 괴로운 일이 어디 있겠냐만, 이번만큼은 경우가 다르다. 꾸미지 않은 직선적인 곡 구성이 손발의 오글거림을 설득력 있는 메시지로 승화시킨다. 자, 부끄러움일랑 집어던지고 노래에 맞춰 흔들어보자.


[MV] 검정치마(The Black Skirts) - 나랑 아니면(Who Do You Love)

 '모던함'보다는 '도회적'이라는 표현이 적절한 "내 고향 서울엔"을 기점으로 음반은 더욱 솔직한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바로 사랑의 평범성에 관한 이야기다. 흥겨운 리듬 속에서 색소폰이 화려한 연주를 뽐내지만 "폭죽과 풍선들"은 마냥 흥겹지 않다. 축제의 순간이 아니라 축제 이후 남겨질 두 사람을 이야기하는 화자의 목소리 때문이다. 허공으로 흩어지는 폭죽 소리처럼 화려함은 순간이다. 연인 사이의 뜨거운 사랑도 언젠간 뜨뜻미지근하게 변하고 말 것이다. 그러나 화자는 빛바랜 사랑 또한 사랑의 한 형태임을 알고 있다.


 조휴일이 빚어내는 사랑의 언어는 마법과도 같다. '나랑 살자 아주 오랫동안'("나랑 아니면"), '난 너랑 있는 게 제일 좋아'("혜야")라는 표현이 보여주듯 투박하고 뻔한 낱말을 끌어모아 반짝이는 모래성을 쌓아 올리는 그의 언어 감각이 평범한 사랑에 마법을 부여한다. 어디에나 있지만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사소한 것들을 그는 놓치지 않는다. 미열(微熱)까지도 사랑의 온기로 받아들이는 작은 관심이야말로 <TEAM BABY>에 '큰 사랑(Big Love)'을 담아낸 원동력이다.


3.5/5.0


[MV] 검정치마(The Black Skirts) - '내 고향 서울엔' (In My City Of Seoul) *저화질 감상 권장


[MV] 검정치마(The Black Skirts) - 'EVERYTHING'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엠낫│Hope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