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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솔 Apr 05. 2023

뭔가를 더 해야한다는 압박감

인정 욕구


주 2회, 업무 계획서를 작성해 제출합니다.

하나는 제가 회의에서 직접 설명하고 다른 하나는 실장님만 참석하시는 부서 회의에 사용됩니다.

지난주에 무얼 계획했고 이번주에 무엇을 했고 다음주에 무엇을 할지 적습니다.




하는 거 없는 사람처럼 보이겠는데?




월급 루팡은 꿈도 못 꿀, 점심시간도 상담에 내어주는 삶을 살고 있음에도

업무 계획서를 쓸 때마다 불안합니다.

자잘한 내용보다는 큰 틀을 적어 내야하는 부서 회의용 업무 계획서 앞에서 한없이 작아집니다.

상담 건수를 적을 수도 없고, 프로그램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자세하게 쓸 수도 없습니다.

혹여나 일이 많지 않은 사람처럼 보이거나 일을 안하는 것처럼 보일까 불안합니다.

그건 너무 억울한 일이잖아요?


오늘이 딱 그런 날이었습니다.

작성을 완료한 한글 파일을 바라보며 '뭐 더 없나? 이거면 되나...?' 뭐라도 더 적으려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웃프다는 말을 이럴 때 쓰는 걸까요?

인정까지는 아니어도 오해는 받고 싶지 않더라구요.

괜히 업무 폴더를 들락날락하며 뭐라도 하나 더 쓸 게 없나 찾아봤습니다.

근데 이미 적은 업무만으로도 시간이 모자란 상황이라 당연히 추가할 게 없었습니다.

거짓말을 적을 순 없으니 그대로 제출했습니다.


저는 왜 고민했을까요?

뭐 때문에 깜빡이는 커서를 바라보며 한동안 멍-때리고 있었을까요?

퇴근길 전철에서 가마안히 생각해보니 업무 계획서 뿐만 아니라

캘린더에 대한 태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빼곡하게 채워져 있지 않으면 뭔가 불안하고 부족한 느낌이 들었어요.




3월 일정표입니다.




투두리스트가 아니라 시간별로 개인상담, 특강, 집단상담을 기록해뒀기 때문에

상담 외 업무까지 포함하면 정말 하루하루 풀 파워로 일해야합니다.

이게 말이 되냐!! 하면서도 다른 날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어있는 요일을 보면 불안합니다.

빈 시간에 행정이나 다른 업무를 해야한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죠.

(캘린더에는 시간별 상담만 적어둡니다. 다른 업무까지 적으면 캘린더가 너무 지저분해지거든요ㅠ)


솔직히 빼곡한 캘린더를 보면 뿌듯합니다.

근데 주간 업무 계획서엔 이런 부분들은 쓸 수 없으니 속상하고 불안해질 수 밖에요.

음....글을 쓰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드네요.

'열심히 하는 건 좋지만 과연 질 높은 상담을 하고 있는가, 효율적으로 일하고 있는가'

뭐 하나 놓치고 싶지 않아서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이렇게 일하는 게 정말 좋을까요?

돌아오는 길에는 항상 머리가 아프고 어지럽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자책까지 합니다.

개인 공부나 운동을 하지 않는다고 스스로를 나무랍니다.

그럴 수 없는 상황임을 알면서도 언젠가처럼, 습관처럼 몰아세우고 있는거죠.


대체 왜 이러는 걸까.....

여러가지 이유가 떠오릅니다.

업무량에 비하면 아쉬운 (많이 아쉬운 ㅠ) 금전적 보상이나

티내지 않으면 어마어마한 업무량이 당연해질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칭찬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데 업무 계획서가 아니면

제가 얼마나 열심히 하고 있는지, 애쓰고 있는지 알릴 기회가 없습니다.

차장님이나 과장님을 찾아가 이야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일은 삶의 일부라고 말하면서 왜이렇게 목을 매고 있나.....싶습니다.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몰빵하고 있으니 인정받고 싶어 안달이 나는 마음은 당연한 것일지도요.

하지만 그게 쉽지는 않으니 제 선에서 정해야합니다.

지금보다 더 일을 늘리고 어떻게든 업무 계획서 내용을 늘릴 것이냐

늘리지 않고 가능하다면 오히려 일을 줄이고 다른 부분에서 저의 마음과 에너지를 챙길것이냐


알고 있습니다.

후자가 훨씬 가능성이 높고 스스로를 위한 방법이겠죠.


이러나 저러나 일은 해야하고 보상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본인들 일로 바쁜 분들에게 나 이렇게나 바쁘고 힘들어요~ 해도 인정과 칭찬은 순간일뿐,

업무 계획서를 쓸 때마다 이 모든 과정을 반복하고 있을 게 뻔합니다.

내려 놓아야 합니다.

작년보다 많이 덜어내긴 했지만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더 해야하나



작년 말, 과로와 스트레스가 한꺼번에 몰려와 심하게 아팠습니다.

열이 40도 가까이 올랐고 쉽게 내려가지 않아서 이러다 죽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어요.

회복기간을 보내며 다짐했습니다.

2023년에는 절대 일에 목숨 걸지 않겠다고요.

잘 쉬고 잘 자고 업무도 적당히! 절대 무리하지 않겠다고요.

근데 이러다간 또 연말에 쓰러져 있을 것 같습니다.

인정받으려다 연말에 건강 악화로 인정이고 뭐고 '아픈 애'로 끝날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일하고 말 것도 아니고

회사 사람들이 제 인생을 책임져 줄 것도 아니고 건강을 챙겨 줄 것도 아니잖아요.


그리고 아프면 결국 내담자와 학생들에게 폐를 끼치게 됩니다.

제가 더 신경 써야 하는 사람들은 따로 있는데.....휴- 한숨이 절로 나오네요. ㅎㅎ

이 글을 쓰며 마음을 다시 한번 다잡아 봅니다.


가득 채운 캘린더도

커다란 사업들이 적힌 업무 계획서도

잠깐의 칭찬이나 건강과 맞바꾼 인정도

저의 인생, 일상보다 중요하지 않습니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무리하지 않고 일하겠습니다.

우리는 인간이니 실수하기 마련이죠.

폐를 끼친다고 해서 저를 단두대에 세우진 않겠습니다.


더하지 않고 덜하겠습니다!

선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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