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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솔 May 13. 2023

[섭식장애 회복] 엄마가 원하는 딸 -1

"딸 살 찐거 아냐?"


어버이날을 맞아 정말 오랜만에 본가에 다녀왔다. 

설날에도 가지 않았고 중간에 잠깐 갔을 때는 집에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부모님 얼굴을 보는 건 정말 정말 오랜만이었다. 왜 이렇게 오랜만이냐고 한 소리 듣고 (ㅎㅎ) 오리고기집 가서 맛있게 식사하고 엄마가 운영 중인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셨다. 카운터에 앉아 엄마가 내려 준 커피를 맛있게 마시고 있었는데 옆에 있던 엄마가 대뜸 이런 질문을 했다.



딸, 살 쪘어? 얼굴도 그렇고 다리도 그렇고 



하, 섭식장애 회복기 중 가장 힘들었던 건 아무래도 주변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건네는 말들이었다.

예전에 쓴 글에서도 언급했었지만, 섭식장애를 앓는다는 건 타인의 시선과 판단에 당당하게 대응하고 스스로를 보호하는 능력이 없다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다이어트를 위해 식단을 조절하고 운동을 빡세게 하다가 섭식장애를 앓게 된 건 아니지만 10년 넘게 이 병과 헤어질 수 없었던 건 결국 다이어트 강박이 가장 큰 이유였다. 의도치 않게 마름을 얻게 되면서 내 인생은 꽤나 많이 변했다. 주변의 부러움이나 칭찬이 엄청 늘었고 다들 나를 꽤 괜찮은 사람으로 봐줬다. 하지만 그건 득보다 독이었다. 나는 그 칭찬을 잃을까 두려웠고 살이 찌면 별로인 사람이 될 것 같아서 더더 강박적으로 몸무게와 사이즈에 집착했다. 그리고 그 강박은 몸이 아닌 얼굴, 외모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21살, 엄마 손에 이끌려 성형외과에 가서 쌍커풀 수술을 받았다. 그건 내 의지가 아니었다. 출발할 때만 해도 엄마가 병원 갈 일이 있는데 같이 가달라고 해서 ^엄마를 따라갔을 뿐이다.^ 별 생각없이 병원에 도착해 의사 선생님을 뵙고 면담이 시작되고 나서야 그 날의 병원행이 엄마가 아닌 나의 쌍커풀 수술임을 알았다. 나는 받고 싶지 않다고 엉엉 울었다. 그리고 병원 복도에서 이렇게 소리쳤다.



엄마는 내 얼굴이 그렇게 싫어? 인조인간이 됐으면 좋겠어?



성형수술 = 인조인간 이라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내가 인조인간이라는 단어를 쓴 이유는 엄마가 쌍커풀만이 아닌 코 수술까지 언급하며 내 이목구비를 하나하나 뜯어 평가했기 때문이다. 병원에서만이 아니라 일상에서도 자려고 누운 사람 옆에 와서 "우리 딸, 코를 좀 만지면 괜찮을텐데~"라고 속삭이는 사람이었다. (심지어 요즘도 종종 코 수술 이야기를 한다^^) '우리 딸'로 시작한 따듯해 보이는 말은 사실 현재의 내가 못나고 부족하다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엄연한 평가였다. 그런 말을 계-속 듣다가 이젠 내 의사와 상관없이 병원에 데려와 수술을 강행한다는 게 너무 속상하고 서러웠다. 고슴도치도 자기 자식은 예뻐한다는데 엄마 눈에도 별로인 나는 다른 사람에게 말도 안될만큼 못생긴 사람이겠구나 - 그 때부터 다이어트와 함께 외모강박도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여자는 머리가 길어야 한다고 해서 가발을 얼마나 사댔는지 모른다. 통가발부터 가발 피스, 반가발, 똥머리 가발, 집게형 가발 등 내 외모가 여성스럽지 못하다고 생각해서 (지금 생각하면 여성스러움이고 나발이고 다 갖다 버리고 싶다) 화장도 엄청 짙게 하고 다녔다. 옷도 딱 붙는 옷이나 몸이 드러나는 옷만 입고 다녔다. "여자는 몸이 드러나는 옷을 입어야 해" 20살이 된 내게 엄마는 항상 여자는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라고 말했고 짧은 치마에 높은 구두를 신은 내 모습을 가장 좋아했다. 동시에 나의 섭식장애를 가장 혐오하고 힘들어했던 사람도 엄마였다. 



먹고 토하는 건 안된다. 그건 고쳐야 하는데 살도 찌면 안된다. 



섭식장애 환자에게 이 말만큼 모순적인 말이 있을까? 먹고 토하지 않으면서 살이 찌지 않는 방법을.....이제는 알지만 한창 섭식장애가 심각했던 당시의 나에겐 끔찍한 말이었다. '먹고 토하지 않으면 살이 찔 수 밖에 없는데 대체 어떻게 하란 말이지? 내가 살 찌는 게 싫으면 먹고 토하게 내버려 두면 안되나? 먹고 토하는 게 싫으면 살 찌는 거에 대해선 뭐라하면 안되지 않나?' 먹고 토하지 않으면 살이 찔 것 같다는 나의 말에 엄마는 항상 이렇게 답했다. "너네 친가는 다 말랐어. 괜찮아. 안 쪄." 달래는 말 같지만 이건 결국 살찌면 안된다는 말이다. 엄마는 왜 살쪄도 괜찮다고 말해주지 않았을까? 엄마 탓을 할 문제는 아니라는 건 알지만, 그래도 엄마가 조금이라도 다른 태도로 바라봐주었다면 조금 더 빨리 나을 수 있지 않았을까? 


나의 섭식장애 회복은 타인의 시선과 판단(평가)에서 벗어나기 위한 싸움이었다. 그리고 그 시선과 판단(평가)을 내재화 한 스스로의 틀을 깨기 위한 싸움이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어려웠던 것은 엄마의 생각과 말을 떨쳐내는 것이었다.


여전히 그 싸움은 진행중이고.




(2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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