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솔 Jul 28. 2023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해?

계약직의 푸념 그리고 반성

https://pin.it/5DoP9jZ



작년 말즈음부터 마음을 떠나지 않는 몇 개의 문장이 있었다.


피곤하다

자고 싶다

왜 이렇게까지 해야하지

나는 월 200도 못받는데

적당히 하자

안하고 싶다


입에서 위의 말들이 습관처럼 나오기 시작했을 때, 신체적으로도 심적으로도 너무 피로했고 모든 게 버겁게 느껴졌다. 업무량은 많은데 성과는 내야하고 성과를 내려면 결국 집에 늦게 들어가거나 주말까지 반납하고 업무를 해야했다. 최선을 다했지만 생각처럼 잘 나오지 않는 성과에 좌절했고 자책했다. 그러다 문득 월 실수령이 200도 되지 않는 내가, 1년만 있으면 계약기간이 끝날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하지? 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만큼 지쳤고 당장 그만두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믿을 구석도 비빌 언덕도 없었다. 월세를 내야하고 밥을 먹어야 하고 나이 서른이 넘었으니 제 인생은 스스로 책임져야하는 상황이었기에 무턱대고 그만둘 수 없었다. 거기다 같이 들어온 선생님께서 먼저 그만둔다고 말을 하셨기 때문에 나까지 나가는 건....아니지 않나 라는 생각을 했더랬다. 생각해보면 어차피 계약직이고 정해진 기간이 끝나면 그만둘 마당에, 더 하고 싶어도 못할 입장이면서 회사 입장을 먼저 고려했다. 죽을만큼 싫은 건 아니었나보다. 실제로 지금도 회사 분위기는 어떤 곳보다 따뜻하고 화기애애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버텼다. 야근 수당도 없고 어떤 추가 수당도 없는 냉혈한 계약직의 삶을.


그만두지 않는 대신 힘을 빼기로 했다. "나는 계약직이야" 라는 말을 매일 매일 생각하고 떠올렸다. 너무 애쓰지말자, 좋은 분위기는 분위기고 과한 업무량을 완벽하게 해내려고 하지 말자. 안되는 건 안되는 거야 - 라며 올해를 맞이했다. 그래서였을까? 상반기는 꽤 괜찮았다. 물론 아주 좋았다거나 만족스럽다까진 아니었지만 작년에 비하면 칼퇴하는 날이 훠얼씬 많았고 업무 스타일도 바꼈다. 사실....심적으로 거리를 많이 둔 상태여서 잘하고 싶은 마음도, 잘 보이고 싶은 마음도 없었기에 적당선을 유지하기 수월했던 것 같다. 개인 상담도 많이 줄였고 힘들면 힘들다고 티도 내고 내 상황에서 감당할 수 없는 사례는 리퍼하기도 했다. 다행히도 신체컨디션은 많이 회복되었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붕 떴다. 어서 퇴사날이 다가오길 바랐고 (아직 6개월 이상 더 다녀야 하는데 ㅎㅎ) 디데이까지 설정해두었다. 짧게 얼굴을 마주하는 분들에게까지 전해질 정도로 회사나 업무에 정이 떨어진 상태였다. 분위기는 좋지만, 나는 결국 계약직이고 함께 일하고 계신 정규직분들에 비하면 말도 안되게 낮은 급여와 복지(휴가, 안정성 등) 아래에서 살아남아야 했으니....그렇게 좋아하던 회사 분위기도 어느 순간부터는 삐딱하게 보였다.



https://pin.it/7BvsmYN



모든 걸 적당히.....했다. 티나게 퀄리티가 낮아지진 않았지만 조금 더 노력 해볼까? 싶을 때 멈췄고 누가 성과에 대해 애매하게 이야기하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굳이' 라는 말이 모든 문장 앞에 붙었다. 굳이 이렇게 해야나? 굳이 그걸? 굳이 왜? 굳이? 편했다. 틀린 말도 아니었고 계약직인 내가 애쓸 일도 아닌 건 맞으니까. 근데 오늘 그 마음이 조금 부끄러웠다. 누구도 아닌 내가 나에게 조금...실망했다.


내가 맡은 업무 중 상담자로서가 아닌 관리자로서 사람을 대해야 하는 일이 있는데 사실상 거의 방치 수준에 가까웠다. 나름 몇번 주의를 주긴 했지만 명확하게 지시를 하거나 그들과 면담한 적도 회의를 한 적도 없었다. 잘 하고 있는지도 제대로....안 봤다. 그냥 왜 저럴까, 왜 일을 저렇게 할까, 근무 태도가 왜 저모냥일까 속으로 판단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 일뿐이랴, 조금 더 마음을 썼으면 훨씬 괜찮은 성과가 나올 일들이 꽤 있었다. 보고서를 쓰면서 내가 제일 많이 찔렸고 아쉬웠다. 하지만 마음 한켠에는 일을 이렇게나 많이 시키고, 제대로 된 피드백도 없고, 2년차 계약직을 너무나 믿고 있는 회사와 시스템이 제일 문제이지 않나 라는 의문이 든다. 그리고 그게 아주 x소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맡고 있는 모든 업무에 추가로 마음을 쓸 수 있을만큼의 여유가 생기는 건 불가능한 상태다. 그 정도로 일이 많고 중구난방인 건 사실이니까.


내가 반성하는 건 내 마인드다.

마인드가 모든 걸 해결하진 않는다. 마인드가 바뀐다고 다 잘 되는 건 아니다. 내 마인드 하나가 이 회사의 시스템을 바꿀 수도 없다. 하지만 적어도 나 역시 내 근무태도나 맡고 있는 업무의 시스템화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지 않았나 싶다. 그냥 정을 떼고 멀리하는 게 아니라 그래도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는 정도여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 이게 참 딜레마인데, 월 200도 안되는 월급으로 몇 천명이 넘는 학생들을 관리하고 각양각색의 프로그램을 만들고 운영하는게 절대....마음만으로 되는 일은 아니지 않나? 작년에 존경하는 상사분이 나를 붙들고 이런 말씀을 하셨다. "너무 다 하려고 하지마, 안되는 건 하지마, 월급 이상의 것을 스스로에게 밀어붙이지마. 그러다 정말 번아웃 와" 그리고 그게 작년 말의 나였다.


그래도...그래도 말이다.

오늘 회식 후 집에 돌아오는 내내 찝찝하고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걸 보면, 집에 오자마자 이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 걸 보면 나도 아는 거다. 합리화 한 부분이 있었고 눈 가리고 아웅한 경우가 꽤 많았음을. 그렇다고 당장 작년의 빠듯한 업무 스타일로 돌아가겠다는 건 아니다. 그러면 진짜 계약 끝날 때쯤엔 몸도 마음도 엉망이 되어있을 것 같다. 그렇게는 말고, 우선순위라던가 내가 꼭 체크해야할 부분들을 다시 제대로 점검하고 적어도 일을 무책임하게 중구난방으로 한 사람으론 남지 않도록 마무리 하고 싶다.


회사를 위해서도 아니고

상사를 위해서도 아니고

이건 오롯이 나를 위해서다.

내가 덜 부끄럽고 싶어서.


성과에 매몰되거나 낮은 급여와 복지를 곱씹으며 지금 내 상황을 한탄하기보다 이곳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말하고 싶다. 많은 걸 배웠고 도전했고 경험했다고. 딱 나를 위해서. 거기까지만.




작가의 이전글 [섭식장애 회복] 몸을 통해 말하는 사람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