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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솔 Feb 06. 2024

[2024 섭식장애 인식주간] 꼭 다른 세계같아서

현실을 살아가는 것은 왜이리도 힘든지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997869&CMPT_CD=P0010&utm_source=naver&utm_medium=newsearch&utm_campaign=naver_news


섭식장애 인식주간을 이끄는 박지니 작가님(a.k.a. 대장님)이 쓰신 글을 읽어보시면

섭식장애 인식주간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






'이 영상, 한번도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본 사람은 없다.'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나는 덕질할 때 참 많이 보고 듣고 했던 말인데 오늘은 섭식장애, 그 중에서도 폭식/구토와 위 문장을 연결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섭식장애와 잘 이별했다, 많이 나았다라고 이야기하면 낫고 나면 아예 폭식이나 다이어트, 단식/거식, 구토 생각이 나지 않냐는 등의 질문들을 참 많이 받는다. 마치 절제술을 받은 것처럼 감기가 똑 떨어지는 것처럼 섭식장애도 낫고 나면 아예 멀어질 수 있냐는 의미인 것 같은데 그에 대한 100% 옳은 정답은 없다는 게 내 대답이다. 많은 정신질환이 그렇듯 섭식장애 역시 사람마다 원인도 증상도 정도도 다 다르다. 완치 후의 삶 역시 마찬가지다. 누구는 아예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살아가고 누구는 (예를 들면 나) 평생 이 병을 곱씹거나 관리하며 살아간다. 누가 맞고 틀리다는 말할 수 없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정답은 없으니까, 각자의 만족과 결핍을 안고 살아가는 거지.


그러나 병의 '특징'이라는 게 모두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이상의 사람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부분이고 섭식장애의 특징 중 하나는 '재발이  쉽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완치'의 기준이 애매해서 전문가들도 완치가 아닌 회복이나 관해라는 단어를 많이 쓴다는 것.



관해 Remission, 寬解 : 완해(緩解; relief of pain)라고도 한다. 어떤 중독(重篤; seriousness)한 질환(疾患; disorder)의 경과과정에서 자 · 타각적증상(自 · 他覺的症狀; signs and symptoms) 또는 검사성적(檢査成績; inspection result)이 일시적으로 호전하거나, 또는 거의 소멸된 상태를 말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관해 [remission, 寬解] (생명과학대사전, 초판 2008., 개정판 2014., 강영희)



섭식장애를 앓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재발이 흔하다는 말에 치료를 포기하거나 완치를 비관적으로 보기도 한다. 나 역시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섭식장애와 어느 정도 멀어졌다고 생각하는 지금도 날씬한 사람들, 말랐다는 말을 듣는 사람들을 보면 긴장감이 생겨 마음이 울렁거린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마구잡이로 먹고 싶다. 먹고 나면 살이 찔까봐 또는 소화 자체가 어려워서 토하고 싶다. 만약 그런 마음에 정말 토를 하면, 토할 때의 쾌감, 일탈감, 개운한 느낌이 자꾸 생각나서 모든 걸 반복하게 된다.


특히 장기간, 5년 이상 폭식과 구토 그리고 절식/거식을 반복한 사람들은 그 과정이 일종의 패턴으로 자리 잡게 된다. 음식을 보면 깊게 생각할 필요없이 바로 '먹는다 - 폭식한다 - 토한다 - 굶는다'라는 사고가 작동한다. 이는 알아도 조절이 어렵다. 자리잡은 패턴을 깨려면 패턴을 인식하는 것부터 시작해 새로운 패턴을 찾고 그 패턴이 잘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기다려야 한다. 새로운 패턴이 기존 패턴을 대체할 수 없다면 새로운 패턴과 별개로 기존 패턴과 이별하는 노력이 별개로 다시 필요하다.


절.대 쉽지 않다.


특히 섭식장애에 정서적인 부분을 많이 의지하고 있다면 더더욱 쉽지 않다. 슬픔, 답답함, 화, 분노, 외로움 등을 섭식장애 행위를 통해 해결하는 '것처럼' 느껴왔다면, 유일하게 자신의 감정을 다룰 수 있는 섭식장애를 어찌 쉽게 놓을 수 있을까? 나는 여전히 그게 제일 어렵다.





섭식장애가 정서(감정)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이야기는 '~카더라'가 아니다. 국내 논문은 물론 해외 논문에서는 둘의 관련성이 병의 원인, 증상, 유지, 치료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한다. 단지 '마르고 싶어서'라는 말로는 너무나 부족하다. 2023년 섭식장애 인식주간의 표어였던 '납작하지 않은 섭식장애' 역시 이런 단순하고 지나치게 편협적인 관점을 비판하는 뜻을 담고 있기도 하다.


미친듯이 먹고 토할 때는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아도 서 좋았다. 머리속에서 재생되는 끊임없는 비관과 부정 그리고 죽음에 대한 생각을 잠시나마 멈출 수 있었고 사회의 기준에서 어긋날 대로 어긋나 버린 삶을 마주하지 않을 수 있었다. 어떨 때는 환자인 게 좋았다. 그게 내 정체성이라서 안심이 됐다. 굶는 시기가 오면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는 통제감과 함께 먹을 자격이 없는 스스로에 대한 더할나위 없이 적확한 벌이라고 믿었다. 살이 빠지면 못나디 못난 모습이지만 몸이라도 봐줄만 한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았다. 더 더 더 빼야한다고, 아직 부족하다고 끊임없이 채찍질했다. 예뻐지고 싶어서? 그런 말은 어울리지 않았다. 이렇게라도 해야 그나마 인간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인간이 되고 싶었고 살아도 되나는 허락, 자격이 필요했다.


이런 말을 하면 다들 포기가 더 빠르겠다고 말했다. 오죽하면 부모님은 그러다 죽는 것만이 섭식장애와 이별하는 방법이겠다고 말하셨을까, 그러니까 나는 15년동안 인생의 중심이었던 패턴을, 사고방식을 깨기 위해 지금도 여전히 노력하고 있다. 아주 조금씩 나아져 왔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 변화를 '갑자기 괜찮아졌네?'라고 말한다. 너무 티가 안나서 눈에 보이는 변화가 생긴 지금이 마치 뿅!하고 변한 결과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참 외로운 병이다. 미친듯이 노력하고 버텨도 티가 안난다. 재발은 너무 자주 찾아와서 사람들은 그게 재발인지도 모른다. 계-속 병에 걸린 상태가 유지되는 것처럼 보이니까 ㅎㅎ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 데미안 -



섭식장애는 내게 있어 하나의 세계다. 그 세계에 들어가면 현실은,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 게 된다. 잊어도 된다. 무시할 수 있다. 오로지 그 세계에만 집중하면 된다. 이해받지 못하는 세계에서 나는 가장 많이 이해받았다. 섭식장애가 나를 이해해줬다. '힘들어도 괜찮아, 인생은 원래 시궁창이야, 전부 다 잊어버려, 신경쓰지 않아도 돼.' 여전히 섭식장애가 찾아오는 삶이지만, 나는 더이상 섭식장애를 미워하지 않는다. 모든 게 반복되어도 재발이 찾아와도 살을 빼야한다는 압박감에 마음이 일렁여도 그가 나에게 주었던 안락감과 위로는 지옥같은 현실에서 도망칠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것이었으니까.


이 병은 참 복잡하고 미묘하다. 너무 많은 것을 담고 있다. 그래서 한번에 사라지지 않고 쉬이 멀어지지도 않는다. 미워하면 미워할 수록 강해진다. 누구는(채영님은) 맥락적으로 보아야 한다고 했다. 그 말에 격하게 동의한다. 단순한 질병이 아닌 삶의 맥락, 관계의 맥락 속에서 바라봤을 때 우리는 이 병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있다. 나의 삶에서 보이는 섭식장애의 모습과 당신의 삶에서 보이는 섭식장애 모습은 다를 수 있다. 그러니 남을 보지 말고 나를 봐야 한다.


섭식장애 인식주간은 '나'를 볼 수 있고 '맥락'속에서 병을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나 역시 논문 작업과 인식주간 준비 및 참여를 통해 나와 병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고 이해한 만큼 병과 합의할 수 있는 정도도 높아졌다. '병과 합의합니다, 병과 타협합니다' 언젠가부터 자주 쓰고 있는 말인데 나는 이 표현만큼 나와 섭식장애를 설명할 수 있는 말을 찾지 못했다.


당신은 어떤 말로 당신과 섭식장애를 설명할 수 있나요?

당신은 어떤 세계를 살아가고 있나요?

당신은 당신을 그리고 섭식장애를 제대로 바라보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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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월 28일부터 3월 5일까지 헤이그라운드 서울숲점 3층 브릭스에서 진행될 두 번째 섭식장애 인식주간(Eating Disorders Awareness Week)은 기업 후원 없이 진행됩니다.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도움이 필요합니다!


https://www.instagram.com/p/C211Fb3prBg/?utm_source=ig_web_copy_link&igsh=MzRlODBiNWFl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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