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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솔 Feb 11. 2024

[2024 섭식장애 인식주간] 그의 적당한 무관심

그들의 최선이 당신에겐 최선이 아닐 수 있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997869&CMPT_CD=P0010&utm_source=naver&utm_medium=newsearch&utm_campaign=naver_news

섭식장애 인식주간을 이끄는 박지니 작가님(a.k.a. 대장님)이 쓰신 글을 읽어보시면

섭식장애 인식주간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





"남자친구분은 섭식장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유튜브에 등장하는 연인의 모습은 사람들에게 섭식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의 연애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어졌다. 질문에 대한 대답은 영상으로도 만든 적이 있는데 그는 섭식장애에 대해 잘 모르고 관심도 없다.


이런 사람은 처음이었다. 집에서야 들킬 수 밖에 없는 환경이었지만 바깥에선 철저히 숨기며 살았다. 식당을 고르고 앉는 위치부터 시작해 토하러 가는 타이밍까지 늘 철저하게 계획했고 ^정상인^ 연기에는 도가 텄었다. 맛있게 먹는 것처럼 보일 줄 알았고 일부러 손에 씻어야 하는 양념이나 음식을 묻히곤 어쩔 수 없이 화장실에 가야한다며 짜증 섞인 목소리를 낼 줄도 알았다. 하지만 관계가 깊어지고 밤을 함께 보내는 시기가 오면 들키기 마련이었다. 어쩌면 들키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자, 나는 이렇게 끔찍한 인간이야
감당할 수 있어?


첫 연애를 포함해 나와 만났던 사람들은 대부분 내가 먹고 토하는 것을 알았다. 들켰을 때는 엉엉 울며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하나같이 동정과 연민의 눈빛으로 바라봤다. 사실 그게 좋았다. '사랑'이라는 주제에 미친듯이 꽂혀 살았던 것도 가족들에게서 수용받지 못하는 나의 몸과 병을 '연인' 역할을 하는 이들을 통해 수용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랑은 예쁘게 포장되었다. 속은 텅텅 빈 깡통일지라도 그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는 적대적이지 않았고 오롯이 다 끌어 안고 가겠다는 모양이었으니까.


그러나 오래 가지는 않았다. 나를 낳고 기른 사람도 질려하는 이 병을 그저 사랑이란 이유로 품고 가기엔 그들도 나도 너무 어렸다. 20대 초반의 남성들에게 마른 여자친구는 '보호해야하는', '지켜주고 싶은' 대상이었지만 데이트 중 어김없이 먹고 토하러 가는 환자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존재였을 것이다. 누구는 화를 냈고 누구는 내가 화장실에 다녀오면 일정 체크하듯 물었다. "토했어?" 우리는 이 병을 어떻게 해야할 지 몰랐다. 그들 나름대로 검색하고 공부한 결과는 감시와 함께 "나를 사랑한다면 제발 먹고 토하지마" 라는 말로 끝났다. 나에게 있어서 먹고 토하는 일과 그들을 사랑하는 일은 별개였다. 먹고 토하는 일은 온전히 '나', 개인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나를 사랑해서, 너무 너무 사랑해서 구해주고 싶어했다. 나는 역으로 묻고 싶었다.



나를 사랑한다면 먹고 토해도 함께할 수 있잖아?



연애는 조건에 조건을 걸고 넘어지는 계약이 되었다. 나는 아마 그들에게 여지를 주었을 것이다. 너를 사랑하니까 낫고 싶다고, 너와 함께 잘 살고 싶다고 말하며 그들로 하여금 '책임감'을 느끼게 만들었을 것이다. 모든 건 나의 측일 뿐이지만, 그 끝이 지리멸렬한 모습이었던 걸 보면 나는 나에게 하듯이 그들에게도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퍼붓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20대 초중반은 인생에서 가장 어지럽고 불안정한 시기였다. 죽고 싶은데 죽는 건 또 두려워서 애꿎은 흉터만 내던 시기. 스스로를 혐오하고 연민하며 서른이 올 수 있다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시기. 가족들에게서 받은 상처를 타인에게 치유해달라 갈구하던 시기. 그때 만났던 연인들에게 항상 사과하고 싶은 이유는 아무것도 모르는, 자신의 인생도 이제야 생각해보기 시작한 어린 어른들에게 온갖 혼란과 불안을 떠넘기듯 매달렸기 때문이다.


살고 싶어서 어떻게든 살아야 하니까 붙잡았던 사랑은 기어코 나를 살게 했지만 그들에게 그때의 내가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을까 상상하면 수치스럽기 짝이 없다. 부디 그냥 잊고 살아주길, 가끔 안주거리로 참 이해하기 힘든 사람이었다며 넘어가는 정도의 사람이길. 아니 근데 쓰다보니 모르겠네. 수치심에 가려진 좋은 기억들이 그들에게는 존재하고 있을까? 그래도 사랑이란 걸 했었는데, 먹고 토하는 나를 1년 이상 붙잡고 버틴 마음이 사랑이 아니면 뭐였겠어.







길어도 2년 이상 가지 못했던 나의 연애는 현재 8년차를 맞이했다. 20대 중반에 만나 이제는 30대 중반을 향해 가고 있다. 무엇이 다른걸까 생각해보면, 우선은 내가 많이 달라졌다. 구원 시나리오에서 벗어난 게 가장 컸다. 아무도 나를 구해줄 수 없다, 오로지 나만이 나를 구할 수 있다. 사랑은 나에게 힘이고 용기였지만 구원은 될 수 없었다. 나를 구렁에 빠뜨리는 것도 끌어 올리는 것도 스스로 해야할 일이라는 걸 지난 연애를 통해 배웠다. (그는 나를 사이비 종교로 초대했었지) 그래서 S에게는 구구절절 나의 병과 과거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다. 그는 쉬이 동정하지도 않는 사람이었다. 가끔은 그게 너무 차갑게 느껴졌지만, 안정적이게 느껴지기도 했다. 나를 어떤 프레임에도 집어 넣지 않는 사람. 그는 본인이 그렇게 여겨지길 바랐고 그래서 타인에게도 함부로 가타부타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철저히 별개의 존재였다. 별개의 존재. 이상하게도 '한 사람'으로서 인정받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먹고 토하는 일, 지나치게 다이어트에 몰두하는 일, 과거의 상처에서 허우적대는 일 그 모든 건 나의 일이었다. 그는 내게 "필요하면 말해" 라고 말했다. 당황스러웠다. 나는 항상 당신이 필요한데? 라고 되묻자 단호하게 아니라고 했다. 스스로의 일에 가장 밝은 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이며, 병은 전문가나 그 병에 대해 잘 아는 사람과 이야기해야한다고 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영역은 정해져 있다고 먹고 토하는 건 병이고 그것도 아-주 오래된 병이니까 자신은 옆에서 응원하는 게 최선이라고 했다. 자신이 병을 낫게할 수는 없다고.


나를 사랑하면 내가 먹고 토하는 걸 막아야 하지 않아? 병을 고칠 수 있게 도와야 하지 않아? 언젠가 들었던 말을 내뱉는 건 S가 아니라 나였다. "내가 하지 말라고 하면 안 할거야? 그럴 수 있는거야?" 그렇다고 답할 수 없었다. 자유의지, 내 몸을 내 뜻대로 할 수 있다는 감각을 느끼기 위한 방법이기도 했던 병을 그저 남자친구가 그만하라고 해서 그만할 거였으면 진작에 낫고 말았어야 했다. 끝난 이야기여야 했다. 그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번도 "그 병은 언제 나아?" 라고 묻지 않았다. 토하고 싶다고 말하면 잠깐 걷자, 걸어도 안되면 토하자 라고 했고 먹기 싫다고 하면 그래, 먹지마 - 하고 말았다. 영영 나을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하면 당장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그래도 괜찮게 느껴지는 날이 다시 오지 않겠냐고. 오늘 하루만 좀 버텨 보자고 다독였다. 그렇게 버틴 하루가 8년이 되었다.






그는 여전히 내 유튜브 동영상을 보지 않고 섭식장애에 대해 물으면 잘 모른다고 답한다. 왜 이런 나를 만나냐고 물으면 그냥 좋아서 만난다고 답한다. 놀랍게도 섭식장애는 이 연애에서 중심이었던 적이 한번도 없다. 이는 회복에 있어 꽤나 큰 도움이었다. 섭식장애가 전부인 줄만 알고 살았는데 어디까지나 일부/부분임을 '직접적으로' 경험하며 병과 나를 분리하는 연습을 했고 그가 자신의 모름을 인정하고 단호하게 선을 그었을 때 내쳐지는 기분이 아닌 그토록 찾아 헤매던 '수용'받는 기분을 느꼈다. 경험했다는 말이 더 어울리려나?


이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나'의 이야기다. 어떠한 기준도 될 수 없다. 우리는 필요한 것이 다 다르고 그 필요를 채울 수 있는 방법 또한 다를 것이다. 그의 적당한 무관심은 '나에게' 도움이 되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겐 다를 수 있다. 타이밍 또한 배제할 수 없는 요소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도 중요하겠지만 내가 어떤 시기에 있었느냐가 더 중요하다. 만일 그를 20대 초반에 만났다면? 우린 이미 서로에게 질릴대로 질렸을 지도 모른다. 적절한 타이밍에 적당한 무관심이 만나 좋은 시너지를 냈을 뿐이다. 어떤 대상을 이상화 하는 일, 절대적인 존재로 여기는 일은 위험하다. 그가 없어도 나는 회복의 길을 계속 걸을 수 있다. 지난 8년은 그런 확신을 다지는 시간이었다.


이 긴 글의 결론은 결국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 어떤 도움이 필요한가요? 우선 '도움'이 필요한가요?'라는 질문이다. 알고 있는지 묻고 싶다. 모를 수 있다. 나 역시 오랜 시간 모르고 살았으니까. 하지만 한번쯤은 생각해보면 좋겠다. 타인은 모른다. 타인은 결국 자신의 세상에서, 기준에서 맞다고 생각하는 일을 한다. 그들의 최선이 당신에겐 최선이 아닐 수 있다. 되려 최악일 수도 있다. 그게 ^정상^이라며 내버려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억지로 맞추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신만큼은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물어봐주었으면 좋겠다. 당장 채워지지 않는 필요라고 해도 묻는 행위 자체에 의미가 있을테니. 나에겐 병이 중심이 아닌 관계가 필요했다. 병으로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나를 만나고 인정받는 경험이 필요했다. 그걸 알기까지 얼마나 많은 모순과 양가감정을 인식하고 인정하고 수용해야했는지(이건 아직 진행중 ㅎㅎ 앞으로도 계속 진행될 예정), 위로받고 싶은 동시에 철저히 독립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던 나를 이제는 안다. 한참 노력해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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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월 28일부터 3월 5일까지 헤이그라운드 서울숲점 3층 브릭스에서 진행될 두 번째 섭식장애 인식주간(Eating Disorders Awareness Week)은 기업 후원 없이 진행됩니다.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도움이 필요합니다!


https://www.instagram.com/p/C211Fb3prBg/?utm_source=ig_web_copy_link&igsh=MzRlODBiNWFl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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