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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솔 Feb 15. 2024

[2024 섭식장애 인식주간]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진단 기준에 갇히지 않고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997869&CMPT_CD=P0010&utm_source=naver&utm_medium=newsearch&utm_campaign=naver_news

섭식장애 인식주간을 이끄는 박지니 작가님(a.k.a. 대장님)이 쓰신 글을 읽어보시면

섭식장애 인식주간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







2월 28일부터 시작하는 '2024 섭식장애 인식주간'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내일(16일)부터 '이벤터스'라는 플랫폼에서 예매가 시작된다. (https://event-us.kr/edaw/event/78442) 섭식장애에 관심 있는 많은 분들이 참여해 주셨으면 좋겠다. 


섭식장애 1n년차, 만성 환자답게 거식증과 폭식증을 오갔지만 가장 오래 내 삶을 잠식시킨 것은 '신경성 폭식증'이라고 생각한다. DSM-5 진단기준에 따르면 반복되는 폭식행동과 체중증가 방지를 위한 보상/제거 행동이 가장 큰 특징이다. '신경성 거식증(식욕부진증)'은 몸무게나 BMI 지수를 진단 시 중요하게 보지만 신경성 폭식증 환자는 체중저하가 심하지 않아서 평균 또는 평균 이상의 체중/체형인 경우가 많다. 즉, 극단적인 미디어의 섭식장애에 익숙하다면, 겉모습만보고  '저 사람이 정말 섭식장애 환자야?'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런 시선이 신경성 폭식증으로 힘들어 하고 있는 이들로 하여금 자신의 병을 의심하고 '나는 섭식장애 환자라고 하기에 부족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더 나아가 수치심을 느끼는 경우도 많다. 그냥 먹는 걸 좋아해서 (속된 말로 먹는 거에 미쳐서) 마구 먹다가 불안한 마음에 구토나 변비약 등을 통해 먹은 걸 책임지지 않으려고 하는 이상한 사람일뿐이라며 자신을 비난할 뿐이다.


나는 10대 - 20대 초반을 제외하면 평균 체형을 유지해왔다. 가장 말랐던 때가 39-40kg이었고 너무 말랐다고 걱정받기 보다 부러움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구토'가 주요 증상이었기 때문에 식사나 음식을 제한하는 시기는 잠깐이었고 점점 더 많이 먹고 많이 토하는 형태로 고정되었다. 차라리 거식증이면 좋겠다는 폭식증 환자들의 이야기에 (물론 이런 이야기가 매우 실례고 말도 안된다는 것은 알고 있다.) 공감하는 건, 나 역시 토하는 것보다 먹지 못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던 시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먹는 건 즐거움이었다. 나중에는 그 즐거움까지 빼앗겨 가며 먹고 토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먹는 일은 지옥같은 세상을 잠깐이나마 잊을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었다.(이라고 생각했다)



이거 한번 먹는 것도 허락해 줄 수 없어?



'먹는 행위'는 많은 이들에게 가장 간단한 스트레스 해소법으로 여겨진다. 심지어 요즘은 먹방을 보며 대리 만족하고 상상 이상의 양을 집어 삼키는 이들을 보며 묘한 쾌감과 일탈감을 느끼기도 한다. 맛집 리스트를 직접 만들고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에 공유하거나 공유된 곳을 직접 가보는 일이 취미인 경우도 많다. 이런 모습들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나 역시 '소울푸드'가 있고 해당 메뉴에 관해서는 까다로운 입맛을 가졌다. 맛집을 돌아다니며 입맛에 꼭 맞는 곳을 만나며 더할나위 없이 기쁘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일은 즐겁다. 그러나 그 즐거움이 죄책감과 수치심이 된다면? 


신경성 폭식증을 앓게 되는 과정은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이는 지나치게 음식을 제한하다가 한번 입이 터지자(다이어트를 해본 사람이라면 다들 알고 있을 표현 '입이 터졌다') 폭식을 멈출 수 없게 되고 폭식 후 죄책감과 두려움에 보상행동을 하다 그게 습관으로 자리 잡은 경우, 음식을 제한한 적은 없고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과식, 야식을 반복하다가 살이 지나치게 찌면서 보상 행동이 추가된 경우 등이 있다. 하지 말아야지 할수록 심해지고 먹고 소화시키는 방법을 잊어버리고(불가능하다고 생각하게 되고) '먹는다 = 폭식한다 = 토한다'의 자동적 사고가 강해진다.


'예전에 어떻게 먹었는지 기억이 안나요.' 라고 말하는 이들을 정말 많이 만났다. 폭식할 바엔 먹지 말라는 말을 듣고 정말 그렇게라도 해야지 싶어 참아보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서러워진다. '아니 먹는 게 그렇게 나쁜가? 이거 하나 먹는 게 뭐 어때서?' 라는 반발심이 일면 그 반발심은 자연스레 폭식으로 이어진다. 폭식을 하는 동안에는 아무 생각도 없다. '맛있다, 행복하다'라는 감각도 없다.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집어 넣는 거다. 음식을 집어 넣는 행위 자체에 목적이 있다. 배가 터질 것 같고 음식물이 턱 끝까지 차오르면 몸에서 거부반응을 일으킨다. 두려움과 함께 토하고 토하고 또 토한다. 안되면 변비약이든 이뇨제든 때려 넣는다. 이런 삶을 원하는 사람이 있을까? 정말 원해서 한다고 생각하는가? 



https://youtu.be/xcBphcfS3U0?si=r183Ws8rEFdTdcfE



토하기 위해 먹고 먹기 위해 토하는 사람에게 "너는 섭식장애라고 하기엔 정상이지 않아? 뚱뚱하지 않아?" 라고 말하는 하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다. 섭식장애는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몸이 어떻고 저떻고의 문제를 넘어서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고 말하고 행동하는지의 문제다. 나아가 존재의 문제가 되기도 한다. 내가 나와 어떻게 관계 맺고 있는가의 문제다. 섭식장애라는 큰 틀 안에 각기 다른 진단명이 존재하고 설령 같은 진단명이라고 해도 사람마다 증상이나 정도가 다르다. 신경성 폭식증과 달리 제거/보상행동이 없는 폭식장애도 있고 거식증 안에도 섭식 제한형이 있고 제거 행동형이 있다. 누구는 먹고 토하는 게 10년이 지나도 체중 감량에 영향을 주고 누구는 먹고 토해도 살이 빠지지 않거나 오히려 찌는 경우도 있다. 납작하고 획일화된 관점으로만 이 병을 바라본다면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나 경우가 너무나 많을 것이다. 


그러니까 몸으로만 판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미디어에서 말하는 극단적인 증상들로만 판단하지 않기를 바란다. 지나치게 마른 사람도 마르지 않은 사람도 통통한 사람도 뚱뚱한 사람도 비만인 사람도 (도무지 이 형용사들의 기준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다 섭식장애일 수 있고 섭식장애가 아닐 수 있다. 


진단 기준은 어디까지나 기준이다. 정답이 아니다. 절대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 진단 기준에 속하지 않아도 어려움을 겪을 수 있고 치료나 도움이 필요할 수 있다. 음식이나 몸 그리고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한번쯤은 자신의 사고 방식이나 행동들이 건강한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섭식장애는 죄가 아니다. 잘못해서 얻게 되는 벌이 아니다. 부끄러워서 숨겨야 할 것도 아니다. 그런 마음들이 더 우리를 고립시키고 외롭게 만든다. 나는 우리가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 단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섭식장애에 관한 정보가 너무나도 부족하고 소위, 의사와 같은 전문가들의 이야기가 전부였던 한국의 섭식장애 세상에 당사자들이 중심이 되는 행사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반갑고 기쁜지! 


작년에 이어 당사자로서 28일 첫 세션에 참여한다. 우리는 남들이 말하고 그들이 말하는 섭식장애에 갇혀 있을 생각이 없다. 


누구보다 열렬히 고민하고 공부하는 사람들로써 모인다는 지니 대장님의 말처럼 납작하기 그지 없는 세상에 우리의 경험을 여러분들의 이야기를 다양하게 꺼내 보려 한다. 부디 함께 해주기를  




2월 16일(금)부터 2월 26일(월)까지 이벤터스에서 각 세션의 예매가 시작된다. 나는 매일 매일 참여할 예정이니 혹시나 이 글을 읽고 와준다면 반갑게 인사해주기를! 나 역시 뜨거운 포옹으로 맞이할테니 :)





https://event-us.kr/edaw/event/78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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