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왜 바꾸지?
먼저 얘기 하나.
미국과 소련이 대치 중이던 냉전시대.
한 소련 예술가가 미국으로 망명했다.
자본주의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는 그 예술가의 미국 정착을 도와주기 위해 미국 정부는 그에게 안내인을 붙여줬다. 자본주의의 풍요로움을 자랑하고 싶었던 그 안내인이 그를 백화점으로 데려갔다.
소련 출신 예술가가 물었다.
"여기 '밀크 파우더'가 있는데 이건 뭔가요?"
"아, 그거요? 그 '파우더'를 물에 타면 '밀크'가 되지요."
조금 있다가 그 예술가가 다른 것을 발견하고는 다시 물었다.
"이 '주스 파우더'는 뭔가요?"
"그것은 물에 타면 '주스'가 되는 '파우더'입니다."
미국 안내인이 자랑스레 답했다.
조금 더 백화점을 둘러보던 소련 출신 예술가는
어떤 상품 앞에서 경악을 금치 못하고 서 있었다.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베이비 파우더'.
이 '파우더'를 물에 타면 '베이비'가?
물에 타면 '베이비'가 되는 '파우더'?
미국 도착한 초기에
화장실에서 'baby change'라는 표지를 보았을 때 몹시 놀랐다.
'아기를 바꿔? 아니 왜?'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baby change'는 아기를 바꾸는 게 아니라
아기 일회용 기저귀를 가는(바꾸는) 장소였다.
즉 외출 중 아기의 일회용 기저귀가 젖었을 때
그 기저귀를 갈아주기 위해 아기를 눕히는 간이침대가
'baby change'인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알기 전 까지는
'베이비 파우더'를 보고 놀란 소련 출신 망명 예술가나
'baby change'를 보고 놀란 나나
별반 다를 게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