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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Oct 29. 2021

아들 셋 키우면서도 여유롭고 행복한 엄마

삶과 행복에 대한 S와의 대화

 화면에 고등학교 친구 S가 나타났다. 몇 년 만인지 모르겠다. 오랜만에 만나도 어제까지 만난 사람처럼 S는 친숙했고, 여전했다. 반가웠다. 삶에 대해 함께 얘기해보자는 요청에 응해준 것도 너무 고마웠다. 환하게 웃으며 서로를 반겨주며, 우리는 금세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1. 아들 셋 키우는 고등학교 친구와의 만남


나: S야, 요즘에는 어떻게 지내고 있어?

S: 애들 키우고 있지. 첫째가 초등학교 2학년이고 둘째, 셋째는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어. 애들이 학교랑 어린이집에 간 사이에 요즘 피부관리사 자격증을 공부하고 있어.

나: 와- 자격증 공부를 하고 있구나. 남편분 일을 도와주려고 하는 거야? (S의 남편은 피부과 전문의이다.)

S: 그런 것도 있고. 내가 원래 말하는 걸 좋아했잖아. 애들 조금 더 크면 남편 일 같이 도와주면서 하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여러모로 좋을 것 같아서 자격증을 준비하고 있었어. 필기는 땄고, 요즘 실기를 준비하고 있어. 

나: 애들 보면서, 집안일하면서 공부까지 하는 게 힘들지는 않아?

S: 나는 지금 사는 게 참 좋아. 사람들이 나보고 행복해 보인다고 말하더라고. 아들 셋 키우는 엄마 같지 않데. 

 

#2. '남과 비교하지 말자'는 생각


나: 내가 봐도, 너 표정이 진짜 편안하고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 사실 나는 아이들 낳고 정말 너무 힘들었었거든. 특히 둘째 낳고 나서 더 이상 사회적으로 아무런 일을 할 수 없게 됐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절망스러웠어. 다른 친구들은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데, 나만 정체되어 있는 것 같은 느낌도 있었고. 너는 그런 느낌 없었어?

S: 내 생각에는 네가 계속 좋은 성적을 받고, 카이스트도 가고 그러면서 그 안에 있었기 때문에 나중에 그걸 느낀 것 같아. 나는 고1 때 그걸 이미 겪었었거든. 너도 알다시피 과학고에 공부 잘하는 친구들도 너무 많았고, 도시에서 온 친구들은 선행이 다 되어 있는 상태였고, 내가 여기서 뭔가 아주 잘하기는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객관적인 나의 위치를 일찍 깨달은 거지. 다른 친구들과 비교하지 말자라는 생각을 나는 고1 때부터 했어. 

나: 와, 그런 생각을 고1 때 한 거구나. 네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줄은 생각도 못했어.

S: 응. 그래서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공부한다고 생각했었어. 대학 갈 때도 선생님들은 이름 있는 대학에 가기를 바라셨지만, 조금 점수가 낮더라도 내가 원하는 학과에 가고 싶어서 보건대를 갔었던 거구. 다른 사람을 신경 쓰지 않고, 내가 좋고, 나에게 이득이 되는 곳에 가자는 생각이었어. 그랬기 때문에 2년 장학금 받으면서 학비도 절약했고, 졸업 후에 병원에 바로 취업할 수 있었어. 내 삶에 주체가 나라는 생각을 계속하면서 살았던 것 같아.

나: 그러면 아이 낳고 네가 병원을 그만두었잖아. 그것도 계획을 해두었던 거야?

S: 맞아. 나는 전에도 얘기한 적 있지만 애들 셋 낳을 계획을 갖고 있었잖아. 그래서 첫아이 낳고 계획대로 그만두었던 거야. 

나: 고등학교 때도 느꼈지만, 넌 참 야무지게 살아왔다. 나는 아이 낳고 휴직을 하는 와중에도 계속 회사를 그만두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계속 고민했거든. 내가 아이 낳고 회사를 그만둔다는 걸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결국 그만두게 되었고. 그런 과정들이 힘들었었어. 그런데 너는 그런 것들을 마음속에 이미 생각하고 결정하고 했다는 점이 좋아 보인다. 


#3. 부모의 기대로부터 자유롭게 사는 법


나: 너는 혹시 어릴 때 네가 좋아하는 게 뭔지 알고 컸어? 관심 있는 분야라던가.

S: 이건 너도 느끼겠지만, 커온 환경의 문제도 있는 것 같아.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게 뭔가 잘 알지 못했었지. 어릴 때부터 생각해보고 누군가 질문해주고 그랬었으면 좋았을 텐데. 이런 걸 알았다면 인생의 방향이 더 넓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나: 그 시대에는 부모님들이 공부밖에 모르셨던 거야. 우리 부모님도 마찬가지고. 나는 그 기대에 부응하려고 또 엄청 애쓰고.

S: 나는 4남매 중에 내가 과학고를 가고 그러니까 부모님이 나한테 거는 기대가 있으셨어. 그런데 나는 방학 때 집에 가면 아빠한테 내가 아주 잘되거나 유명해지기를 기대하지 말라고 얘기했어. 나중에 실망하실 수도 있다고.

나: 그런 얘기를 부모님한테 직접 했어? 나는 그런 얘기를 전혀 못했었어. 차라리 나도 기대하지 말라고, 내 인생 내가 알아서 살겠다고 확 말해버렸으면 억눌린 감정들이 남아 있지는 않았을 텐데. 너는 그런 내용을 부모님께 자연스럽게 얘기할 수 있었구나. 네가 그 말을 하는데 뭔가 울컥했어. 

S: 맞아. 시골에서 너희 아빠도 기대가 높았을 것이고, 그만큼 또 네가 잘하니까 계속 기대를 갖고 살았을 거야. 네가 그 기대에 맞추려고 하다 보니 힘들기도 했겠다. 

나: 그러면 네가 회사 관두고 전업 주부로 사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셔?

S: 전업 주부로 사는 것이 아빠의 기대에는 못 미친 상황이기는 하지. 아빠도 속상한 부분이 있으실 거야. 그런데 나는 그냥 집에 갈 때마다 내가 집에서 애들 키우고 이렇게 살아서 부모님 자주 볼 수 있으니까 좋지 않냐고 얘기해. 우리 딸이 잘 사는구나 느끼시게. 나도 만족하고 잘 살고 있고.

나: 얘기 듣다 보니 너 진짜 자존감이 높았구나! 


#4. 남편과의 대화가 삶에 미친 긍정적인 영향


S: 자존감이 높긴 높았던 것 같기도 하고. 내가 남편 만나고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잖아. 교회를 다니다 보니까 인생이 참 짧다고 느껴졌고, 남의 시선이나 눈치 보지 않고, 여기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면서 만족하며 살자는 생각을 많이 했어. 내가 어딘가에 꼭 필요해야 하고, 내가 무엇인가 되어야 한다는 마음을 내려놓은 거야.

나: S야, 너의 그런 가치관들이 들을수록 감동이다. 나는 진짜 남들 시선에서 벗어난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깨닫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거든. 그걸 어떻게 혼자 다 깨달은 거야?

S: 아, 그리고 남편하고 대화를 많이 해. 나는 책을 잘 안 읽는데, 남편은 책을 정말 많이 읽거든. 내가 도서관에 가서 2주에 5권 정도를 빌려오면 그걸 다 읽더라고. 철학, 인문 등 여러 책을 읽는데, 책을 읽고 나면 그 내용을 얘기해줘. 그런 것들이 이런 생각들을 하는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

나: 훌륭한 부부다. 책도 많이 읽으시는구나. 병원일 하시며 책까지 읽으려면 바쁠 텐데, 대단하시다. 자기 발전을 위한 일도 게을리하지 않으시고. 그래서 이렇게 서로가 발전적이고 충분히 이해하면서 살아가나 봐.

S: 사실 나도 남편 앞에서 내가 작게 느껴질 때도 있어. 그런데 남편이 와이프가 하는 일은 크고, 중요하다는 얘기를 자주 해줘. 사회에서 생산성 있는 일을 하는 그 어떤 것보다도 내가 지금 하는 일이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고맙다고 진심으로, 진지하게 얘기해줘. 가정의 구심점이 나라고 얘기해주고.    

나: 남편분 진짜 현명하시다. 사실 내가 집안일하는 거, 하찮게 느껴질 때가 많잖아. 반복되는 집안일에 내 맘처럼 되지 않는 육아에. 그런데 남편이 이런 걸 당연하게 생각해서 속상하게 느껴질 때도 있거든. 그런 일들을 매우 크게 인정해준다고 하시니까 그것만으로도 힘들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다 풀릴 것 같아.

S: 남편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일하고, 일요일에만 쉬기 때문에 집안일은 거의 못 도와줘. 그리고 나는 일요일 하루는 남편이 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 그래서인지 남편이 집안일은 안 도와줘도 불만이 별로 없어. 

나: 밥하고, 요리하고 이런 건 안 힘들어?

S: 나 사실 요리 잘 못해. 내가 만들었는데 남편 반응이 안 좋으면 그건 다음부터 사 먹자고 얘기해. 반찬가게나 밀키트도 자주 이용하고. 요리 클래스도 다녀보기는 했었는데, 별로 요리 실력이 좋아진 것 같지는 않아. 그냥 요리 스트레스도 별로 안 받으려고 해. 

나: 오늘 너한테 많이 배운다. 나는 잘 못하면서, 요리도 잘하고 싶어서 남편이 뭔가 지적을 하면 엄청 기분 나빠하고 그랬었거든. 차라리 남편이 요리를 잘하니까 그건 남편이 해주면 좋겠다고 얘기하면 더 편했을 텐데 말이야.  


#5. 여유롭고, 느긋한 육아의 비결


나: 혹시 아이 낳고 키우면서 힘든 점은 없었어?

S: 나는 아이 키우는 것도 힘들게 느끼지 않았던 것 같아.

나: 헉. 아들 셋 키우는 엄마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니, 정말 놀랍다. 애들이 다 순한 거야? 아무리 순하다 해도 쉽다고 느끼기 쉽지 않은데 말이야.

S: 맞아. 애들이 순한 점도 있기는 해. 그런데 내 성격이 좀 느긋한 편이야. 첫째 낳고 대상포진이 왔었거든. 그래서 모유수유하다가 바로 끊고, 그냥 분유를 먹였어. 분유 먹여도 괜찮다는 생각이었고, 스트레스받지 않았었어. 기저귀 뗄 때도 스트레스 안 받았어. 그냥 뗄 때가 되면 떼겠지 라는 생각으로 지냈지. 30개월 넘겨서 뗐는데, 일부러 떼야지 하는 생각이 아니고 그냥 애가 스스로 떼고 싶다고 느낄 때까지 기다렸어. 밥도 셋다 잘 먹고. 내가 원래 잘 기다리고, 참고, 견디고 이런 걸 잘해.

나: 와. 진짜 존경스럽다. 너 얘기 듣다 보니 나는 육아도 다 잘하려고 애쓰다 보니 힘들었던 것 같아. 때가 됐는데 애가 뭔가 부족하거나 잘 못하면, 조급 해지는 마음이 있었거든. 네가 그렇게 느긋한 마음으로 육아를 하니까 애들도 순하고 느긋해서 서로서로에게 좋게 아이들과 지내는 것 같다.   


#6. 아이를 대하는 태도


나: 그렇다면, 너는 아이들이 어떻게 크면 좋겠어?

S: 하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게 뭔지 잘 알면 좋겠어. 자기 인생에 주체성을 갖고 살면 좋겠어. 

나: 나도 공감해. 어렸을 때 그냥 해야 된다고 하니까 공부를 열심히 했던 거지, 왜 해야 하는지 잘 몰랐었거든. 그래서 아이가 자기가 좋아하는 게 뭔지 잘 알고 크면 좋겠어. 그게 꼭 공부가 아닐 수도 있겠지. 자기가 좋아하는 걸 잘 알아서 그 분야에서 역량을 펼치고, 본인도 즐겁고 그러면 좋겠는 바람이야. 그런데, 아이 성향은 어때? 나는 첫째가 나랑 성향이 반대라 키우면서 또 어려움이 좀 있었거든.

S: 첫째가 욕심이 좀 있어. 내가 시키려고 하지 않아도 본인이 원해서 학원도 다 가고 싶다고 하고, 숙제랑 학습도 꼬박 다 하고, 자기 전에 책까지 다 읽고 잠들거든. 보통 그래서 11시에 잠들어서 8시에 일어나. 9살인데 학교 선생님도 자기 주도 학습이 되는 아이라고 하셔. 파고드는 성향도 있고. 

나: 알면 알수록 놀랍다. 첫째가 똘똘하고 야무지게 태어났구나. 우리 집 애들은 학습지 풀라고 잔소리를 엄청해야 겨우 풀거든. 숙제도 계속 체크하기도 하고. 스스로 알아서 한다니 놀랍기만 해. 

S: 그런데 첫째만 그렇고, 둘째랑 셋째는 성향이 또 다른 것 같아. 그래서 열린 마음으로 있으려고 해. 억지로 하려고 하지 않고, 공부가 아닌 다른 것을 한다고 해도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게 말이야.


#7. 나를 챙기는 시간


나: 육아도 현명하게 잘해나가고 있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다. 육아할 때 신경 쓴 점이 있을까?

S: 나는 가족도 중요한데, 나의 정신 건강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주말에는 집을 아무리 어질러도 그냥 놔두거든. 월요일에 애들 학교랑 어린이집에 가면 다 치우고. 내 몸과 내 마음이 편하면 아이들에게 화도 덜나게 되더라고.  

나: 맞아. 나를 챙기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은데, 너는 스스로도 잘 돌보고. 잘했다. 

S: 아직 아이가 어리니까 이 시기에는 육아를 열심히 하고, 이후엔 운동이나 취미를 열심히 해보면 되지 않을까 생각해. 요새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내용이 있어. 남편은 하루 종일 병원에 있잖아. 그래서 힘들 수도 있겠지만, 본인 일을 즐기면서, 보람도 느끼면서, 즐겁게 일을 하기를 바라고 있어. 그리고 아이들은 하고 싶고, 즐거워하는 일을 찾고, 내가 가이드를 잘해주고, 현명하게 잘해나갈 수 있기를 바라고.

나: 남편과 아이들을 향한 너의 마음이 너무 잘 느껴져. 육아를 힘들게만 느끼지 않고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고, 너도 잘 돌보고, 아이들에게도 여유롭게 지내는 모습을 보니 나도 본받아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S와 얘기하면서 마음먹기에 따라 내가 있는 상황에서 더 행복하고, 감사하게 살아갈 수 있음을 느꼈다. 어릴 때도 야무졌는데, 커서도 야무지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친구와 얘기를 나누니 나도 덩달아 행복해졌다.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간다면, S는 여행을 다녀보고 싶다고 말했다. 일찍 철이 들어, 20대에도 방학마다 과외하고, 집에만 다녀오고, 자신을 위한 여가 생활을 즐기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S가 자유롭게 세상을 여행하는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자신이 가진 것들을 소중하게 여기고, 감사하게 살아가는 친구의 행복을 진심으로 빌며 대화를 마쳤다.  


Cover Image by Bewakoof.com Official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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