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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비 Jan 03. 2022

엄마, 돈 좀 그만 줘 제발

가장 가깝고 가장 먼 엄마와 나

MBTI를 맹신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나는 인프피INFP이고 인프피로 말할 것 같으면 모든 MBTI 중 가장 돈을 못 버는 타입이라고 한다. 돈에 대한 개념 자체가 불투명하달까. 나의 경우에는 돈을 떠나서 숫자부터가 어렵다. 수에 대한 감각이 없어 돈이 나가는지 들어오는지 잘 파악하지 못한다. 어제 얼마가 있었는지 모르니 오늘의 잔고를 보며 한숨짓는 일도, 기뻐하는 일도 드물다. 그저 핸드폰 화면의 의미 없이(라고 느껴진다) 늘어선 몇 자리되지 않는 숫자들을 빤히 바라볼 뿐이다. 이것이 내가 가진 것이로구나. 나의 '돈'이구나. 내가 양말을 어디다 뒀더라.



한 번은 엄마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엄마가 능력이 있었으면 너를 더 밀어주고 도와줬을 텐데 미안하다..."


나는 부모에게서 경제적 지원을 꽤 받았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엄마의 이 말이 충격이었다. 아버지의 잇단 사업실패로 우리 집은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에 들어서던 무렵부터 늘 빚에 허덕였는데 그 와중에도 엄마는 대학까지 학비를 대주고, 월세 보증금을 친척에게 빌려다 주고, 호주로 어학연수까지 보내주었다. 그러니 경제적인 면에서 엄마가 나에게 미안해해야 하는 부분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내가 미안해하면 모를까.


"엄마한테 돈 달라고 한 적 없어. 나 그런 거 바라지도 않아."


"그래도 엄마가 이럴 때 돈도 보태주고 하면 좋잖아."


나와 남편이 아이의 안전을 생각해 오래 탔던 경차를 버리고 좀 더 큰 차로 바꾸려던 중이었고, 물론 적지 않은 지출이기는 하나 어찌저찌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잘됐다, 축하한다, 하면 될 일에 뜬금없이 왜 미안하다 소릴하느냐고 옥신각신했고, 결국 나는 참지 못하고 말을 뱉어 버렸다.


".... 엄마는 나한테 미안한 게 오직 돈뿐이야?"


"그럼, 그것 말고 내가 뭘 잘못했니?"


엄마의 날카로운 대답이 돌아왔다. 그냥 마음만 받을게요, 감사합니다, 하면 될 것을. 솔직히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돈돈, 하는 엄마가 듣기 싫었다. 돈 없어서 밥 굶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돈을 못줘서 안달인지.


사실 나는 다른 것을 사과받고 싶었다. 엄마는 자신의 힘든 현실에 짓눌려 나에게 자신의 감정을 토해내 버리는 일이 잦았다. 실제 벌어진 일보다 과민하게 반응해서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던 것, 곧잘 이성을 잃고 나를 향해 아버지랑 똑같은 년이라 욕설을 내뱉었던 것, 아는 척하면 알 것 없다, 모르는 척하면 눈치 없다 비난하며 늘 나를 구석으로 몰아붙였던 것들이 지금까지도 나를 좀먹고 있는데 엄마는 나에게 '돈을 더 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있다. 오직 '돈'만이 미안하다고 한다.


나는 엄마에게 돈은 나에게 아무런 결핍도 아니었고, 내가 아팠던 건 이런 것들 때문이었고, 그걸 사과받고 싶다고 말했다. 내 말을 묵묵히 듣던 엄마는 종국에 눈물을 쏟는 비련의 여주인공이 되어,


"나는 너에게 최선을 다했다, 더 미안한 것 없다. 나한테 그러지 마라."


절규하듯 외치며 전화를 끊었다. 엄마가 나에게 주었던 상처를 미안해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나에게 또 하나의 깊은 상처로 남았다. 내가 돈으로 엄마를 원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 상대가 용서하지 않아도 되는 잘못만 사과하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곰곰이 생각했다. 엄마는 내가 가장 고마워하지 않을 선의와, 용서가 필요 없는 사과를 나에게 던지며 받았지? 받았으니까 고맙지?라고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 같았다. 그것이 엄마의 부모로서의 마지막 자존심이고, 힘들고 외롭게 자식들을 건사했던 스스로를 향한 안타까운 위안인 걸까.



이 사건에 좀 더 근사한 결론이 지어졌다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그런 일은 없고 우리는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바뀐 것이 하나 있다면 그 후로 엄마가 주는 돈을 군말 없이 받게 된 것뿐.


나는 이것이 엄마의 나를 향한 미안함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말로는 미안한 것 없다, 으름장을 놓았지만, 엄마는 나에게 미안하고도 억울하고도 또 미안한 마음일 것이다. 내가 그렇듯이. 엄마는 참 고맙고도 억울하고도 또 고마운 사람이다. 우리는 미워하며 싸우다가도, 며칠이 지나면 주고받은 상처를 외면한 채 상대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곁을 디미는, 좀 지겹다고도 할 수 있는 모녀 사이가 되었다. 나는 나의 생일과 내 딸의 생일과 그 밖의 여러 자질구레한 날들에 엄마가 이체해주는 사과의 숫자들을 받는다. 하필이면 나에게는 의미도 없고 감각도 되지 않는 숫자들을 굳이 보내려고 하는 엄마를 말리지는 않는다. 왜 그렇게 많이 보냈어, 하면 그냥 너 사고 싶은 거 사, 하는 엄마에게 어쩌면 그렇게도 딸을 모르나 치를 떨다가도, 그래도 그 마음이 감사해서 고이 서랍에 넣어둔다. 엄마에게  '돈'이라는 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 알기에, 어쩌면 이것이 엄마가 나에게 주는 가장 큰 사과이자 사랑의 표현이라고, 그렇게 믿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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