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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준 Dec 28. 2020

혼자서 책 네 권 낸 그가 말하는 독립출판의 매력

[인터뷰] <이상 소견이 있습니다>를 출간한 박예슬 작가

* 브런치에는 전문을 실었으나, 분량상의 문제로 덜어낸 버전은 오마이뉴스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705683&PAGE_CD=N0002&CMPT_CD=M0111




그와의 인연은 약 5개월 전으로 돌아간다. 서울시청년활동지원센터 내일취재단에서 팀원과 리더로 처음 만났다. 글쓰기에 대한 조언을 들었고, 인터뷰를 잘 하는 방법, 인터뷰 기사를 쓰는 방법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때 당시만 해도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는 몰랐고, 책을 낸 작가인 줄은 더더욱 몰랐다. 



10월 중순 즈음에 책을 내기 전에 자신을 잘 모르는 남성 독자가 한 번 읽어봤으면 좋겠다며 완성된 원고를 보내줬고, 읽고 나서는 너무 좋다고 칭찬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이상 소견이 있습니다>는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너무 궁금했다. 독립출판으로 책을 네 권이나 냈고, 글도 쓰고, 요가도 한다는데, 과연 어떻게 해서 ‘독립출판 작가’가 된 건지. 지난 10일 성수동 독립서점 낫저스트북스에서 박예슬 씨를 만나 독립출판과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알고 있는 만큼만 솔직하다고 평가받고 싶다”



▲ 인터뷰를 하는 박예슬 씨. ⓒ 박예슬



-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제주도에서 태어났고 울산에서 학창시절을 보내다가 대학에서 연극에 흥미가 생긴 탓에 서울에 올라와서 극단 생활을 했어요. 이후에는 연극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워서 요가 강사도 시작하고, 기회가 닿아서 독립출판물을 만들게 됐어요. 그 덕분에 여러 가지 글 쓰는 작업도 하는 중입니다. 어느 순간 저를 부르는 말 중에 ‘작가’라는 게 있더라고요. 너무 민망한데 작업이 누적될 때마다 조금씩 그 이름에 적응해 가는 중인 박예슬이라고 합니다.”



- 이번 작품은 어떤 내용인지 소개 부탁드려요. 

“<이상 소견이 있습니다>는 한 개인의 자궁 경험담이에요. 자궁경부암 검사를 받고 나서 평소에는 이상이 없다고 결과문자를 받았는데 어느 날 “이상 소견이 발견되었습니다”라는 문자를 받았어요. 그때부터 조금은 달라진 자궁에 대한 시선을 가지고 생리를 경험하고 나한테 자궁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던 중학교 시절부터 기억나는 이야기들을 담았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 책의 절반인 전반부는 이상소견을 진단받기 전의 이야기인데, 그때도 예슬 님은 자신의 몸에 대한 고민을 놓지 않았던 것 같아요. 

“아마 이 책이 쓰인 게 이상 소견을 진단을 받은 이후라서 고민이 많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돌아보면 저는 처음부터 몸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사람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요가를 하고 해부학을 공부하게 되면서 고민을 많이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공부하고 나니까 책에 몸에 대한 고민이 더 드러나게 된 게 아닌가 싶네요.” 



- 요가와 해부학 외에도 몸에 대해 고민을 하게 해준 계기가 있을까요?

“이 책을 쓰기 전에 연초에 속초에 있는 ‘완벽한 날들’이라는 독립서점에서 <당신이 숭배하든 혐오하든>(김명희 저)이라는 책을 읽은 것도 하나의 계기인 것 같아요. 제가 여성이긴 하지만 페미니즘에 대해 크게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그와 관련한 얘기들이 많이 나오다 보니까 공부를 해보고는 싶다는 생각이 들 때쯤에 그 책을 만나게 되어서 읽게 됐어요. 그 책이 챕터마다 여성의 각 신체 부위를 테마로 해서 쓰인 책이거든요. 결국, 몸이 한 개인의 역사를 담고 있고 그런 것들이 나이를 먹듯 흔적이 나이테로 쌓여 가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 책 덕분에 생각하지 못했던 시선을 가질 수 있었는데, 이를테면 저 같은 경우는 짧은 머리보다는 긴 머리를 좋아하거든요? 근데 이 책에서는 긴 머리카락이 여성스럽다는 생각 때문에 생겨나는 사회적 시선들이 존재한다고 말해요. 저는 결국 운 좋게도 긴 머리를 좋아하는 덕분에 사회 속에서 여성스럽다는 평가를 받게 된 셈인데, 만약 제가 짧은 머리를 좋아했다면 “너는 왜 여잔데 긴 머리를 안 해?”라는 얘기도 충분히 들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내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시선 때문에 불편한 사람들이 있겠구나 싶더라고요.” 



- 어떻게 보면 대부분의 여성이 겪는 일이고, 대부분의 남성이 겪지 않을 일에 관한 이야기인 셈인데요, 글을 쓸 때 고려하신 지점이 있다면. 

“어떤 분이 이 책을 읽고 “여성들에게는 큰 공감과 작은 위안을, 그들과 함께 부대끼며 사는 남성들에게는 의미 있는 책이 될 것이다”라고 쓰셨던데 저는 그게 정말 와닿았어요. 여성 질환이라는 것 자체가 여성들끼리도 편하게 얘기를 못 할 때가 많으니까 주로 여성 질환에 관해 편하게 이야기하는 곳이 ‘네이버 지식인’이 되는 경우가 많죠. (여성과 남성이 같이 살아간다는 관점에서 봤을 때는) 저는 남성들도 이 문제를 “겪는” 거로 생각해요.


다만 걱정이 됐던 건, 여성들은 그래서 잘 이해가 되는 문제겠지만, 남성들한테는 이해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칫 잘못하면 여성 위주의 글이 될까봐 그게 걱정됐어요.”



‘여성 위주의 글’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예슬 씨는 이렇게 답했다.


“여성의 불편함을 알아달라고 강하게 호소하는 글이요. 오히려 한 개인의 이야기로 읽혔으면 해요. 그래서 일상의 문투를 유지하려고 노력했어요. (‘여성이 겪는 불편한 경험’에 대한 이야기로 읽히는 것이 문제가 될 건 있겠느냐는 질문에) 제가 페미니즘을 엄청나게 공부하고 그걸 잘 아는 사람이라서 그런 식으로 읽히는 거랑, ‘1도 모르는’ 상태인데 그렇게 읽히는 건 다른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이 책이 그냥 제가 알고 있고 일상에서 실천하는 만큼만 솔직하다고 평가받고 싶어요.”


“이 책이 만약에 심장 이야기였다면? 아니면 발가락 이야기였다면? 이 주제가 거대한 어떤 무언가로 읽히게 될까 봐 걱정할 일은 없을 텐데, 자궁이라는 소재가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아서 오히려 저는 그러질 않기를 바라면서 더 가볍게 쓸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 사실 남자들끼리는 여성이 겪는 몸의 경험에 관해서 이야기할 일이 거의 없고, 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왜 알아야 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드네요.

“그냥 쉽게 말하면, 내 여자친구, 엄마, 여동생의 문제니까 관심을 가지고 읽어봤으면 좋겠다. 그 정도예요. 책에도 나오지만, 저는 ‘자궁경부암 주사’가 이름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해요. 자궁경부암을 유발하는 바이러스는 인유두종 바이러스인데, 이 바이러스는 자궁경부암만 일으키는 게 아니더라고요. 그런데 이름이 ‘자궁경부암’ 주사기 때문에 여자만 맞아야 한다는 편견이 생기는 거고, 이 문제가 여성의 몸에만 국한되는 것처럼 인식된다고 생각해요.”



- 책을 보면, “결혼과 출산, 양육을 꼭 경험하고 싶”어 하면서도 “결혼하지 않아도 출산과 양육을 하면서 지내는” 삶도 상상을 해보고 있다고 했습니다. 마침 이 책이 출간되고 한 달 뒤쯤에 방송인 사유리 씨의 비혼 출산 보도가 화제가 되었어요. 예슬 님도 그 보도를 꽤 관심 있게 지켜보셨을 것 같아요. 

“저는 결혼과 출산, 양육을 꼭 경험하고 싶은 사람인데, 혹시나 제가 그걸 못하게 될 수도 있잖아요? 그리고 우리나라는 출산과 양육을 경험하고 싶으면 통상적으로 결혼을 해야 하는데, 사유리 씨를 보면서 ‘내가 나중에 자궁의 건강 상태가 좋지 못해서 출산하지 못하게 되면, 저런 선택을 할 수도 있게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또, 부모님이랑 떨어져서 룸메이트랑 같이 살던 시절에 룸메이트랑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어느 가족>을 봤었는데, 피가 섞이지 않아도 가족처럼 지낼 수 있는 거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던 게 문득 기억이 나네요.” 



예슬 씨는 또한 “앞으로 이런 형태의 가족들이 예전보다 점점 늘어날 것 같은데, 그런 형태도 존중해줄 필요도 있지 않을까”라고 했다. 사유리 씨의 비혼 출산 보도를 보면서 생각이 정말 많아졌다고. 



“책이 조금은 가볍고 스낵 같은 존재가 되었으면”




▲ <이상 소견이 있습니다> 책 표지. ⓒ 낫저스트북스


“시간이 많이 남은 김에 책을 쓰기로 했다. 보이지 않는 미래에 내 이름으로 된 독립출판물이라도 한 권 올려둔다면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독립서점 워크숍을 신청했고, 나는 열정을 다해 내 감정과 생각을 쏟아부었다. 생각보다 빨리 내 이름이 들어간 책 세 권을 출간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책들은 나를 예상하지 못한 삶의 방식으로 데려갔다.” (이상 소견이 있습니다, 들어가는 글)


- <이상 소견이 있습니다>가 첫 번째 책이 아니에요. 독립출판을 통해서 2018년부터 이번까지 4권의 책을 냈어요. 책을 내겠다고 생각한 이유가 있을까요?

“제주도의 독립책방인 <소심한 책방>을 방문했다가 독립출판물들이 진열된 걸 봤어요. 면면들을 살펴보니까 ‘이런 주제로 책을 낸단 말이지? 이 정도면 나도 할 수 있겠는데?’(웃음)라고 생각이 들었달까요. 그중에 하나의 책 중에는 ’책을 만들고 싶어서 출판사들을 두드려봤는데 다 거절당해서 우리가 직접 만들기로 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요. 저는 그게 왠지 모르게 멋지게 느껴지더라고요. 스물아홉, 서른 즈음에는 내 서사를 가지고 있는 책을 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처음에 독립출판은 어떤 방식으로 하게 된 건가요?

“예전에 6개월 동안 회사에 다녔는데 회사 동료가 자기가 책을 만들었다면서 가지고 온 거예요. 서울 해방촌의 ’스토리지북앤필름‘이라는 곳에서 워크숍을 통해 책을 낸 건데, 그때 처음으로 책을 어떤 식으로 만들 수 있는지 그 경로를 알게 됐어요. 그래서 다음 기수에 워크숍을 신청했고, 저도 그렇게 책을 만드는 법을 배웠어요. 이후에 제 스물아홉 살을 돌아보는 내용으로 한 달에 에피소드 세 개씩 넣어서 만든 첫 책 <서른에 머리 박치기하는 자세>을 냈어요.” 



- 처음에는 “한 권 올려둔다면 의미가 있을 것 같”아서 낸 책이었는데, 그 이후에도 독립출판을 통해 꾸준히 책을 냈어요. 혹시 독립출판이라는 형식을 고수하는 이유가 따로 있을까요? 

“지금 제가 가지고 있는 자원만 동원해서도 결과물을 낼 수 있다는 것, 그게 제가 독립출판이라는 형식을 좋아하는 이유인 것 같아요. 출판사를 끼고 내는 것도 해볼 순 있겠지만 그런 기회들이 딱히 생기지 않는 상황에서 책을 내고 싶을 때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랄까요? 최소한의 조력자만 두고 주로 저 혼자 결정하는 그 과정들이 너무 즐겁더라고요.”



- 굳이 규정된 형식에 맞춰서 책을 낼 필요가 없다는 거군요. 

“그렇죠. 우리가 보통 ’모름지기 책이란 이래야 해‘라고 생각하는 통념들이 있잖아요. 그 통념을 부숴도 될 것 같아요. 독립출판은 형식과 주제에 구애받지 않아도 되거든요. 저는 우리나라가 책을 너무 귀하게 떠받드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그런데 책이 권위의 상징에서 조금은 내려와서 가볍게 느껴지는 스낵 같은 존재가 될 필요도 있지 않을까요?” 



- 다만 출판사를 통해서 책을 출간하면 더 많은 사람이 읽게 만들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하셨을 것 같아요. 

“그 전 책들은 그런 생각을 하진 않았는데, <이상 소견이 있습니다>의 경우는 주변 분들이 ’더 많은 사람이 읽어봤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많이 해주셨더라고요. 책을 조금 다듬은 뒤에 출판사와 컨텍이 되어 좀 더 많은 사람과 소통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은 있긴 해요. 출판사와의 인연을 이 책이 만들어 줄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하죠. 아직 명확하게 마음을 정했다기보다는 출판사 컨텍을 기다리거나 나중에 투고해볼 생각까지는 있습니다.




- 처음에 책을 낼 땐 한 번 내보자, 하고 냈다면, 지금 예슬 님에게 책을 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글을 쓰고, 그걸 엮어서 책을 내는 일련의 과정에서 제 일상들을 다시 돌아보게 돼요. 저는 좋은 글이란 웃기거나, 사회적인 메시지가 있거나,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거나, 이 세 가지 조건 중 하나를 만족시킬 필요가 있다고 보거든요? 책을 낸다는 건, 이 조건에 맞춰서 제가 잘살고 있는지 점검하게 해주는 일이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제가 앞뒤가 다르지 않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는데, 솔직하게 쓰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저도 당연히 변화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생각이 달라질 순 있겠지만, 제 생각과 반하는 삶을 살고 싶지는 않아요. 책을 내는 건 그걸 계속 점검할 수 있게 해주는 도구인 것 같아요. 




▲ 강연을 하는 박예슬 씨. ⓒ 드림포레스트



- 다음에 낼 책을 염두에 두고 있나요?

”제가 해부학을 공부하면서 그걸 사람들에게 조금 더 쉽게 다가올 수 있게 하면 좋지 않을까 싶었는데, 이걸 책으로 풀어보자는 생각을 하고는 있어요. ‘해부학’이라고 하면 왠지 어려워 보이잖아요. “평소에 오랫동안 앉아 있으면 허벅지 앞쪽의 장요근이라는 근육이 굳어서 허리가 아플 수 있고 건강이 악화할 수 있으므로 자세를 바로 서게 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쉽게 몸에 대해 풀어내는 에세이를 써보고 싶어요.” 



- 자기 책을 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 혹은 독립출판에 관심이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말씀을 주신다면. 

“최근에 독립출판 관련해서 강연을 한 번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독립출판 하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라는 질문이 들어왔어요. 저는 “워크숍 들으세요”라고 답했어요. 제가 지금 일하고 있는 낫저스트북스의 워크숍을 반드시 들으라고 하는 홍보성 멘트가 아니고(웃음), 무언가를 진짜로 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그것을 실현해 낼 시간과 돈과 마음을 투자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관심이 있는데 용기가 없다면 저는 용기를 내도 된다고 말하고 싶어요. 독립출판의 세계를 관련 워크숍들을 통해 경험해 보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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