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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밈'으로 논문 쓴 사람, "목차부터 웃기고 싶었어요"

[인터뷰] <한국 인터넷 밈의 계보학> 김경수 작가

by 김민준 Mar 04. 2025

* 분량상의 문제로 브런치에는 원문을, 줄인 버전은 오마이뉴스에 실었습니다. 오마이뉴스 기사는 아래 링크를 클릭하면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106412



인터넷에 상주하는 시간이 많다. 유튜브와 트위터를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일상을 살고 있다. 가끔 유튜브에서 엄지 손가락으로 쇼츠를 넘기다가 10분은 금방 쓰는 모습을 발견할 때는 자괴감이 들 정도다. 그럼에도 중독적인 재미를 참지 못하는, 다양한 ‘인터넷 밈’들이 우리를 반겨주고 있다.


인터넷 밈으로 논문을 쓴다면? 이런 웃긴 아이디어를 몸소 실천으로 옮긴 이가 있다. 김경수 작가는 방영된지도 20년이 넘은 SBS 드라마 <야인시대>를 가지고 대학원에서 석사논문을 썼다. 아니, 정확히는 <야인시대>의 등장인물 중 한 명인 심영(김영인 분)을 가지고 노는 콘텐츠인 이른바 ‘심영물’을 가지고 논문을 썼다. 


논문이 세상 밖으로 나올 때부터 그것을 기반으로 첫 책 <인터넷 밈의 계보학>이 나오고 나서까지, 인터넷 좀 한다는 유저들이 이 파격적인 시도에 열광을 했다. 알라딘 책펀딩에서 목표 금액을 한참 웃도는 성과를 내는 한편, 책의 내용과 목차가 SNS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책 출간으로부터 시간이 조금 지난 지난 2월 9일, 서울 모처에서 김경수 작가를 만났다. 다음은 김 작가와의 일문일답.


     

평범한 이들이 밈을 쓰는 마음에 주목하다


논문 마지막 페이지.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밈을 활용하여 마무리를 맺었다. ⓒ 김경수논문 마지막 페이지.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밈을 활용하여 마무리를 맺었다. ⓒ 김경수




-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인터넷 밈의 계보학>을 쓴 김경수 작가입니다. 영화에 대한 글로 밥 벌어먹는 평범한 생활인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 책이 나온 지 7개월가량이 됐는데, 반응이 괜찮다고 생각하시는지. 

“처음으로 돌아가 보면, 책 출간을 위한 펀딩이 이례적으로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해요. <씨네21> 객원기자 등 다양하게 활동을 하고 있지만 먹고 사는 문제는 늘 고민이거든요. 처음에는 이 책을 통해 다른 영역을 개척하면서 여러 곳에 글을 쓸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자는 느낌이 강했는데, 책 자체가 많은 관심을 받을 줄은 몰랐거든요, 어쨌거나 저한테 영화비평가라는 정체성은 중요하고, 그 정체성으로 이 책을 쓴 거예요. 


이 책은 결국 인터넷이 우리의 감각을 어떻게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는지를 내가 과거부터 직접 온 몸으로 감각하며 경험했던 게 반영되어 있어요. 인터넷 밈의 탄생기부터 지금까지 인터넷 밈이 저의 소통 방식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보편화하려는 시도거든요, 그런 것들을 사람들이 잘 읽어줄까 하는 불안함도 사실 있긴 했죠. 지금은 좀 무덤덤해요. 책 때문에 일이 들어오는 시기는 이미 지났으니까요(웃음). 지금은 이 주제로 다른 분들이 의미 있는 얘기들을 더 많이 해줄 것 같아서 초연해진 상태랄까요.”



- 책 이전에 석사학위 논문이 있었죠. SBS 드라마 <야인시대>를 가지고 논문을 쓰겠다고 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야인시대> 등장인물인 심영을 가지고 노는 이른바 ‘심영물’은 예전부터 인터넷에서 유명한 놀이문화였는데요, 제 주변에도 심영물 마니아가 많았어요. 이걸 영화의 한 장르로 분석하면 어떨까 하는 발상에서 시작됐어요. 분석하면 할수록 규칙이 정해지고 ‘빌런’과 ‘영웅’이 생기면서 역할이 정해지고 계속 변주가 일어나는 모습이 정말 영화의 한 장면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이게 SNS에서 소소하게 화제가 됐었잖아요. 그때 기분이 어떠셨는지 궁금해요.

“마지막에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가영이 짤이 나오잖아요. 그게 즉흥적으로 넣은 건데요, 논문을 등록하기 하루 전이었어요. 마지막으로 검토하다가 논문의 끝이 너무 심심한 것 같아서 그 사진을 넣겠다 결심하고 지도교수님 허락 없이 넣고 나서 말씀드렸죠(웃음). 그렇게 해서 탄생한 건데, 사실 반응이 뜨거울 줄은 솔직히 몰랐습니다. 밈이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자 이 시대의 언어 소통 수단이라면, 논문 마지막에 넣는 정도는 시도해도 될 것 같았어요. 근데 논문 자체보다 논문의 마무리가 더 반응이 좋을 줄은 몰랐네요.”




- 사실 논문이라는 것이 학술의 장에서 논의가 되는 엄격함 같은 게 있잖아요. 그래서 <야인시대>를 가지고 논문을 쓴다는 건 결심이 필요한 문제가 아니었을까 싶은데요.

“그런데 의외로 교수님이 긍정적이셨어요. 인터넷 밈을 미술의 영역에 도입하려고 한 히토 슈타이얼 같은 미디어 아티스트도 있기도 했으니까요. 인터넷 밈이 여러 예술에 서서히 영향을 끼치던 중이었거든요. 다만 전반적으로 다루기보다는 하나의 사례를 정하는게 좋겠다고 하셔서 심영물을 고른거죠.”



- 작가님이 생각하는 심영물의 매력은 뭘까요?

“한국에서 심영물만큼 오래되고 데이터베이스가 많은 밈이 잘 없어요. 수명을 다해서 사라질 뻔했다가 부활한 밈이기도 한데요, 처음에는 DC인사이드의 ‘합성 필수요소 갤러리’에서 흥행을 했지만 배우 본인이 불편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바람에 사그라들었다가 다시 부활한 거에요.  이후에는 유튜브로 넘어가서 또 다른 방식으로 유행을 했거든요. 보통 밈은 시대가 흘러서 죽어버리면 끝인데, 심영물은 달랐어요. 끈질긴 생명력을 가졌달까요. 논문을 쓰기 전에만 해도 이른바 ‘심영물 르네상스’가 열리고 있었던 셈이죠(웃음). 특히 ‘수월’이나 ‘차커’같은 훌륭한 심영물 창작자들이 많이 있었어요. 이 광경을 지켜보면서 이건 반드시 기록으로 남겨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논문을 쓰게 되면 정말 잘 완성해야 한다는 결심을 했던 거고요.


논문을 한창 쓰던 시기에 심영의 오프라인 생일 카페가 열렸는데요, 이게 인터넷 밈을 대상으로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열린 ‘생카’거든요. 제가 안 가볼 수 없잖아요?(웃음) 가보니까 거기는 야인시대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과 야인시대 밈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어우러진 통합의 장이었더라고요, 특히 카페에서 프로젝터로 심영물을 단체로 관람하는 경험은 무척 새로웠어요,.”



- 작가님의 밈 연구가 다른 연구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은 뭘까요?

“인터넷 밈을 예술로 볼 수 있을까? 된다면 우리에게 어떤 충격적 경험을 안겨줄 수 있을까? 이것을 미학적인 경험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제가 고민했던 지점이에요. 그 이전까지 인터넷 밈에 관한 연구들은 밈이 어떻게 정치적으로 사람들을 결집하게 만드는지에 집중했거든요. 한쪽에는 일베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아랍의 봄’이 있다고 볼 수 있죠. 밈이 사람들을 모으고 그것을 정치적 언어로 쓰이는 방식에 집중한 게 대부분이에요. 


오히려 저는 정치적 맥락보다는 평범한 사람이 인터넷 밈을 어떻게 감각하고 향유하는지가 더욱 궁금했어요. 논문과 책을 쓰는 동안에 인터넷 커뮤니티를 많이 참고했지만 일부러 오프라인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들이 인터넷 밈을 어떻게 쓰는지 이야기를 많이 들으려고 했습니다. 제가 1995년생인데, 제가 어릴 때는 학교 다녀와서 ‘투니버스’에서 애니메이션 보고, 학원 다녀오고, 컴퓨터 한 두 시간 하고, 이런 식으로 하루에 향유할 수 있는 쾌락의 양이 정해져 있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핸드폰을 통해서 무한정 누릴 수 있잖아요. 어렸을 때 느끼던 감정이랑 완전히 달라졌다고 생각해요. 혼란스러웠죠. 



- 학술적인 훈련을 대학원에서 받으신 거잖아요. 조금 더 대중 친화적인 책을 쓰는 데에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저는 예전부터 다양한 매체에서 글을 썼었는데, 그때부터 편집자한테 ‘글이 너무 딱딱하다. 하려는 말은 뭔지 알겠는데 이거는 독자들이 읽을 수가 없다’면서 여러 번 잔소리를 들어봐서 익숙해요(웃음). 그분들이 제 글을 이렇게까지 꼼꼼하게 봐주고 고쳐주는 열정을 통해 많이 배웠어요. 이야기가 사람들한테 전해지기까지는 진짜 많은 노고가 필요하다는 것을요. 그리고 논문은 어떻게든 튀어 보여야 한다면 대중매체에 연재하는 건 내가 다른 사람들이 쓰지 않은 자리를 메워주는 존재라는 걸 알게 되는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 대중적인 글쓰기는 내가 얼마나 잘났는지 보여주는게 아니라는 얘긴거군요.

“그렇죠. 내가 이 매체 안에서 얼마나 잘 어우러질 수 있는지가 중요해요. 매체 스타일에 맞춰서 글을 쓸 필요도 있는거죠. 무엇보다 매체 안에서 내가 받는 신뢰가 어느 정도인지 알게 되거든요. 내 글이 어느 정도 가치가 있는가를 확인을 받게 되는 거에요. 매체에 따라 저한테 바라는 글이 있고, 거기서 저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저를 위한 빈 자리가 하나 있는 셈이죠. 그 자리를 내가 채우는 걸 인지할 필요가 있었어요. 편집 과정에서 글이 진짜 많이 깎였는데요(웃음), 다양한 피드백을 받으면서 결국 읽는 사람의 입장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경험이 됐어요.”


- 대중서에서 ‘계보학’이라는 단어를 잘 보지 못했던 것 같아요. 계보학을 좀 더 쉬운 언어로 설명해주신다면. 그리고 왜 계보학이라는 단어를 택한 걸까요?

“웃김과 진지함이 공존하는 제목을 지으려 하기도 했고요. 프랑스의 철학자인 미셸 푸코의 계보학에서 영향을 받은 건데요, ‘시기마다 유통되는 지식이 다르다’는 것이 핵심적인 메시지에요. 이걸 밈에 적용하면 인터넷 밈 역시 여러 시대로 구분되고 시대마다 달라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시대별로 유행하는 매체가 달라지니 그에 따라 밈도 달라지고, 그에 따라 우리가 하는 경험과 느끼는 감정도 변해왔다는 맥락을 ‘계보학’이라는 단어가 담고 있어요.”


재밌기 위해 발버둥치다


책의 목차. 모두 특정 문구나 밈의 패러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 필로소픽책의 목차. 모두 특정 문구나 밈의 패러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 필로소픽



- 목차 제목이 모두 밈으로 이루어져 있잖아요. 이런 생각은 대체 어떻게 하신건가요.

“이것도 즉흥적으로 생각한 거예요(웃음). 밈에 관한 책이니까 당연히 밈으로 목차를 짜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거죠. 솔직히 말해서 웃기고 싶었습니다. 기획 단계에서도 책을 좀 더 웃기게 구성해보자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고요. 사실 제 근본적인 고민인데, 이젠 어떤 글을 써도 마블 영화보다 재밌을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최소한 그 정도 재미에 따라가려고 발버둥 쳐야 겨우 따라잡을 수 있는 것 같아요.” 



- 그런데 밈을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사실 좀 난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따로 본문에서 설명을 해주진 않잖아요.

“그 밈을 잘 모르는 사람이 봤을 때 이 목차만 봐도 웃기다고 느끼게 하는게 목표였어요. 사실 다 인터넷에서 처음 유통된 제목은 아니에요. 예를 들어 “꽁꽁 얼어붙은 CG 위로 개죽이가 걸어 다닙니다”는 뉴스 멘트 패러디고, “나는 병든 병맛이다, 나는 악한 병맛이다”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책 <지하로부터의 수기>의 첫 문장 패러디고요. 밈을 모르는 뉴스 시청자와 문학 독자도 이걸 보면 웃길 것 같잖아요?” 



- 더 많이 다루고 싶었는데 편집자분이 말리셨다고 들었습니다. 

“제 과욕을 누르는 데에 도움이 많이 됐어요. 처음에는 욕심이 앞서서 인터넷 기술이나 일본 커뮤니티가 한국 인터넷 밈에 영향을 준 것 등 온갖 내용을 집어넣었거든요. 그렇게 하니까 이론적인 배경만 거의 200페이지가 되어버리더라고요. 편집자님 덕분에 어디에 집중할 건지 중심을 잡을 수 있었어요. 


남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유통되는 밈을 잘 다루지 않은 것도, 이미 <보통 일베의 시대>(2022)나 <우리는 DC>(2012) 같은 탁월한 연구서들이 나와 있어요. 저는 오히려 일상적인 영역에서 사람들이 근원을 모르고 쓰는 밈들에 공간을 내어주고 싶었습니다. 특히 인터넷 밈이 폭력적인 사유를 많이 퍼뜨리는 세상이니, 그 반대를 보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러면서 점차 남초 커뮤니티에서 유행하는 밈들에 관심이 시들게 됐어요, ‘사람들이 잘 모르는 세계에서 이런 논의들이 오가고 있다’는 식으로 커뮤니티 관찰자를 자처하면서 인터넷 밈을 다루는 태도를 경계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많이 안다는 것을 자랑하는 자아도취로부터 거리두기를 하고 싶었어요, 



- 쳐내긴 쳐냈어도 이미 책에 수많은 밈들이 나오죠. 어떤 기준으로 골랐나요?

“대부분이 알 수 있는 대중적인 밈을 중심으로 논의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편집자분이 2000년생으로 저보다 어리거든요. 그래서 편집자 이후 세대도 잘 알만한 밈들로 구성했습니다. 저도 인터넷 문화에 익숙하긴 하지만 편집자가 저보다 더 ‘네이티브(native)’에 가까우니까 그분 말을 좀 더 많이 수용했어요.”



- 사진 사용 허락을 받지 못해서 QR코드로 대체한 경우도 꽤 있습니다.

“저작권 허가를 받기 위해서 편집자분이 열심히 노력해주셨어요. 연예인 소속사나 방송사한테 연락을 엄청 돌렸죠. 원래는 밈을 촬영한 사진을 올린다거나 하는 방식으로 저작권 이슈를 우회할 수는 있었는데요, 그건 오프라인의 흔적이 남는 거잖아요? 이 책은 ‘디지털 파일’로서의 인터넷 밈을 다루는 거니까 디지털 파일 형태로 남겨놓고 싶었어요. 그리고 사실 원래는 접속하면 제목이랑 다른 내용으로 소위 ‘낚시’를 하는 QR코드를 넣으려고 했는데요, 기획 과정에서 빠진 뒤에도 QR코드라는 콘셉트는 계속 가져가면 좋겠다 싶었어요. 아무래도 실험적인 주제에는 실험적인 콘셉트가 필수라고 생각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u_ziPVJyO1o


- 요즘 주목하는 밈이나 밈과 관련된 현상이 있으신가요?

“이 인터뷰가 나갈 시점이면 워낙 흐름이 빠르다 보니 유행이 끝났을 밈들이 많을 것 같아요(웃음). 최근에는 ‘제프프’ 채널에서 <오징어게임2>를 이용해 만든 ‘얼음’ 영상을 재밌게 봤어요. 사실 <오겜> 시즌2는 시즌1보다 밈이 될만한 장면들은 많지 않거든요? 그중에 성기훈이 첫 번째 게임에서 외쳤던 ‘얼음!’이라는 대사가 갑자기 다른 방식으로 퍼지면서 유행을 타는게 흥미로웠어요. AI를 활용해서 얼음 밈을 새롭게 구성하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저는 원래 AI를 밈 제작에 활용하는 데에 부정적이었는데, AI가 가지는 어설픔을 통해서 상황극을 만드는 모습들이 재밌다고 느꼈어요.”



- 제프프도 그렇고, 다양한 인터넷 밈 제작자들이 많은데, 사실 이 모든 밈들이 다 유행하는 건 아니잖아요. 어떤 것들은 있는지도 모른 채로 사라지기도 하고요. 재밌다고 흥행하는 것 같지는 않은 것 같아요. 밈의 흥행을 결정 짓는 요소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너무 매끄럽게 잘 만들면 밈이 아니라 작품이 되는 것 같아요. 어느 정도의 어설픔이 있어야 해요. 제프프만 봐도, 음정은 따로 만지지만, 거기에 적용되는 황정민의 대사는 한 땀 한 땀 수작업으로 조립하잖아요. 원본 가사와는 다르지만 어떻게든 짜맞추니까 생겨나는 ‘기획된 어설픔’에서 재미가 유발되는 것 같습니다. 덧붙여서 그런 밈들은 우리에게 웃김과 열받음 사이의 이상한 감정, 즉 ‘킹받는’ 감정을 안겨줘요. 그런데 그런 킹받는 감정은 짜증은 나지만 불쾌하진 않거든요. ‘짜증은 나는데 재밌더라’는 평가를 하게 만드는 거죠.”


극단주의와 부족주의를 넘어서는실없는 농담으로서의 밈에 주목하다


- 그렇게 다 함께 웃고 즐길 수 있는 밈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정치적 밈은 아닌 것 같아요. “좀비처럼 퍼져나가는 정치적 밈은 정치적 양극화를 심하게 만든다”(p.209)고 지적하셨죠. 

“<오겜> 시즌2 예시를 다시 들면, ‘여기서 나가자’와 ‘계속 게임하자’ 두 개의 의견은 사실 관객이 보기에는 상식과 비상식의 대립이잖아요. 그런데 OX로 선택할 수 있게 만들면 찬-반의 문제가 된단 말이죠. 마찬가지로 일반적인 밈과 정치적 밈은 같은 밈이 아니라 다른 장르로 다뤄야 한다고 생각해요. 전자는 계속 다른 것들을 변주하면서 다양한 재미를 만들어 나가면서 일상에서 소통의 도구로 접목되는데, 정치적 밈은 대부분 비슷한 의미로 수렴되면서 프로파간다로 이용되고 극단주의, 부족주의로 나아갈 위험을 담고 있죠. 제프프의 ‘얼음’ 영상이 정치적으로 극단적인 성향으로 나아갈리는 없잖아요.”



- 그렇다면 정치적 밈은 다양한 재미로 확장되기 어려운데도 왜 유행을 할까요?

“책에서도 얘기했지만(p.212) 상대방을 정당하게 비판하는 게 아니라 비난을 하려면 희화화가 동원되어야 하고, 그런 희화화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늘수록 상대방을 적으로 규정하고 우리를 규합하는 행위가 늘어나요. 명확한 근거가 없어도 희화화할 거리를 계속 만들어 내면 될 뿐인 거죠. 이런 게 극단주의로 이어지기 쉬운 것 같아요. 우리의 삶은 고통스러운데, 그걸 쉽게 해결해줄 수 있는 정치적 믿음으로서의 밈과 음모담을 소비하는 겁니다. 물론 실제로 고통이 해소되진 않죠.”



- 그런 성향이 딱히 특정 진영의 문제인 것 같지도 않습니다.

“맞아요. 상대방이 그러니까 나도 그러는 거죠. 어느 쪽이건 진영 논리에 포섭이 되면 모든 행동을 다 정치적인 계산에 따라서 하게 되는데요, 넓게 보면 지정학이고 좁게 보면 정치 공학인 셈이죠. 거기에 빠지면 내가 세상의 논리를 모두 파악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는 듯해요. 저는 거기서 벗어난 밈을 다루면서 함께 실없이 웃으며 소통하는 삶의 소중함을 얘기하고 싶었는데요, 정치적 밈이 횡행하는 이 시점에 더더욱 ‘하잘 데 없는 거로 웃고 떠드는 것의 가치’가 더 확보되어야 하지 않나 해요. 엄청 중요해 보이는 것들이 사실은 아무것도 아니란 것을 알게 될 때의 해방감을 함께 누리고 싶어요. 정치적 밈을 통한 재미를 다른 재미로 대체하는 게 우리의 과제인 것 같습니다.”



- 영화 같은 대중매체에서 인터넷 커뮤니티와 밈 문화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경우가 늘어나는 것 같아요. (p.225) <베테랑2>나 <댓글부대>도 그랬고요. 영화라는 형식을 통해 인터넷 밈을 다루려는 시도는 왜 늘어나고 있다고 보시나요?

“이미 인터넷이나 커뮤니티, ‘사이버 렉카’ 같은 것들이 이미 일상에 깊숙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국내에서 흥행한 작품들 대부분을 보면 다 과거의 문제에 주목하거든요. <서울의 봄>이나 <파묘>만 봐도 군부 독재나 제국주의 시점을 다루고 있죠. 아마 매체가 ‘지금 우리’에게 코멘트를 해서는 안 되고 역사적 장면에 대해서만 코멘트를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게 아닌가 해요. 그래서 동시대의 문제를 다루면 다소 어설프다고 관객들이 느끼는 것 같아요. 실제로 인터넷 문화를 영화들이 다루는 경우에 그것은 영화 속의 일이기도 하지만 화면 바깥 현실에서도 일어나고 있는데, 마치 그 둘이 분리되어 있다고 느껴지게 연출되는 점들이 아쉬운 지점이랄까요.”



- 앞으로 다루고 싶은 주제, 다음에 다룰 예정인 주제 등에 대해 얘기를 듣고 싶습니다.

“아직 찾아 나서고 있긴 한데요, 제 경험에 기반한, 좀 더 에세이적인 것들을 쓰고 싶어요. 제가 모범으로 삼는 분 중의 한 명이 안희제 작가님이에요. 아이돌 팬덤과 20대 남성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본인이 경험하고 있는 것과 계속 연결시키잖아요. 저도 이제는 밈이 아니라 제 삶에 연관된 이야기를 하려고 해요. 인터넷 밈은 나날이 유행 주기가 빨라지고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만큼 이걸 더 다루게 되면 트렌드를 분석하는 식으로는 할 수 있겠지만 너무 빨리 소비되어 버리는 기분이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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