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를 사랑하라, 성소수자는 빼고?
헌법재판소는 군형법 92조의 6(이하 92조의 6)과 관련하여 2002년, 2011년, 2016년 세 차례의 위헌법률심판에서 세 번 모두 합헌을 결정한 바 있습니다. 92조의 6은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명시한 법입니다. 헌재는 당시 2016년의 결정에서 '그 밖의 추행'을 "일반인에게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한 동성 군인 사이의 성적행위"로 규정했으며 "군의 특수성과 전투력 보존을 위한 제한으로 동성군인을 이성군인에 비해 차별 취급할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밝혔다.
92조의 6은 동성 군인 사이의 성관계가 합의하에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처벌합니다. 애초에 동성 간의 성관계가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도덕관념에 반하'는 것이라는 관점 자체가 이 조항이 성소수자 군인을 타겟팅하고 있다고 비판받는 이유입니다. 물론 세 차례 심판을 거치면서 2002년 7대 2에서 2016년 5대 4로 위헌 의견이 점차 늘어났지만, 분명한 것은 결과적으로는 성소수자를 바라보는 사회 일반의 인식('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한다')과 다르지 않으며 아직도 이 조항 때문에 처벌받는 군인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군인권센터가 펴낸 <군인권센터 2017년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해당 조항으로 피해를 받은 군인의 수가 2016년 2건에서 2017년 22건으로 11배 증가했다고 합니다. 이 증가폭은 소위 'A대위 사건'이라고 불리는 육군 성소수자 색출 사건이 수면위로 떠오르는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입니다.
A대위 사건과 관련하여 더 이해가 필요하신 분들은 이 글 을 확인하시면 됩니다.
2017년 연세대학교에서 열린 성소수자 인권포럼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인권포럼은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이 주관하는 학술행사로, 매년 열리고 있습니다. 당시 '군대를 퀴어하게 - 군대 X 퀴어 이야기방' 세션에 들어가 패널들의 발표를 들었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성소수자가 군대에서 어떤 대우를 받는지, 성소수자에게 있어 퀴어 프랜들리한 군대란 어때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소중한 자리였습니다.
발제가 끝나고 참석자들 중 한 분이 손을 들어 질문을 했습니다.
"저희 아들이 게이인데요, 병역거부를 고민하고 있어요"
슬프게도 이것은 답이 나와 있는 문제입니다. 물론 최근에야 대체복무를 만들어놓지 않는 병역법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있었지만, 아직까지 병역을 거부하면 감옥에 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성소수자 당사자에게 있어 이는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지요. 아직까지 한국의 군대는 퀴어에게 가혹합니다. 그 부모님도 결국 성소수자인 아들이 군대에 가게 되면 겪을 일들이 훤히 보이는 상황에서 병역거부라는 선택지를 한번쯤 생각해 봤을 테지요. 누군가는 병역거부를 고려하지 않는데, 누군가는 고려할 수 밖에 없는 현실, 우리는 그것을 '차별'이라고 부릅니다.
(사진 출처 : 비디오머그 유튜브)
또 다른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전차 조종수로 활약해 오던 하사 A가 트랜스젠더로 정체화한 이후 성전환 수술을 받았습니다. 당시 소속 부대의 배려와 승인이 있었고 당연히 이들은 A하사가 계속 복무를 이어가기를 바라고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육군은 A하사를 전역심사위원회에 회부를 했습니다. 의무조사를 진행한 후, 성전환 수술이 국방부령 심신장애 등급표의 '고환, 성기 훼손'에 해당된다는 이유로 심신장애 3급 판정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오늘(22일), 오전 10시에 열린 전역심사위원회에서 그에게 전역 결정을 내려졌습니다. 그리고 A하사라고 불렸던 그는 직접 신상을 공개하기에 이릅니다. 변희수. 그의 이름입니다.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육군본부는 변 하사에게 내일 즉시 군을 떠날 것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본래 전역 처분이 날 경우, 통상 처분일로부터 최대 3개월까지 여유를 두고 전역일자를 정하는 것이 상례"라고 군인권센터가 지적한걸 감안하면, 참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요?
예상대로, 혐오의 물결이 몰아치고 있습니다. 이 죗값을 우리는 어떻게 치러야 할 까요. 군대는 성소수자가 없는 공간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한국사회는 군대에서 성소수자의 존재를 애써 지우려고 하고 있습니다. 병역거부까지 고려하게 만들어놓고, 막상 병역을 거부하면 잡아갑니다. 합의된 섹스를 해도 잡아갑니다. 성전환수술을 하면 군대에서 쫓아냅니다. 군대에 위협적인 것은, 저출산이 아니라 군대에 있겠다는 사람을 기어이 쫓아내려는 그 태도에 있지 않을까요?
성소수자에게 애국심을 허하라, 진중권씨가 오늘 페이스북에 쓴 글에 나오는 문구입니다. 군대가 없어지지 않는 이상, 누군가는 군대를 가야 합니다. 변희수 하사는 군대에 남아 있고 싶어했고, 자신의 능력을 국가를 위해 쓰고 싶어했습니다. 그것만큼 숭고한 일이 없음은 분명합니다. 가기 싫어하는 사람 붙잡고 괴롭히지 말고, 남고 싶어하는 사람이나 잡아서 군의 역량을 향상시킬 생각이나 하시는게 낫지 않겠습니까?
p.s 그나저나 '변희수 성전환 부사관'이라는 표현을 쓰는 언론들이 많던데, '성전환 부사관'이 무슨 보직 이름입니까? 본인들의 저열한 인식을 자랑스럽게 표출하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