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털 알러지는 엄밀하게 말하면 고양이 털로 인한 알러지가 아니다. 고양이는 그루밍(자신의 몸을 혀로 핥아서 다른 이상한 냄새를 없애는 과정)을 많이 하는데 고양이 침이 냄새를 없애고 깨끗하게 하는데 특별한 효과가 있다. 그래서 고양이는 거의 목욕을 시키지 않아도 된다. 레이도 목욕한 지 만 2년이 다 되어간다. 목욕을 하지 않아도 레이에게는 늘 햇빛 냄새가 난다. 발에서는 아주 살짝 귀여운 꼬린내가 난다. 이 냄새도 얼마나 좋은지 ^^
고양이 털 알러지는 고양이 침(타액) 알러지다. 고양이가 침을 묻혀 그루밍 한 털에 대한 알러지다. 그러니 강아지 털에는 알러지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결혼 전 강아지를 키우고 있었고, 알러지는 전혀 없었다. 엄마가 길고양이 새끼를 입양할 때 일주일 정도 같이 있었는데 그때도 알러지 반응은 없었다. 아주 심한 사람은 고양이와 같은 공간에 있으면 바로 알러지 반응을 일으키지만 나는 조금 심한 정도였기 때문에 레이가 오고 서서히 알러지 반응이 나타났다.
주된 반응은 알러지 비염이다. 처음에는 코감기인 줄 알고 약을 먹다가 병원에 갔더니 알러지 비염이라고 했다. 고양이를 키운다고 했더니 알러지 검사를 해보자고 하여 혈액검사를 했고, 80가지의 알러지 원인 중 유일하게 고양이 털에만 반응이 나타났다.
비염과 더불어 재채기와 눈이 많이 가렵고(가려움 억제 안약을 넣는다.), 눈이 부어오르기도 한다. 청소를 깨끗이 하고, 잠자리를 따로 하고, 털에 부비지 않으면 좀 낫다고 하는데 불가능하다. 저 셋 중에 할 수 있는 건 청소를 깨끗이 하는 것뿐이다.
친구 중 한 명이 알러지 비염이 어릴 때부터 있어서 가끔 병원에서 주사를 맞았다. 어릴 땐 몇 달에 한 번씩 맞았고, 커서는 1년에 한두 번 맞으면 삶의 질이 달라진다고 했다. 그 친구의 추천으로 나 역시 주사를 맞았는데 한 번 맞으면 3-4 달은 비염이 잠잠했다. 눈 가려움은 여전하지만 비염에는 효과가 있었다.
2월 중순경부터 주사 발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서울에 있는 병원이기에 기차를 타고 가야 해서 코로나 상황으로 계속 미루고 있었다. 출근을 하면 하루 9-10시간은 레이와 떨어져 있으니 좀 나았는데 요즘엔 매일 24시간을 함께하는 중이라 비염이 더 심해졌다. 비염에 좋다는 밀랍초를 켜도 효과가 없었다.
어제 대청호 산책을 하다가 그가 내가 행복하기 위해 퇴직까지 했는데 요즘 행복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눈은 붓고, 가려움에 지물거리고, 코가 막혀 숨 쉬기 힘들어해서 그렇게 보였나 보다. 카페도 못 가고 마카롱도 못 먹고... (카페는 마스크 벗고 차 마셔야 해서 못 갔고, 마카롱 파는 곳은 시내여서 못 갔다.)
행복하지 않은 건 아니다. 그냥 코막힘이 많이 곤란했을 뿐.
그가 마카롱을 많이 사주겠다고 하여 오랜만에 대전 시내로 갔다. 12개의 마카롱을 사서 집으로 오면서 자동차로 서울에 가서 주사를 맞고 오는 게 어떨까 하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시간은 벌써 2시가 다 돼가는 중이었다.
우리는 즉흥적이지 않다. 오히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는 편이다.
오후 2시면 이미 외출시간을 많이 오버했다. 계획에 없던 마카롱까지 사러 갔다 왔으니까.
집에 돌아가 잠시 쉬다가 청소하고, 저녁 해 먹을 시간이었다.
내일은 토요일이고, 병원은 오전 진료만 하고, 그 병원 토요일 오전은 사람이 너무너무 많고, 오전 일찍 가려면 대전에서는 아주 일찍 출발해야 하고, 명동에 있는 병원이라 주차를 하려면 백화점에 할 수밖에 없고, 백화점 문 열기 전 도착할 텐데 주차가 고민이고,
우리 생에 가장 즉흥적으로 오후 2시 넘어서 서울로 출발했다.
대청호 산책 차림 그대로.
5시 반쯤 병원에 들러 주사를 맞고, 9시 좀 전에 집에 왔다.
그리고 난 편안하게 숨 쉬며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