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벽쪽지 Jul 12. 2020

괜찮냐는 말에는 꼭 괜찮다고 답해야 할 것 같다.

정답이 아니어도 괜찮아.

                               

                           "너 괜찮아?"

 새해 들어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새해 복 많이 받아.’ 라거나 ‘올해는 좋은 일만 있길.’과 같은 말이 아닌 건 올해가 처음이었다. 보통은 무의식적으로라도 그런 말들을 먼저 뱉을까 싶기도 한데, 사실 그런 어정쩡한 인사말보다는 내 안부를 묻기엔 이보다 더 나은 말이 없기도 했다. 내가 아닌 주변 사람들이 가장 많이 했던 말이기도 하고 스스로에게 물었던 말이기도 하다.


 2020년이 되어 포기한 것들이 참 많다. 평생 꿀 줄 알았던 꿈도, 평생 함께 할 것 같던 사랑도, 밥벌이하던 직장도 모두 잊었다. ‘잃다’라는 표현은 사람을 비참해지게 만든다. 지금 내가 움켜쥐고 있는 것들마저도 작고 하찮은 것들이 돼버린다. 그래서 문법상, 어법상 맞지 않더라도 나는 ‘잃었다’는 표현은 죽어도 쓰기 싫다. 나는 ‘잃은’ 게 아니라 내가 스스로 ‘잊은’ 거다. 나는 내가 되지 못한 잃은 것을 잊었지만 언젠가부터 더 이상 꿈은 꾸어서도 안되고, 다른 사랑은 하지 못할 거고, 새로운 직장을 알아봐야 한다는 게 당연한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내가 꾸는 꿈은 현실에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어긋난 그릇. 내가 담아둔 것들을 옮기기에는 그 그릇이 너무 크고 높았다.


 꿈과는 점점 멀어졌다. 나는 첫째니까 부모님의 부담을 나라도 덜어드려야겠다는 부담감, 무조건 일찍 돈을 벌어야 한다는 압박감, 글은  뒤에 써도 되지 않겠냐는 안주함이 나를 그렇게 만들어갔다.


누군가 나를 본다면 딱하게 여길지도 모르겠으나 정작 나는 아무렇지 않다. 사실 처음부터 괜찮았던 건 아니다. 그 시간에 충분히 아파하고, 내 마음을 돌아보고 나서야 나는 정말로 괜찮을 수 있었다.



ㅣ포기해도 돼.

사람들은 상대를 대할 때 펼쳐진 결과부터 본다. 그 결과라는 건 지금 당장에 처해있는 상황, 그 사람의 입장을 들어볼 생각도 않고 멋대로 생각하는 일이다. 처음 보는 사람이든 나를 잘 아는 사람이 든 간에 누군가를 판단한다는 것, 이건 참 무례한 일이다. 언젠가부터 괜찮냐는 질문에는 대답을 하기 싫어졌다. 그도 나를 걱정해서 한 말이겠으나 나를 더 비참하게 억누르는 것 같았다.  


“괜찮아?”라는 물음에는 꼭

“괜찮아”라고 대답해야 하는 정해진 정답말고,   

 

"너무 힘들면 포기하는 게 편해."

"그만해도 돼."


나는 그 말을 듣고 싶었던 것 같다.

내가 나에게 할 수 없던 말, 차라리 포기하라는 말.

지금도 괜찮을 거라는 말.


그러니까 괜찮다고 말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




우리 꼭 정답이 아니어도 괜찮잖아.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아직도 잊히는 게 두렵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