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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쪽지 Apr 10. 2020

나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나는 늘 추억에 살아.

 아침을 알리는 알람 소리보다 밤새 한없이 '개굴개굴' 거리던, 집 앞 논두렁의 울부짖음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아 이놈의 개구리 소리 때문에 마음 편히 자는 날이 없네..' 상쾌한 초여름의 선선한 바람을 맞으면 좋으련만 개구리에게 투덜대며 '어푸어푸' 연거푸 세수를 한다. 개구리 소리 덕에 일찍 일어나게 된 것도, 그 덕에 밥을 한 숟가락 더 먹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어떠한의 기대도 없이 그저 불평만 늘어놓을 뿐이다. 밥을 대충 입에 쑤셔 넣고 신발을 구겨신고 집 바로 앞에 초등학교로 뛰어간다. 원래 집과 가까울수록 지각이 잦은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무얼 하고 놀까?' 하는 생각에 수업을 어떻게 시작했는지도 어떻게 끝냈는지도 모른다. 학교가 끝나기가 무섭게 친구들과 손을 잡고 학교 앞 놀이터로 뛰어 들어간다. 마치 그곳이 우리들의 집인 마냥 흙에 파묻힌 느낌조차도 따뜻하다. 뒤에 넓게 펼쳐진 논두렁에는, 전날 밤에 잡아먹을 듯 울어대던 개구리가 지치지도 않은지 '개굴개굴.. 개굴..' 소리를 내며 우리를 반긴다. 아침에는 그렇게 듣기 싫던 개구리 소리를 따라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논두렁에 간다. 개구리 한 마리가 우릴 보더니 풀숲으로 다시 '풀쩍' 뛰어가는 걸 보고 개구쟁이 남자아이들도 개구리 흉내를 내며 '풀쩍' 거린다. 그렇게 개구리를 쫓다가 집과 산 아래에 위치한 '작은 계곡'이라 불리는 곳에 발을 걷고 들어가 물을 첨벙거리며 여름을 즐긴다. 내가 신나게 노는 게 부러웠던지 나무에 붙어있는 매미도 덩달아 '맴맴' 하며 큰 소리를 낸다. 그걸 보고는 집에서 잠자리채를 가져와 매미 한 마리를 냉큼 잡아 채집통에 넣는다. 채집통 안의 매미는 답답하고 무서운지 '맴맴맴' 거리는 소리를 멈추지 않는다.


“매미야, 조금만 참아. 금방 집으로 보내줄게"



내 목소리를 들었는지 매미는 잠시 소리를 멈추고는 또다시 '맴맴' 거린다. 어느새 산봉우리들 아래로 해가 이동하고 우리들도 무리를 지어 집으로 이동한다. 대구의 '여름'은 그 어느 곳의 여름보다 강열하고 장엄하다. 직접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상상도 하지 못할 수 없을 만큼의 무더위, 숨쉬기 힘들 만큼의 태양 볕, 그 여름은 유난히 더 뜨거웠다. 그렇게 하루가 저물며 잠자리에 들기 전, 수박을 입에 넣고 오물거리며 오늘 하루를 '일기장'에 기록한다. 하루하루 매일 빠지지 않고 쓰는 일기에는 빼곡하게 쓰인 내 글씨와, 아래에는 빨간 볼펜으로 선생님의 댓글이 써져있다. 그리고 그 선생님의 댓글을 읽고는 미소가 지어진다.


‘선생님도 내 일기를 읽고는 이렇게 미소를 지으셨을까?'

한참을 생각해 본다.




 이 동네는 시골 같으면서도 시골은 아닌, 도시 같으면서도 도시는 아닌 그런 곳이다. 집 앞 놀이터에는 다 같은 반 친구들, 부모님들이며 누구든 놀 때 함께 어울려 놀 수 있는 정이 많으면서도 따뜻한 곳이다.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산책하는 아주머니, 나 같은 어린아이들이 혹시 다치지는 않을까 옆 '정자'에서 같은 어머니들과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는 사람들, 흙에 물을 부어 길을 만든 후 그 가는 길을 '개미들의 집'으로 만들어 주겠다며 열심히 땅을 파는 나와 친구들, 어느 누구 표정 찌푸리는 사람 없이 서로에게 웃음으로 대한다. 강아지 풀을 꺾어 친구 손가락에 끼워주며 "이건 내가 주는 거니까 잘 간직해" 하는 모습도, 삐그덕 거리는 시소에 올라타 "우와 내가 하늘을 나는 거 같아" 하면서 입술이 귀에 걸린 모습도 모두 찾아볼 수 있다.

얼굴이 빨갛게 타서 익도록 이쪽, 저쪽을 뛰어다니며 그곳을 누볐던 어린아이는 지치는 줄도 모르고 지는 해를 바라보며 하루를 보낸다.



 한 여름의 무더위가 계곡물의 얼얼함으로 물러가고 노란 단풍잎이 내 발바닥에 '사각사각' 하는 소리와 함께 어느새 가을이 온다. 여름의 매미 채집통은 꼬리가 빨간 '고추잠자리'의 채집통이 되고 우리는 또 삼삼오오 모여 잠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바위 위에서 쉬고 있는 잠자리 한 마리에게 '살금살금' 다가가 날개를 살짝 잡자 몸을 '파르르' 떤다. 작은 생물의 몸부림에 마음이 약해지기도 하지만 우리에겐 어림도 없다.



동네 아파트 아래 크게 자리 잡은 나뭇잎은 모두 주황색, 빨간색으로 형형색색 탈바꿈을 했고 집 바로 앞에 커다란 은행나무에서 떨어진 은행 냄새는 내 감각을 자극했다. 왼손에는 채집통을, 오른손에는 노란색 '피아노 학원 가방'을 잡고 사뿐히 뛰어간다. 가는 길에 만난 강아지풀로 손을 간질이고 시원하게 부는 가을바람이 내 코끝을 간질인다.



 




우리에게 옛날이라는 걸, 추억이라는 걸 떠올리게 한다면 그걸 물은 사람도 궁금해하던 사람도 '어린 너네에게 추억은 무슨 추억이냐'며 웃어댈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에게도 어린 시절이 있었고 가끔 그때의 향수에 젖어 들어가며 그곳의 풍경과 그곳에서의 어린 나를 바라보곤 한다.



“엄마가 어렸을 때 추억이 정말 많아서 너희한테도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어 주고 싶다." 고 자주 말씀하셨던 엄마는 엄마가 가진 그 선물을 나에게 나누어 준 셈이 아닐까.

그리고 가끔 '나는 아직 어른은 아니지만 나도 이다음에 이렇게 딸에게, 아들에게 좋은 선물을 하고 싶다.' 고 다짐하곤 한다.



 누군가가 '과거에만 집착하는 사람은 미래를 보지 못한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모두 좋지 않은가. 앞길을 모르는 이 험한 세상에서 어린 시절의 나를 찾아 잠깐의 휴식을 즐길 수 있음에.

 


늙으신 할머니에게만, 어른들에게만 추억이란 게 존재하는 게 아닌 것처럼, 추억이란 그런 것이다. 나이의 지표도, 시간의 흐름과 관계없이 그때를 기억하며 '아, 그때 그랬었지' 하며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그때로 다시 한번 돌아가고 싶다.'라는 무언의 생각을 잠시나마 할 수 있는 일기장 같은 존재가 아닐까 한다. 시간은 흐르고, 더 빠르게 흐르고 있지만 나는 어린 시절을 기억하며 가끔 그 시간을 되돌려 보곤 한다. 시간은 일방통행이 아니기에 말이다. 그리고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나보다 어린 사람들이 나보다 더 많은 경험을 하고, 추억을 쌓으며 훗날 이를 돌아보며 잠깐의 향수에 젖을 수 있었으면,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운 기억들을 가지며 살아가는 그런 세상이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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