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삶
<밤이 선생이다>에 수록된 강운구님의 사진이다. <밤이 선생이다>의 작가 황현산님은 이 사진으로 ‘겨울의 개’라는 글을 썼다. 이것이 사진의 타이틀인지 황현산 작가가 붙인 제목인지는 알 수 없다. 단지 이 사진을 본 후로 잊히지 않는 한 가지 모습이 떠올랐다. 그것은 어릴 적 음식점을 하시던 어머님이 머리에 넓은 쟁반을 이고서 배달을 가시던 모습이었다.
한정식 집이었기에 보통 반찬이 예닐곱 가지가 되고, 찌개류의 메뉴가 많아서 대부분 뚝배기그릇을 사용하였으니 3~4인분씩 시켜서 배달을 가야할 처지가 되면 그 무게가 어머 어마 했다. 작은 식당이었기에 식당일은 주로 아버지 어머니 두 분이 하셨는데 어머니가 주방담당이시고, 아버지가 홀과 배달 담당이셨다. 웬만한 곳은 아버지께서 다 다니셨지만 배달해야할 양이 많을 시에는 이렇듯 어머님이 머리에 이고 가시곤 했다.
어릴 적 어머니가 머리에 쟁반을 이고서 걷는 것이 너무 신기해 빈 쟁반을 머리에 얻고 따라 해보기도 많이 했었지만 떨어뜨리지 않고 걷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것을 가끔 두 손을 놓고 걸어가시기 까지 하니 신의 경지가 따로 없었다.
거기다 머리에 올릴 때는 아버지의 도움을 받곤 하시지만 내릴 땐 혼자서 그 일을 감당하실 터인데 머리에서 그 무거운 쟁반을 흔들리지 않고 내리는 데는 상당한 기술이 필요한 일이다. 또한 머리에 짐을 져본 사람만 아는 것일 텐데 머리에 무언가를 얻고 있을 때 느껴지는 아픔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크다는데 놀랄 것이다. 친구들과 축구놀이 중 생전처음 헤딩을 멋지게 날리고는 드러누워야 하는 정도의 아픔이랄까. 어린 마음에 엄마는 아프지도 않고, 무겁지도 않은 것인가 보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나도 엄마가 되면 저렇게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난 지금 엄마가 되었지만 아직 머리에 짐을 이진 못한다. 머리에 이고서 걷는 것도 어렵지만 무거운 짐을 머리에 이면 여전히 아프다. 뜨거운 냄비를 아무렇지 않게 잡지도 못하고, 엄마처럼 맛있는 요리를 만들지도 못한다. 옛날과 지금이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엄마의 삶과 내 삶이 전혀 다르긴 하지만 엄마가 되었다고 엄마처럼 되진 않는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그 단적인 예가 배달을 책임지던 아빠는 대부분 배달 외에는 딱히 하시는 일이 없었다. 그렇다고 배달이 쉬운 것은 아니지만 딸의 입장에서 보기 때문일까? 언제나 엄마가 일을 더 많이 하시는 듯이 보였다. 주방에서 음식도 하시고, 홀에 서빙도 하시고, 설거지도 하시는데 아빠가 해야 할 배달 일까지 하시니 아빠에게 불만이 생기기도 했었다. 거짓맹세일지언정 ‘잘해줄게’라고 데려왔으면 잘하려는 노력이라도 보여야지 평생 고생만 시키시는구나! 라는 원망 아닌 원망도 있었다. 딸이라서 조금은 편파적으로 보일수도 있겠으나 누가 보더라도 엄마의 삶은 너무나 고단한 것이었다. 허면 당상자인 엄마는 아빠에게 원망의 마음이 없었을까? 두 분 사이에 실질적인 관계는 어떠한지 몰라도 적어도 내 앞에서는 절대 아빠에게 불평불만을 말하지 않는 것이 어머니셨다.
그렇게 순고하기까지 한 어머니 밑에서 자란 나는 어쩐 일인지 어머니와 정 반대의 성격을 지녔는가 보다. 늘 신랑보다 내가 일을 더 많이 하는 듯하고, 내가 더 힘든 것 같고, 내가 더 억울하게 사는 것 같은 기분. 그래서 점점 서러워지는 생활이 내 몸을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곤 했다. 그 고단한 삶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가족을 위해서는 어떤 노고도 아끼지 않으셨던 어머님이셨는데 지금의 내 모습은 어떠한가?
가족은 누군가의 희생으로 유지되는 것은 아니지만 가족 구성원 모두의 희생이 있어야 유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린식견으로 몰라서 그렇지 아빠도 분명 그 나름의 희생이 있으셨으리라. 나의 남편도 결혼 후 그만의 희생을 감내하고 있다. 아빠이고, 엄마이니까 우리가족을 위해서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다른 사람의 희생을 인정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들의 희생도 나의 희생만큼 큰 것이라는 것을 알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 내 희생이 의미가 없어지고, 내가 무의미해진다고 생각했다. 나만 보고, 나만 생각했던 시간들을 돌이켜보면 내가 가족을 위해 희생했던 것이 무엇인가? 나는 희생한다고 말하지만 내 것은 전혀 포기하지 않고 타인의 것만 내놓으라고 했던 많은 시간들이 떠오른다. 내 것을 놓기보단 남의 것을 뺏는 것이 더 쉬워보였으니까. 그렇게 행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한다는 것이 더욱 무서운 거다. 이것이 가정폭력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내 안에 이기심이 자라려고 할 때 쟁반을 이고 배달 가던 어머니가 계셔서 나는 참 다행스러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