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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잉여공작소 Dec 26. 2020

Netflix, "더 크라운: The Crown"

시즌1 후기

[시즌1 리뷰]


https://www.youtube.com/watch?v=OBJpARw9eEE (예고편_시즌1)


대부분의 현대 국가는 공화정이다. 공화제에서 국가 원수는 선거를 통해 뽑힌다. 이들은 혈통(?)과 신분, 출신에 상관 없이 직무 역량과 경력, 도덕성을 시민으로부터 검증받아 국정을 대행한다. 공화정 국가의 주인이 시민인 이유다. 공화정의 왕(王)은 더 이상 신과 하늘로부터 통치 권력을 '수여' 받지 않는다. 대신 시민으로부터 그 권력을 '위탁' 받는다. 공화정의 국가 권력은 세습되지 않고 이양되며 신분과 혈통이 아닌 법과 제도에 의해 정당화된다.


이러한 공화정에서 군주란 어떤 의미인가. 구체제의 산물인가. 상징적 통치자인가. 아니면 국민의 정신적인 구심점 역할을 하는 엄연한 국가의 주인인가. 영국은 군주제와 공화제가 혼합된 입헌군주제 국가다.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이 없다지만, 최소한 영국에는 선출된 국가 권력과 세습된 국가 권력이 공존한다. <더 크라운>을 보면 실질적인 정부 운영은 내각의 총리가 통할한다. 하지만 총리는 군주에게 충성을 서약한다. 비록 허울뿐인 복종일지언정, 형식상으로나 의전상으로나 군주는 총리보다 위다. 요컨대 "정부는 효율이고, 군주는 위엄이다. 두 주체가 서로를 '신뢰'할 때 나라는 평안하다." (드라마 대사 中) 적어도 <더 크라운>은 군주만의 가치가 있다고 믿는 듯하다.


The Crown MUST win.
must ALWAYS win.


그렇다면 역으로 군주에게 공화정이란 어떤 의미인가. 군주에게 백성이 아닌 국민은 어떤 존재인가. 군주에게 정부는 어떤 조직인가. 입헌군주제의 군주는 헌법의 지배를 받는다. 왕권 위에 헌법이 있다. 뿐만 아니라 입헌군주제의 군주는 국민의 정서와 여론에 크게 영향 받는다. 따라서 어떤 면에서 군주에게 공화정은 제약이고, 국민은 상전이며 헌법은 감옥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군주는 제 자신이 군주가 되기를 바랐을까?



하나 더, 군주와 군주제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군주는 개인이지만 군주제는 제도다. 아니, 군주도 개인은 아니다. 왕은 공인이자 질서이며 권력 그 자체다. 한 인간은 왕이 되는 순간 인간일 수 없다. 왕은 완벽하고 빈틈 없어야 한다. 왕에게 인간적인 면모는 허용되지 않는다. 왕은 어떤 순간에도 공명정대하게 판단해야 한다. 비록 그것이 인간적이지 아닐지라도 나라를 수호하고 제도를 지키려면 왕은 개인이기를 포기해야 한다. 


<더 크라운>은 이 지점을 파고 들었다. 엘리자베스 2세(클레어 포이 役)나 그녀의 아버지 조지 6세(자레드 해리스 役)가 개인과 군주 사이의 줄타기에서 갈등하는 모습을 인상적으로 그려냈다. 


언니, 아내, 엄마로서의 릴리벳과 여왕으로서의 엘리자베스 2세…. 그 사이에서 이 여자 주인공은 휘청한다. 무엇이 자신의 정체성이란 말인가. 동생 마거릿 공주와(바네사 커비 役) 수상 윈스턴 처칠(존 리스고 役), 그리고 부군 필립 에든버러 공(맷 스미스 役) 사이에서 빚어지는 아슬아슬한 긴장 관계는 고즈넉하지만 서늘할 정도로 쓸쓸한 영국 풍경과 절묘하게 맞닿아있다.


왕은 위엄을,
정부는 효율을,

왕관은 더없이 무겁다. 선출 권력이든 세습 권력이든, 권력은 본래 무겁기 마련이다. 무거워야하고. 권한에는 그만큼의 책임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윈저 가 출신의 3번째 왕은 요동치는 근대 사회에서 왕관의 무게를 그나마 잘 버텨왔다. 그러나 그 버팀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잘 모르겠다.




[아래는 간략한 줄거리. 약 스포일러 있습니다]


Season Ⅰ.

말 더듬이 왕 조지 6세의 급작스러운 서거로 엘리자베스 2세가 새로운 대관식을 올린다. 여왕은 혼란스럽다. 버킹엄 궁은 너무 넓고, 국민의 관심은 너무 부담스럽다. 엘리자베스 2세는 개인의 사생활과 왕으로서의 공적 임무 사이에서 갈등한다. 부군 필립공은 자유를 원하지만, 왕족이라는 신분 때문에 자유 대신 품위를 보여야 한다. 


한편 엘리자베스 2세는 노년의 처칠과 금지된 사랑에 빠진 마거릿 공주를 걱정한다. 대영제국의 영광이 점차 빛바래지는 상황에서, 여왕은 버겁다. 이런 상황에서 수십년 전 이미 군주의 자리에 한차례 올랐으나 결국은 스스로 퇴위한 큰 아버지 에드워드 1세의 조언은 참 뼈아프다.


+ Addition----------------------------------------------------------


1. 시즌1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역을 맡은 클레어 포이는 2017년 골든 글로브 TV드라마 부문 주연상 수상.


2. 드라마 미장센을 활용하는 부분이 특히 좋았다. 세트나 의상, 소품들도 잘 준비된 것 같았다.


3. 우리나라 드라마 제작은 필요 이상으로 규제가 많은 것 같다. 한 인물의 깊은 고민을 그리는 소재로 자욱한 담배 연기 만큼 좋은 게 없다고 생각하는데, 우리나라는 그게 안되니 길게 설명하고 지나치게 클로즈업하고 대사에 너무 의존한다. 이때 서글픈 배경음악은 꼭 깔려야 하고.


4. 최근 시즌4까지 나왔으며, 추후 시즌6까지 나올 예정. 참고로 시즌1~2의 배우진과 시즌3~4 배우진, 시즌5 이후의 배우진이 모두 교체된다. 엘리자베스 여왕 역할만 보면, 시즌1~2는 클레어포이, 시즌3~4는 올리비아콜먼, 시즌5이후엔 이멜다 스턴톤. 가장 최근에 릴리즈된 시즌4는 마거릿 대처 총리, 다이애나 왕세자비 등 비교적 현대역사에 좀 더 가까운 인물들의 에피소드가 다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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