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보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잉여공작소 Dec 27. 2020

이재용, "죽여주는 여자"

영화 후기


# 누구나 늙는다


늙는다는 건 참 서글픈 일이다. 살아갈 날보다 살아온 날들이 많다는 건 어떤 느낌인가. 감히 예상해 보건대, 그것은 해가 질 무렵 즈음의 저녁 비슷한 것일게다. 마음은 편안하긴 한데 한 켠은 쓰리면서 다른 한 켠은 애잔하고 텁텁하고 흐릿한-. 잘 모르겠다. 내가 살아온 20여 년의 세월 가지고는 추측이 어렵다.


그럼에도 나이먹는 것에 한 가지 위안은 있으니 우리 모두 언젠가는 늙는다는 점이다. 나이엔 예외가 없다. 돈 많다고 안 늙는 건 아니다. 돈 없다고 빨리 늙는 것도 아니다. 그런 면에서 늙음은 정의롭고 공평하다.


# 똑같이 늙는 건 아니다


그러나 늙음은 공평한 것이지 동일한 건 아니다. 늙음 자체는 모든 인간이 겪지만 그 질감과 속도와 과정은 사람마다 다르다. <죽여주는 여자>인 소영(윤여정 役)은, 따지자면 그 늙음의 과정이 질곡과 수난으로 메워져 있다. 그녀는 한국 사회의 노인 빈곤율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사실을 몸소 증명한다. 먹고 살기 위하여 소영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박카스를 들고 탑골공원으로 향한다.


그러나 소영은 당당하다. 질곡과 수난으로 채워진 늙음의 과정에서 얻은 오기와 배짱의 힘이다. 그녀는 숨지 않는다. 그 오기와 배짱으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한다. 때로는 코피노(한국인 남성과 필리핀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와 함께, 때로는 트렌스젠더와 함께, 때로는 같은 노인들과 함께.



# 각자의 사정이 있겠지


그중에서도 노인들과 함께 하는 건 그녀에게도 가장 어려운 일이다. '각자의 사정'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싶다는 노인들을 두고 소영이 뭘 어찌할 수 있겠는가. 거대한 고독과 빈곤 앞에서, 당당했던 소영은 애써 숨겨왔던 늙는다는 것의 서글픔과 비정함을 실감한다.


이중 삼중으로 조각된 빈곤의 구조 속에서 소영은 결국 자신보다 더 소외된 이들을 보살핀다. 소외가 소외를 보듬고 빈곤이 빈곤을 걱정하는 형편 앞에서 소외되지도 '않고' 빈곤하지도 '않은' 나는 새삼 숙연해진다. "각자의 사정이 있겠지"라는 소영의 혼잣말은 그런 각자의 사정을 돌봐주지도 못하고 채워주지도 못하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 대한 애달픈 한탄이자 날카로운 비판이다.


소영은 자신의 기구한 늙음 마저도 마침내 그렇게 보내버렸다. 각자의 사정을 걱정하던 소영의 사정은 누가 책임져 주었나. 소영의 늙음은 왜 그렇게 보내져야 했나.

매거진의 이전글 Netflix, "더 크라운: The Crown"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