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라타치즈 / 프레시치즈 - burrata] 유통기한이 무서운 이들에게
모든 사람은 저마다 깨끗함의 기준이 있다. 아주 다채로운 알레르기로 사계절 내내 고통받는 동생은 먼지에 예민하게 반응해 청소기를 마치 지팡이처럼 들고 다닌다. 머리카락이라면 이제 진절머리가 난다는 엄마는 헨젤과 그레텔처럼 돌돌이를 들고 여전히 세 딸이 지나간 자리를 훑고 다니기 바쁘다. 이전 회사 선배는 화장실 청소에 유난히 집착한다고 했고, 친구 A는 설거지통에 포크 하나라도 있으면 마음이 불편해 당장 씻어버려야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독립을 하고 알게 된 것은 나는 유난히 '유통기한'에 집착한다는 것이었다. 엄마와 함께 살 때는 냉장고를 열심히 비워내기만 하면 됐는데, 나의 냉장고가 생기니 채움과 비움은 물론이고, 주기적인 청소와 재고 파악, 관리까지 수반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손이 잘 가지 않는 밑반찬이나 식재료는 냉장고 안쪽으로 자꾸만 떠밀려가곤 하는데 나는 절대로 그들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철칙. 배달음식과 냉동식품에 잠시 방심한 틈을 타 내 머릿속에서 놓쳐버리는 순간 그들은 암모나이트로 전락한다. 어쩌다 그들을 발견했을 때는 내 손으로 뚜껑을 열어 현장을 확인하고 처리해야 하는 참담함과 두려움만 있을 뿐이다.
치즈는 사실 채워 넣기가 바쁠 뿐 유통기한을 걱정할 일은 거의 없는데 프레시 치즈는 조금 다르다. 프레시 치즈는 샵에서 사온 그날 즉시 먹는 것이 가장 좋고, 냉장고에 두더라도 하루에서 길어도 이틀이 최대다. 프레시 치즈 중에서도 부라타 치즈는 만들고 난 직후에 먹는 것이 가장 맛있다. 나는 냉장고의 찬기를 쐬고 나면 뭔가 다른 맛이 가미되는 것만 같아 사온 직후 바로 접시에 담아 올리브유와 함께 먹는다. 부라타치즈는 이탈리아 말로 '버터 같은'이라는 뜻이다. 생크림과 함께 모짜렐라의 부드러움을 그대로 맛볼 수 있는데 그 모양은 꼭 복주머니처럼 생겼다. 이 치즈의 기원은 만들고 남은 모짜렐라가 아까워 만들기 시작했다고 하나 희소성이나 가격에서도 부라타가 훨씬 뛰어난 걸 보면 세상에 나온 지 약 100년 만에 한국에서는 꽤나 출세했다고 봐도 좋을 것 같다.
부라타도 가공포장되어 마트나 인터넷으로 구매할 수 있는 것들이 몇 개 되긴 하지만 나는 맨 처음 치즈플로의 부라타로 길이 들어 '수제 부라타'만 고집하는 편이다. 한남동이나 청담동으로, 부라타를 사러 가는 길은 즐거울 때도 있고 때로는 너무 멀게 느껴지기도 한다. 서울에서 약속이 있어 그 근처로 간다면 꼭 들르긴 하지만 너무 생각이 나서 치즈만 사러 갈 때는 유통기한이 좀 길면 한 열 개쯤 사와 쟁여놓고 먹고 싶다는 생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나는 대학시절부터 아르바이트를 쉼 없이 했다. 한번 시작하게 되면 대부분 1년 이상 그곳에서 일했다. 거의 대부분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입시학원이었는데 근무했던 곳 모두 나를 좋게 봐주신 덕분에 아르바이트생이지만 식대부터 보너스까지 받는 호사를 누렸다. 좋은 사람들과 보내는 좋은 시간들 끝에는 도망치고 싶은 이별의 순간들까지도 포함한다는 의미를 그땐 알지 못했다. 첫 번째 아르바이트를 그만둘 때는 교무실에서 짐을 챙길 때부터 찔끔거리기 시작했다. 아쉬움 가득한 선생님들의 배웅을 뒤로하고 버스정류장으로 걸어올 때까지 울음이 멈추지 않아 버스를 몇 대나 그냥 보내버리기도 했다. 사회에 나와 들어간 첫 회사에서는 항상 언니이기만 했던 내 인생에 처음으로 막내에게 주어지는 달콤함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주머니가 가장 가볍다는 이유로 회사로 들어오는 선물들은 거의 다 내 몫이었고 늦게까지 회식을 하고 나면 선배들이 택시비를 넘치도록 쥐여줬다. 대표님과 팀장님은 카피도 많은 경험을 해봐야 한다며 신입인 나에게 프레젠테이션과 제안서 작성 등 감사하게도 많은 기회를 주시고 광고주와 미팅 자리에도 항상 동석시켜주셨다. 이직을 하겠노라고 아주 힘들게 이야기를 꺼내고 난 뒤부터 퇴사일까지 약 한 달 반은 지금도 생각하고 싶지 않을 만큼 괴로운 시간이었다. 매일 식사를 함께 하던 대표님은 점심시간 전에 혼자 말없이 나가시기 일쑤였고 팀장님은 나를 투명인간 취급했다. 이제는 술 한잔하며 섭섭함이 너무 커 그랬다며 웃음 짓는 사이가 됐지만 그때 이후로 한 가지 버릇이 생겼다.
이 자리를 마지막으로 길 가다 지나쳐도 평생 모르는 사이가 될지, 가족보다 오랜 시간을 붙어있게 될 지겨운 사이가 될지, 누구도 알 수 없는 40분의 면접 시간의 끝에 나는 어쩌면 있을지도 모르는 관계의 유통기한에 대해 생각한다. 2년? 3년? 아니면 6개월도 채 안 된다면..? 이분과의 이별은 어떤 모습일까? 내가 꿈꾸는 아름다운 이별을 이분과는 할 수 있을까? 아쉬움과 섭섭함이 아주 살짝 가미됐지만 슬픔의 눈물은 없는, 앞날에 대한 축복만 가득한 이별.
없다. 없을 것 같다. 물론 노련해지고 조금 더 세련될 수는 있겠지만 이별이 쉬웠다는 사람의 이야기는 들어본 적 없다. 그렇다면 나는 또 있을 헤어짐 앞에서 어떤 모습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는 이 순간마저 많은 이들의 만남과 이별로 자전 중이다.
오랜만의 외출로 치즈도 잔뜩 사고 친구들도 만나 귀가가 늦어졌다. 이런 날은 어두운 거실에 현관문만 바라보고 있을 가을이 생각에 마지막 즈음엔 자리에 집중이 되지 않는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집까지 곧장 뛰어 도어락을 누르면, 이미 문 앞에서 뱅글뱅글 돌고 있는 가을이의 발톱 소리가 애처롭고 귀엽다. 3kg밖에 안되는 작은 몸이 뿜어내는 무조건적인 몸짓에 미안함과 반가움이 뒤섞인다.
가끔 가을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꿈을 꾼다. 그날은 침대에서 눈을 뜨고 나서도 진정할 시간이 한참은 필요하다. 상상조차 쉽게 하지 않는 것이 이유일 터. 그렇지만 언젠가 그날이 올 것이라고 해서 나는 마음을 아껴두지 않는다. 오히려 오늘 우리가 처음 만나는 것처럼 사랑을 쏟아낸다. 가을이가 나와 우리 가족에게 알려준 새로운 세상이다.
유통기한
새삼스레 저 네 글자가 아무 힘도 내지 못할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그리고 나는 여태 해왔던 것처럼 살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가을이가 가르쳐 주는 오늘의 따끈따끈한 사랑처럼, 48시간밖에 허락되지 않는 부라타 치즈를 한 개밖에 살 수 없더라도 한 시간을 달려가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