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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녕그것은 Mar 28. 2019

월급을 받으면 가장 먼저 하는 것




 어딘가에서 그러길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은 비관적일 수 없다고 했다. 
하루에 세 번은 행복하니까



 모든 사람이 그렇듯 맛있는 음식을 먹는 순간은 즐겁다. 그리고 나에게는 삼시 세 끼를 제외한 몇 번의 순간들이 더 존재한다. 


 그런 날이 있다. 퇴근 후, 집 앞 신호등의 빨간불 조차 나에게 짐으로 느껴지는 날.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싶지도,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조차 버거운 날. 그런 날은 일찌감치 집에 도착하기 무섭게 화장실로 곧장 들어가 화장을 지우고 머리를 치켜 묶은 다음 가장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내가 좋아하는 바디로션을 듬뿍 바른 후 침대로 들어가 구름 같은 이불에 휩싸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기다렸다는 듯 영상을 켠다. 


 탁탁탁 나무 도마와 칼이 만들어 내는 정갈한 소리. 무쇠 팬에 하나씩 하나씩 재료들을 조심스레 구워내는 조리용 핀셋의 움직임. 없던 욕심까지 생기게 만드는 깔끔한 그릇들과 완벽한 플레이팅까지. 이 모든 과정은 말 한마디 없이도 세상에 시달리다 온 나에게 심심한 위로가 돼준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나 혼자만이 즐기곤 하는 특별한 것이 있다.


나는 태어날 적부터 요란했다. 갑작스럽게 양수가 터져 준비 없이 출산을 하게 된 엄마는 나를 곧바로 볼 수 없었다. 나는 태어남과 동시에 '태변흡입 증후군'을 앓았다. 태변흡입 증후군은 출산 직전 태아가 태변과 함께 양수를 흡입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신생아 1,000명 가운데 1명에게서 가끔 일어나는데 아기의 호흡곤란, 심하게는 염증 반응까지도 일으킬 수 있다고 한다. 

 엄마는 아기를 안아보지도 못한 채 3일 후 혼자 퇴원했다. 그 당시에는 병원에서 정확한 나의 상태를 설명해주지도 않고 단지 '아기가 조금 아프다'라는 말만 한 채 막연히 기다려봐야 했다고 한다. 엄마는 집에서 많이 울었다고 했다. 열 달을 뱃속에 품고 있다 만나는 날만 기다려온 첫 번째 아기인데 머리에 링거를 꽂고 있는 모습을 유리창 너머로만 봐야 한다니. 지금 내가, 그때 엄마의 나이가 가까워지니 그 기분을 아주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다행히 나는 보름 만에 퇴원할 수 있었지만 요란했던 탄생만큼 순조로운 아이는 아니었다. 장이 좋지 않아서 엄마의 초유를 받아들이지 못해 일반분유보다 배는 가격이 나가는 특수분유를 먹으며 자랐고 조금 더 큰 후에는 집에서 직접 만든 수제 요구르트를 이유식 겸 간식으로 먹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조금 더 자란 유년시절 슈퍼를 가면 다른 아이들은 사탕, 초콜릿, 과자를 집어 들 때 나는 새콤한 요플레와 짭조름한 치즈를 고르곤 했던 기억이 지금도 난다.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29년째 치즈를 향한 나의 짝사랑이.

 


 엄마와 살 때는 가격의 장벽에 부딪혀 항상 노란 서울우유 체다치즈만 냉장고에 자리하고 있었다. 지금도 체다는 가장 만만한 간식거리지만 그 당시엔 구경밖에 할 수 없었던 전 세계의 다양한 치즈들은 나에게 너무 궁금한 미지의 세계였다.

 술을 먹을 수 있는 나이가 되고 자취를 하고 또 돈을 버니 본격적으로 나의 우주가 펼쳐졌다. 모든 직장인들이 월급날을 기다리는 것은 똑같지만 나에겐 하나의 특별한 습관 같은 것이 생겼다. 어느 백화점이라도 좋고 마트라도 괜찮다. 활력 넘치고 맛있는 냄새로 가득한 지하 1층 식료품관은 언제 가도 설렌다. 나는 가장 코너 혹은 끝에 위치한 와인코너로 가서 삼만 원 내외의 와인을 고른다. 단것을 좋아하지 않는 탓에 바디감이 있고 드라이한 것 중에 추천을 받아 고르고 나면 곧장 치즈 코너로 간다. 와인코너에는 대부분 전담 직원들이 있어 충분히 정보를 얻은 후에 구매할 수 있지만 치즈는 프랑스어나 이태리어로 제목조차 쉽게 읽히지 않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대략 알고 있는 종류로 먼저 결정을 하고 (브리, 까망베르, 모차렐라..) 다음엔 나라를 본다. 전에 프랑스 치즈를 먹어봤다면 이번에는 체코나 이탈리아의 치즈를 먹어보는 식이다. 이렇게 쇼핑을 마치고 집에 오면 이제부터는 온전히 모든 시간이 나의 것이다. 







 학창 시절 궁금하기만 했던 치즈 무궁무진한 세계. 이제야 그 문을 열어본 나는 이 세상에 치즈는 너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동시에 어떤 음식 또는 와인과 함께하는지, 혹은 그전에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더 나아가서는 그날은 기분이 어떤지에 따라 어울리는 치즈는 따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글을 쓴다. 맛있는 것을 먹고 좋은 것을 보면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이 생각나기 마련. 나에게는 새로 접하는 치즈가 그렇고 책상 위에 오래 두고 싶은 책들이 그렇다. 어쩌면 펜을 들겠다는 것은 직업적 특성 때문에  나에게 항상 완벽을 요구받는 일이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완전성에 대한 부담, 내 솔직한 이야기를 쏟아놓는 것에 대한 두려움보다 내가 맛보고 찾아본 치즈의 역사와 수많은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어느 순간 나를 컴퓨터 앞으로 이끌었다. 


 하루 세 끼가 주는 행복은 틀림없다. 더불어, 지구 반대편 어느 계절 어느 나라의 푸른 초원과 젖소, 커드를 만들고 체더링을 반복하는 장인만의 꼿꼿한 자부심, 숙성을 위한 기다림의 시간, 이 모든 것이 깃든 치즈 한 조각이 오늘 저녁 내 식탁 위에 놓여있다. 이 우주 속에서 나는 오늘도 충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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