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공예대학 Graduate Program을 졸업하고 고국으로 돌아올 때였습니다. 저의 작품들 들고 오기가 어려웠습니다. 보관할 장소도 없었고 전시할 공간도 없었지요. 그래서 대부분 Gallery에 맡겨두고 왔습니다. 그중 하나 Goblet(손잡이 없는 술잔)을 들고 왔지요. Goblet은 지금 내 책꽂이 상단에 조용히 서 있습니다. 매일매일 눈길을 주곤 합니다.
Goblet, 한번 이 잔으로 와인을 따라서 먹어 보아야지 하고 생각하였지만 기회가 없었습니다. 저야 맨날 보고 만져보는 것이지요. 굳이 술을 부어서 마셔보면 무엇하나 하였지요. 언젠가 혹이여 귀한 손님이 있을 때 한번 사용해 보아야지 하는 생각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때는 그것에 걸맞은 술도 준비해야겠지요. 아니 조명도 필요하고, 그렇지 근사한 음악도 틀고, 내가 남자이니 우아한 드레스를 입은 분이면 더욱 좋겠지요. 잔의 은빛이 조명과 음악을 헤집고 드레스에 와 닿으면 깊게 파인 여인의 가슴 살빛과 잘 어울릴 테니까요.
그런데 잔은 하나이니 나는 무슨 잔으로 건배를 하지요? 하나를 더 만들어야겠지요. 똑같은 잔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같은 것이나 비슷한 것을 만든다는 것은 정말 지루한 일입니다. 남녀가 너무 다르듯, 내가 남과 너무 다르듯, 하나를 더 만든다면 아마도 아주 다른 형태의 Goblet이 될 것 같아요. 이 Goblet은 너무 전통적(Traditional)입니다. 다음 작품은 Contemporary Style이 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그때는 건배하는 잔의 주인이 바뀔 것 같아 보입니다.
Goblet을 망치로 만들었고 그 위에 내 나름대로 정으로 문양을 넣었습니다. 물론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지요. 그중 어려운 작업은 잔 입구를 좁히는 것과 잔 입구 끝부분과 받침 끝부분을 도톰하게 덧대는 작업이었습니다. 옛날 선인들이 이런 잔을 많이 만들었지요. 고전 영화에서 많이 보았나요? 다 만들고 다시 보니 완전히 전통적인 형식이었습니다. 그래도 순전히 내 아이디어로, 내 문양으로, 내 방식으로 만들었으니 만족합니다.
어느 정도 형태가 보일 때쯤 주임교수가 재미있는 농담을 하였습니다.
“받침 밑 안쪽에 좋은 돌 하나 밖아 넣게나”
“그러죠, 그런데… …?”
그래서 때깔 좋은 돌을 구하여 추가 작업을 하였습니다. 겉만 보아서 알 수 없는 것이 있지요. 그리고 좋은 것은 항상 숨어 있답니다.
완성된 Goblet은 학교에서 주관하는 전시회에 한번 내 보이고는 헝겊에 둘둘 말린 채 내 서랍에 있다가 내가 귀국할 때 교수 서랍에서 3년간 잠을 잤습니다. 다시 Graduate Program 2년 동안 다시 서랍에서 뒹굴다가 이제 한국의 제 책상 선반 위에 있습니다. 팔기 위해 이 Goblet을 Gallery에 전시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습니다만, 아마도 누군가가 제 앞에서 이 잔으로 축복받는 광경을 보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또한 “많이 전통적이고 좀 창조적이지는 않지만 의도성은 전혀 없다. 그때 생각난 것을 그때 마구 만든 것이다.”라고 자부하니 애착이 더욱 많이 갔지요. 누군가를 위해서 시대를 초월하는 형태의 Goblet을 만들어 본다는 것이 다음의 제 계획입니다. 그때 누군가와 함께 환상적인 건배를 할 수가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