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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토 Sep 12. 2024

내 친구, '수치'를 소개합니다.

수치심, 완벽주의, 예민함이라는 삼총사

















 

지난 편의 예민함을 거론할 때 꼭 같이 동반되는 성격이 바로 ’수치심‘과 완벽주의입니다. 오늘은 삼총사처럼 붙어 다니며 실타래처럼 얽히고설켜 우리 일상까지 쉽게 엉망으로 만들어버리는 ’수치심‘과 그 친구들을 한번 들여다보려 합니다.     


’수치심이 없는 사람과는 관계를 맺지 마세요.‘

사실 ’부끄러움을 느끼는 마음’이라는 사전적 의미가 있는 수치심은 우리 사회에서 매우 필요한 성격입니다. 길을 건너다 빨간 불이 되면 재빨리 뛰어가고, 아이가 소리를 지르면 제지를 하는 예처럼, 집단적 규범에 상응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때 느끼는 감정들이 타인과 나아가 집단구성원이 공유하는 가치에 대한 존중을 끌어내며, 우리 사회가 유지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지요. (이를 건전한 수치심(healthy shame)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괴로워하는 감정인 수치심은 이와는 다릅니다. 나의 존재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으로 인해 타인으로부터 인정을 받으려는 욕구에서 비롯된 완벽주의적 수치심(perfectionist shame)인 까닭입니다. 바로 평생 내 편을 가져보지 못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유아기에 주양육자에게 존재 자체로 수용되지 못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는 사랑을 받기 위해 자신의 능력이나 조절범위를 넘어서는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게 되는데, 이런 주양육자의 ‘기분이나 인정’에 따른 주관적이고 비합리적인 기준에서 유발되는 수치심은 성인이 돼서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대상이 주양육자에서 모든 타인으로 어마무시하게 확대되고, 수치심과 열등감을 감추기 위해 상상도 못 할 노력을 기울이게 됩니다. 모든 기준이 ‘나’가 아닌 ‘타인’에 맞춰지면서, 온전한 나의 삶을 살아가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수많은 가면을 쓰던 동굴로 회피를 하던 그 모습은 다양하지만 궁극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타인에 좌우되는 모습은 모두 한 줄기입니다.


 ‘인정받고 싶다, 사랑받고 싶다.’     


그러한 욕구를 바탕으로 하다 보니 예민함과 수치심은 보통 함께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예민해서 수치심을 더 많이 느낀다거나 수치심을 느끼면서 점점 예민해지는 식으로 서로 끝없이 맞물리는 것이지요. 그리고 여기서 실망, 의심, 소외, 불안, 분노 등이 덕지덕지 붙으면서 상황은 갈수록 악화됩니다. 모든 레이다가 타인으로 향해 있는 데다, 별거 아닌 일에도 조준을 하고, 생각 과잉으로 오판을 하면서 ‘탕’하고 발사까지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주변의 모든 일과 사람을 공격하고 무너뜨리면서 자신의 일상과 삶을 쑥대밭으로 만듭니다.     



가장 최악은 타인의 인정과 사랑도 받아야 하고 자신의 수치심과 열등감을 포장까지 해야 하는 일입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기 위해, 더 완벽하게 노력하고, 더 완벽하게 성취해야 하는 탓에 겉은 멀쩡하지만 속은 썩어 문드러지는 악순환이 무한으로 되풀이되는 것이지요. 상상해보세요. 가면을 쓰고 아프다는 소리도 한번 못한 채 이 지옥 같은 마음을 영원히 안고 살아야 하는 것을요,     




저 역시 수치심에 삭막해지고 삐뚤어져 지옥을 살던 때가 있었습니다. 정직하게 말하면 지금도 벗어났다고 말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20여 년이 넘게 수많은 책을 읽고 강의를 듣고 고민하고 노력했는데 도대체 왜 나만 나아지지 않는가, 나에게 희망은 없는가, 늘상 뒷걸음칠 치게 되는 기분들은 여전합니다. 그러나 그 긴 시간이 헛되지는 않았는지, 이제 혐오해 마지않았던 나의 모든 치부가 (부끄럽지 않다는 말은 못합니다) 적어도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를 평생 안고 살아야 하는 것이, 누구도 아닌 나의 몫임은 천천히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공부를 하다 보면 수치심을 완치할 수는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다스릴 수 있는 자체만으로 치유가 되고 나아질 수 있다고도 하고요. 크게 자신을 알고 인정하는 것과 진실한 관계를 맺는 것이 방법이라고 하는데, 후자는 아직은 먼 이야기 같지만 나를 알고 인정하는 일은 열심히 노력해 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여기 내 친구 ‘수치’를 소개합니다. 부정적이고 이기적인 엄마의 양육 탓인지, 내 편을 가져본 적이 없어서인지, 기질인지, 항상 내가 가진 것이 아닌 가지지 못한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얄미운 녀석입니다. 강인한 척, 털털한 척, 용감한 척, 착한 척, 멋진 척, 독립적인 척, 잘난 척, 척척척 하지만 이 모두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어 그러는 거예요. 사실은 나약하고, 비교도 하고, 질투도 하고, 욕심을 낼 때도 있고, 경계도 하고, 공격도 하고, 활발했다고 피했다가 아주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 친구입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무심한 척 하지만 사람을 좋아하고 맘이 여려, 따뜻한 말 한마디, 다정히 내밀어주는 손을 기다리는 친구입니다.



당신의 친구는 어떤 모습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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