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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 매거진 브릭스 Oct 04. 2023

시칠리아 빌라 로마나, 모자이크의 향연

어마어마한 바닥 모자이크를 자랑하는 유네스코 문화유산

여행 매거진 BRICKS Trip

시칠리아에서 보낸 한 달 #7




시칠리아의 정중앙, 시칠리아의 배꼽에 위치한 엔나Enna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빌라 로마나 델 카살레Villa Romana del Casale라고 하는 4세기경에 지어진 거대한 빌라가 있다. 저택의 주인은 아직도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수십 개의 방과 분수, 냉・온탕 시설이 갖춰진 목욕탕, 체육관은 물론이고 빌라 바닥 전체를 모자이크로 뒤덮을 수 있을 정도로 부자였다는 사실만큼은 명확하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거대한 빌라는 1800년대 후반에 발견되었다. 산사태에 의해 건물이 10미터가량 높이의 흙으로 뒤덮여 있어서 모자이크 보존 상태가 거의 완벽에 가깝다. 시칠리아를 다녀온 모든 이탈리아 친구들이 빌라 로마나의 바닥 모자이크를 꼭 보고 오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탈리아에 살면서 베네치아에서, 라벤나에서, 팔레르모에서 번쩍번쩍 빛나는 황금빛 모자이크를 봐 왔는데 바닥 모자이크가 그렇게나 대단할까? 내 두 눈으로 직접 보기 전까지 조금의 기대도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시칠리아 정중앙에 있는 내륙 지역은 찾아가기도 쉽지 않은 깊은 골짜기에 숨어 있었다. 여기가 맞나 싶을 정도로 굽은 시골 길을 내달려 도착한 주차장에서부터 범상치 않은 아우라가 느껴졌다. 코로나 시국에도 불구하고 대형 관광버스가 줄지어 서 있어 우리의 작은 승용차 한 대 주차할 자리 찾기가 힘들 정도였다. 이렇게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라니. 우리는 그제야 기대에 부풀어 입장권과 안내 책자를 구매했다. 대도시의 여느 관광지처럼 기념품을 파는 상인들이 줄지어 서 있고, 암표상과 투어가이드들이 목이 터져라 호객 행위를 하고 있었다. 도대체 여기 무엇이 있을까. 그때부터는 심장이 마구 뛰었다.



드디어 수백 명의 단체 관광객들과 함께 거대한 빌라에 들어선 순간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냉・온탕과 체육 시설이 갖춰진 목욕탕 유적지였다. 천 년도 훨씬 전부터 사람들은 목욕과 사우나를 즐겼고, 실내 체육 시설까지 이용하고 있었다. 중심에 있는 가장 큰 건물의 계단을 따라 올라가자 모든 사람이 일제히 고개를 바닥으로 떨구고 집중하여 무언가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두꺼운 책 사이에서 필요한 구절을 찾는 사람들처럼 집요한 눈빛이었다. 그 눈빛을 따라가자 보고도 믿기지 않을 광경이 펼쳐졌다.



2층의 높이에서 바라본 바닥에는 마치 집의 평면도처럼 칸막이로 쳐진 수많은 방과 화장실, 식당, 창고가 있고, 칸마다 서로 다른 모자이크의 향연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동물, 사람, 나무 같은 단편적인 그림은 물론이고, 서로 다른 모형이 이어진 기하학적 무늬를 비롯해 사냥하는 사람, 운동하는 사람, 목욕하러 가는 사람 등 역동적인 모자이크도 있었다. 바닥뿐만이 아니라 벽에도 그림과 모자이크가 빼곡히 들어차 있었는데 이곳에 살았던 사람의 부를 감히 가늠조차 할 수 없는 규모였다. 이 빌라에는 적어도 150년 이상 사람이 살았다는 흔적이 남아 있다. 1800년대 후반 농작물 경작지에서 최초로 발견된 이후 발굴 작업을 통해 2000년대에 이르러서야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었다.



빌라는 단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분수로 꾸며진 정원, 페리스타일을 중심으로 수십 개의 공간으로 분리되어 있다. 모자이크 유적은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도록 비계를 설치해 위층에서 내려다볼 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모자이크 작품은 뭐니 뭐니 해도 ‘10명의 처녀의 방’ 바닥에 그려진 ‘비키니 소녀들’이었다. 지금의 비키니라 불리는 위아래 중요 부위만 가린 투피스 수영복 차림의 늘씬한 처녀 10명이 원반던지기, 역도, 달리기, 구기 종목을 하는 모습을 담은 작품이다. 무려 1700년이나 된 그림에 나타난 비키니 차림은 고대 시대 여성들도 비키니와 같은 투피스를 입었다는 것을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지금의 비키니는 1900년대에 등장해 많은 이들의 집중과 질타를 동시에 받았지만, 여성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뽐낼 수 있는 대명사가 되었다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다.



‘사냥의 방’에는 60미터가 넘는 복도에 호랑이, 표범, 코끼리, 타조 등의 진귀한 동물을 사냥해 배에 싣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화려하진 않지만 섬세하고, 압도적인 규모의 작품에 관람하는 내내 목이 터져라 탄성을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수백 명의 관람객 모두 물을 마시는 것도 잊어버릴 정도로 상기되어 작품 감상에만 몰입했다.



과연 시칠리아는 하나의 보물섬이라 불릴 만하다. 지중해 푸른 바다와 지금도 ‘그르릉’ 소리를 내며 언제든 폭발할 준비를 하는 활화산을 품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이토록 멋진 모자이크 작품까지 지니고 있다니. 어쩌면 신이라는 존재가 시칠리아만 편애한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글/사진 김혜지(이태리부부)

파리, 로마를 거쳐 현재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꾸준히 기록하고 콘텐츠를 생산해 내며 삶을 드러내는 것에 거리낌이 없는 사람입니다. 유투브 채널 '이태리부부' 운영 중. 『이탈리아에 살고 있습니다』를 썼습니다. 

이태리부부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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