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5일 한남 블루보틀
지난주 케빈의 결혼식에 J에게 이야기를 했다. 언니 저 진짜 여유가 없어요. 최근들어 미리 일주일에 한두시간씩 규칙적으로 할애하고 booking 해야하는 일정은 꿈도 못꿨다. 애자일하게 차라리 지금 시간이 나서 뭔가를 할수는 있어도 내 미래의 시간 주권에 대해 약속을 할수는 없는 삶이 이어진다. Behind the schedule 되는건 알겠는데 그 스케쥴이 뭔지는...모르겠다. 미쳐버리겠을 노릇이었지만 감사하게도 사월언니와의 등산모임과 토스트마스터즈와골프 레슨 원장님은 늘 나를 배려해주는 중. 미친듯이 생산적이어보이는 나의 비정상적인 일상은 이렇듯 따듯하고 배려심 넓은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빚을 지며 겨우 겨우 정상적인 사회의 일원으로서 기능하고 있었다.
5월 몸살의 후유증과 (늘 그렇듯) 과로로 탈탈 털린 몸은 조금씩 제 페이스를 돌려찾았다가 다시 고꾸라지며 5월 6월은 그저 나 자신과의 싸움중. 주체적으로 바쁜건 괜찮은데 에너지레벨이 떨어진 상태에서 계속적으로 뭐가 치고들어오니 시간도 시간인데 여유와 통제권이 너무 없다. 계속해서 편두통이 유지되고 공적 일정은 모두 빠듯하게 잘도 챙기는데 반대로 개인 일정은 들은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하얗게 까먹고, 못읽은 카톡은 지금 42개쯤 으로 예상한다. 혹시 이걸 보시는 분들 중에 제가 답변을 못하고 있는 톡이 있다면... 전화해주세요....
다리는 붓고 몸은 안좋고 일은 많은데 여느때처럼 빠딱하게 일처리를 하지 못하는 나에게 또 실망한 어느날,
지쳐 누워서 뭔지도 모를 넷플릭스였나 쿠팡플레이를 켜놓고 휴대폰을 보다가 (딱히 목적성을 가지고 보는 건 아니고 메일 슬랙 카톡 등등을 노마딩) 웹툰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의 한 에피소드를 우연히 켰다.
정신병동에서 퇴원해 호텔에서 일하며 다시서기 하고 있는 주인공 시나가 "우울한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도록, 이불을 개고 집청소를 해야지" 라는 컷에서 문득 나를 되돌아본다.
아.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아야 한다라는 말은 순간적으로 부모와의 대화나 직장에서 빡치면 그걸 곧이고대로 분출하지 말자고나 할때 쓰는 말인줄 알았는데. 내가 나와의 관계를 이룰때 더 의미깊게 적용되는 말이었구나. 몇년 전 무릎부상과 지독한 슬럼프로 물리치료를 받을때 의사선생님이 해준 말이 기억이 났다
"사실 지금쯤이면 다 나았어요. 좀 어색할수는 있어도 다시 지수씨가 하던대로 일상생활도 하고 무리하지 않는 운동도 해도 되요."
"그런데 아직 아픈데요, 선생님."
"MRI 찍어볼수 있긴 한데, CT에서는 아무런 이상이 없고 다 나았다고 나와요. 미세골절도 이제는 없고요. 사실 지수씨 시간으로나 검사 결과로나, 지금 다 나았어요."
그때도 내가 무력한 기분에 나를 방치하지 않았다면 나는 더 빨리 나를 회복했을까. 몸살때문에 최근 고생한건 맞지만 나는 지금 후유증으로 컨디션이 떨어져 있는게 아니라 내가 나를 무력감에 방치하고 있는 걸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상황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나에게 좋은 때가 저절로 찾아오는 것도 아니고. 언젠가 좋은때가 오는 이유는 늘 마음을 갈고닦고 나를 방치하지 않으며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고 기복이 있을 수밖에 없는 삶의 모든 순간 피곤하고 지칠지라도 다시 부지런함과 긍정을 길어올려 나아가는 사람에게는 결국 운이 트일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다시 회사에 규칙적으로 일찍 나갔고, 한시간씩이나마 시간을 쪼개 운동을 했다. 몸의 컨디션이 좋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으나 그만큼 더 마음을 다잡으며 몰입하는 시간을 늘려 갔다. 주말에 몸을 일으켜 청소를 했고, 나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원장쌤에게 골프레슨을 받고 시간을 내서 아서네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나름의 도약을 이루거나 내 포지션이 인생에서 변했을때는 종종 아서를 만나러 갔다. 이번에 동빙고동을 뜬다고 해서 서운하던 차에 그냥 계획을 바꿔서 경리단 근처로 왔다고 했다. 오랜만에 산뜻한 기분으로 아서네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집을 사는 결정을 내리는 것과 현금흐름의 가치를 계산해 보는 것, 내가 20대의 모습을 조금씩 떨어내며 어느 방향으로든지 나아가는 것처럼 보인다는 이야기, 결혼이 되었든 연애가 되었든 어떠한 형태로던지 인간의 관계는 함께 문제해결을 하는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내가 아는 것이 많아지고 의식 수준이 높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 까닭인지 요새 세상에 이상한 사람이 너무 많은 것 같다고 볼멘소리 하자 아서는 늘 답을 내려 주는 그 단단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해준다.
"세상이 호락호락하지가 않아."
맞다. 세상사는건 원래 쉽지가 않았다. 여러 가치관이 얽히고 섥혀 대화의 방식은 더욱 섬세해져야 하는데 요즘 시대의 알고리즘이 이끈 미디어의 소비방식은 사람을 더 자기 포인트에 꼭 찝힌 고집쟁이로 만든다. 혼란한 세상 속 단단하고 맑은 정신을 스스로 유지하며 우리만의 우주를 만들고, 의미 있는 사람을 만나 내 자신에게 의미있는 결정을 고민하고 투명하게 내려가는 삶. 불확실한 세상에서 결단력을 가지고 자신의 결정을 밀어붙이되 책임지고 거기에서 교훈을 얻어 발전하는 삶은 원래 쉽지가 않다.
마찬가지로 살다보면 아플때도 있고, 내가 100 프로 컨디션만을 계속해서 유지할 수는 없었다. 상황변수는 항상 발전하고, 내가 어느정도의 상황변수에 노출될건지를 결정할 수 있는거지 변수 자체를 조정할 수는 없으니까. 그 와중에 꾸준하게 아웃풋을 내고 그 순간마저 디딤점으로 삼으려면, 그걸 억울해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살다보면 마음처럼 풀리는 날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30대 입성 이후 컨디션 관리를 시작했는데도 이정도면 나 앞으로 진짜 빡세게 관리해야되겠구나 싶기도 하고. 예전에 마이뜨리 선생님은 고급 요가 강의를 들을때 "좋을땐 다 좋다" 고 했다. 여행갔을때의 아름다움만을 좇으며 현실을 낙후된 상황으로 규정하지 말고 내 주변부터 좋은 의미를 채우고 조금 힘든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해보는 시간을 쌓으라고. 좋을때 뭐 힘낼 필요가 있나. 힘 안들여도 손대는 거마다 빵빵 터지는데. 그땐 그냥 재밌지.
오히려 더 힘을 북돟워야 하는 순간은 우울하고, 아프고, 조금 안맞는 순간들일지 모르겠다. 일상에 참 많이 가득한 핀트가 안맞는 순간들에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내기보다는 쓰면 쓴대로 그 안에서 나에게 필요한 의미를 찾기 위해, 주저앉아버리지 않기 위해 힘내기. 꽉 어깨에 힘을 주어 파이팅할 필요는 없지만, 배터리 세이빙 모드면 그모드대로, 이없으면 잇몸으로 버텨보며 나중에 이가 다시 날때까지 완벽하지 않은 나의 모습을 포용하며 되든 안되든 그날에 충실해 보기. 너무 잘하려고 지친 내 모습에 짜증내며 시작조차 안 할 필요가 없다. 지치면 지친 상태대로 실패도 해보고, 그건 그거대로 의미가 있겠지. 당연히 외부의 평가가 컨디션이 좋을 때만큼 좋은 평을 주진 않겠지만, 그것에 너무 크게 연연하며 굳이 흔들린 필욘 없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에도 꾸준하게 임하는 이 순간이, 어쩌면 더 완성도 높은 결과를 내기 위해 내공이 더 많이 쌓이는 순간이자, 꾸준함을 완성하기 위해 되든안되든 묵묵히 견디는 지금 나는 순간의 얄팍한 열정 그 몇배의 힘을 태우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