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런예지 Dec 30. 2021

21화_두려움 속에서 발견한 것

첫 15Km 달리기 도전을 앞두고

두려움 :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거나, 목표를 달성하려고 할 때 걱정되고 불안한 마음.



지난 9월, 처음으로 15Km 달리기에 도전했을 때 이야기이다. 10Km의 벽을 넘어 더 먼 거리를 달리는 러너가 되고 싶었다. 달리기 훈련법을 검색해보니 '먼 거리를 천천히 달리는 훈련'인 LSD(Long slow distance)가 있었다. LSD는 매주 혹은 격주로 1-1.5Km씩 거리를 늘려가는 훈련법이다. 몸을 점진적으로 먼 거리에 적응시킴으로써 심폐 기능, 지구력, 체력 향상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 다음 목표로 12Km를 잡고, 한 달에 2Km씩 거리를 늘리기로 했다. 더 먼 거리에 도전하겠다는 결심도 섰고, 계획도 세웠으나 혼자서 잘 해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경험자인 동생에게 실제적인 팁을 얻고 싶어 전화를 했다.






"나 12Km를 목표로 달리려고 하는데, 한강에서 달리면 되려나?"

"한강이 연속해서 달리기 좋지. 경치도 좋고. 평소에 얼마나 달리는데?"

"이틀에 한 번 5Km 달리고 있고, 10Km는 세 번 달려봤어."

"그 정도면 12Km 충분히 가능하지. 그럼 15Km를 목표로 해봐."

"그래? 나는 조금씩 거리를 늘려 볼 생각이었는데."

"그것도 좋은데, 거리를 제한하지 말고 속도가 30초-1분 정도로 확연히 늦어질 때까지 달려보는 것도 방법이야. 그 정도 거리가 현재 누나 실력인 거지. 주말에 시간 괜찮으면 내가 운동 겸 같이 달려줄게."

"정말? 그럼 너무 고맙지. 내가 너희 집 근처로 갈게."




동생과 2주 후에 한강을 달리기로 약속했다. 평소 하는 달리기에 근력 운동을 추가하고, 주말엔 7-8Km를 달리며 준비했다. 내가 원해서 도전하는 건데도 15Km를 달려야 한다는 것에 대해 문득문득 커다란 두려움을 느꼈다.

 '5Km 달리는 것도 마지막엔 힘든데, 세 배나 되는 거리를 달릴 수 있을까?'

'너무 힘들어서 중간에 포기하고 싶으면 어쩌지?'

'속도가 느려서 동생에게 폐가 되는 건 아닐까?'

'무리해서 부상을 입으면 어떡하지?' 등 갖가지 불안과 걱정에 휩싸이곤 했다.

 



그러던 중 작가 장강명의 저서 <책 한번 써봅시다>를 읽다가 우연히 '두려움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다. 장강명은 학생들에게 소설의 인물을 살아 있는 사람처럼 쓰기 위한 방법으로 “인물의 욕망과 두려움이 느껴지게 써라.”라고 강의한다고 한다. 두려움과 욕망은 독립된 존재가 아니라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기 자식과 함께 살고 싶다는 욕망과 그 아이를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은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붙어 있다는 것이다.




15Km 도전을 앞두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던 나는,  내게 '두려움'과 함께  ‘도전에 성공하고 싶다는 욕망'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더 잘 달리고 싶다'는 내 욕망에는 뚜렷한 이유가 있었다. 달리기를 시작하고, 작가이자 러너들이 쓴 달리기 에세이를 많이 읽었다. 에세이를 통해 우리나라 마라톤뿐만 아니라 파리 마라톤, 호놀룰루 마라톤, 보스턴 마라톤 등 외국 마라톤과 극한의 한계에 도전하는 울트라 마라톤, 고비사막 레이스까지 세상의 많은 마라톤을 간접 경험할 수 있었다. 글을 읽는 내내 내 심장은 뛰었고, 가슴은 뜨거워졌다. 그렇게 알게 된 매력적인 마라톤들은 내 버킷 리스트에 고스란히 담겼다. 첫 15Km 달리기는 더 큰 도전을 하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이었다.




두려워서 도전하지 못했던 또는 두려움을 안고 힘겹게 준비했던 많은 일들이 떠올랐다. 두려움은 불안과 걱정을 낳았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을 주저하게 만들었다. 도전을 하면서도 두려움 때문에 많이 흔들렸고,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동안 내게 두려움은 '극복해야 하는 대상' 또는 '깨뜨려야 할 벽'이었다. 하지만 '두려움 속 욕망'을 발견하면서 두려움을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두려움은 그 존재 자체로 의미가 있으며, 그 안의 욕망을 소중히 여겨 품고 가야 할 존재였다.




하지만 두려움을 품는다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았다. 감정도 습관이라 이미 두려움에 대한 이미지가 머릿속 깊이 새겨졌기 때문에 부정적인 반응이 절로 마음속에 솟구쳤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두려움은 나쁜 것이 아니다. 잘하고 싶어서 나 스스로 만든 감정이다. 그 안의 욕망과 함께 내가 품고 가야 할 존재다.'라고 끊임없이 생각을 되풀이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꾸준히 해 나갔다. 그러니 어느 순간부터 두려움에 대해 조금은 더 의연하게 반응할 수 있었고, 두려움에 매몰되지 않고 더 단단하게 내 삶을 살 수 있었다.






누구나 마음속에 두려움의 방이 있다. 장거리 달리기에 도전하면서 나는 두려움의 방에는 강렬한 욕망도 함께 존재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이젠 두려움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내 욕망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두려움이 고개를 들면, '이 일을 정말 잘하고 싶구나.'라며 엉덩이를 톡톡 두드려준다. 2022년에는 더 많은 두려움을 느끼고 싶다. 욕망하고, 두렵지만 도전하고, 그러면서 많은 실수를 하고, 실패를 겪고 싶다. 내 능력으로 가능한 성공보다, 내 한계를 뛰어넘는 과정에서 실패도 해보며 더 많은 걸 배우고 싶다.  




두려움을 느끼는 일이 있다면 두려움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좋겠다. 잘하고 싶고, 변화하고 싶고, 비약하고 싶은 자신의 '기특한 욕망'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20화_오늘부터 새벽 달리기를 해보려고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