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보러 다니기 시작한 것은, 지적 허영심에서부터였다. 근사한 공간에 날 데려다 놓으면 근사한 사람이 된 기분이랄까. 만원 남짓에 할 수 있는 가장 가성비 좋은 허세가 미술관 가기였다. 그래도 자꾸 자꾸 그림을 보러다니다 보니, 당일 뿐이지만 전시를 보고오면 책도 몇장 읽다보니, 그래도 그림에 허영:진심 = 60:40 정도의 비율쯤은 온 것 같다.
2년 전 가을, 현생에 종종거리던 때에 (물론 지금도 그렇다), 갑자기 하루 시간이 비었다. 집에만 있기는 아까워 무작정 밖을 나섰다.종로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싣고, 급하게 지금 하고 있는 전시를 찾아봤다. 포스터 한장이 마음을 이끌었다. 꼭 이 그림을 직접 두눈으로 봐야 겠다는 마음.그렇게 삼청동의 작은 갤러리로 향했다. 엄유정 작가의 전시였다.
무심하게 툭툭 던진 선들로 그린 공허하고 텅빈 표정들의 변주로 이루어진 다양한 얼굴들. 그림을 보고서는 나는 여운이 너무 짙어 그자리를 한참을 떠나지 못했다.
이 여운은, 파리 오랑주리에서 본 모네의 수련을 봤을 때 느낀 것과는 확연히 다른 감정이었다.
누군가는 그림이 기괴하고 무섭다고 할지 몰랐다. 하지만, 나는 그 경직된 무표정으로부터 그 내면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생각과 상념들을 마주했다. 그림은 나를 거울로 비춘 것만 같았다. 내 겉모습뿐만 아니라 마음도 비춰진 것만 같았다.
살아내기 위한 낮은, 마음의 표정 그대로 얼굴에 드러 낼 수 없는 시간이다. 밝음, 웃음, 즐거움 양의 감정만이 허락되는 시간엔, 침울하거나, 힘들거나, 슬픈 감정을 꺼내보일 수가 없다.
어두운 밤이 되어서야, 우리는 그러한 감정을 꺼내볼 수 있다. 어둠에 가린 얼굴은, 그제서야 웃지 않아도 된다. 편히 굳어진 얼굴을 할 수 있다.
공허한 표정에서 숨이 쉬어짐을 느꼈다.
그렇게 온전히 나에게 편안한 얼굴을 한채, 쏟아지는 상념들에 나를 맡겨 이리저리 흔들린다.
그 안에는 지금 스스로에 대한 연민, 걱정, 미래에 대한 두려움 비관이 있었고, 한켠에서는 이를 이겨내고자 하는 결연함, 열심, 긍지도 있었다.
그림의 보면서의 마지막 감정은 안도였다.
나만 그런 건 아닌 것 같다는 다행의 마음.
부정적인 감정을 누군가에게 터놓고 하소연 하기를 싫어하다보니, 어쩌면 내게 가장 큰 위로가 되었다.
작가의 그림은 간결하고 무심했지만,
복잡했고 나를 전심하게 했다.
그리고 올해 4월 엄유정 작가님의 전시 소식을 알게 됐다. 다양한 작품들 중에, 나에게 특별한 경험이 되었던 밤 얼굴 시리즈가 있어 가보지 않을 수 없었다.
아홉 점의 밤 얼굴들을 보면서, 그해 가을의 나를 생각했다.
이 특별한 경험을 간직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처음 그림을 한점 사보았다.
엄마가 알면 등짝을 때릴, 주제넘는 낭만을 올해 나에게 선물로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