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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소영 Feb 07. 2024

인터뷰이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소심한 인터뷰


인터뷰어로 일한다고 말하면 사람들이 더러 묻는다. 

“인터뷰를 하다가 친구가 된 사람도 있어요?”

여러 번 들었지만, 이 질문을 받을때면 매번 처음처럼 웃음이 난다. 우스운 질문이어서가 아니라, 관계가 제일 어려운 나에게 이런 궁금증을 가져준다는 게 감개무량해서다.


1년 만난 지인에게도 “당신이 저를 얼마나 가깝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어요”라는 말을 듣는 나다. 그러니 한두시간 남짓 이야기를 나눈 사람과 친구가 될 수 있을리가 없다. 어쩌다 같은 사람을 또 다시 인터뷰하게 되는 경우가 생겨도 내적친밀감이 높아질 뿐 사적인 연락을 나누는 관계로 발전하는 일은 드물다. 그런데 이건 사교적인 성격의 기자들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일로 만난 관계는 만남의 횟수가 늘어도 어쩔 수 없이 사무적일 수밖에 없으니까. 게다가 단번에 마음이 통하는 사람 만나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나의 호감이 상대에게는 부담일 수 있다. 똑같은 타이밍에 비슷한 마음을 가진 사람을 만나는 건 기적이다. 기적은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다만 가끔 인터뷰이에게서 뜻밖의 연락이 오기는 한다. 얼마 전에는 10년 전에 인터뷰했던 한 단체의 대표에게 연락이 왔다. 당시의 인터뷰 기사를 다시 한번 보고싶다는 이유였다. 십년 만에 다시 듣는 목소리가 반갑고 기뻤다. 여전히 그 인터뷰 기사의 쓸모가 남아있다는 사실이 지나온 시간을 묵묵히 위로하는 것 같았다. 이미 퇴사를 한지 오랜 시간이 지났고, 신입 기자 시절에 썼던 글이라 가지고 있는 자료가 없었지만 지난 메일함을 모조리 뒤져서 pdf파일을 찾았다. 그에게 기사 파일을 보내준 뒤 우리의 인연은 다시 마무리되었다.


한 번은 내가 청탁한 칼럼의 기획으로 소설을 썼다고 연락한 소설가가 있었다. 업무차 마지막 연락을 주고받은지 2년만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그는 당시 칼럼을 쓰며 얻은 아이디어로 소설 한 편을 완성할 수 있었다면서 소설이 실린 문예지와 함께 초콜릿 상자를 내밀었다. 당시 나는 밤샘 마감을 하며 기사를 쓰는 데 지친 데다, 한 달에 몇 번씩 새로운 사람을 만나 길고 깊은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는 피로감에 완전히 파묻힌 상태였다. 인터뷰를 생각하면 심장이 욱신거리고, 새하얗고 텅빈 워드 파일을 보면 눈물이 났다. 나는 그가 건넨 초콜렛 상자의 리본을 매만지며 어렵게 고백했다.


“사실 오늘 약속을 취소할까 고민했어요. 이 일을 하는 데 너무 지쳤거든요. 이번주에 퇴사를 한다고 말할 거예요. 업계를 완전히 떠날 예정이라 이런 선물을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어요.”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듣던 그가 말했다. 

“그 재능을 왜 다른 데 쓰려고 해요? 절대로 그만두지 마세요. 힘들면 그만두는 게 아니라 조금 쉬는 겁니다.”


그 말을 듣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펑펑 눈물이 났다. 나는 충분히 잘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싶었던 거구나. 결국 퇴사는 일단락됐고 나는 업계를 떠나지 않았다. 20대의 끝자락에는 그의 말 한마디를 붙잡고 버텨온 것 같다. 덕분에 지금껏 이 일을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친분이 두터워진 것은 아니다. 그는 나에게, 나는 그에게 고마운 마음을 품고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제가 광고를 만든 브랜드의 물건을 우연히 보게 되면 너무 반갑고 기뻐요. 마치 오래 전 연락이 끊긴 동창생을 만난 것 같죠.” 

언젠가 나눈 인터뷰에서 브랜드의 홍보를 담당하는 AE가 이렇게 말했다. 이 말을 들으며 나는 지금껏 만난 인터뷰이들을 생각했다. 유튜브에서 인터뷰이가 나오는 영상을 볼 때, 인터뷰이가 다니는 회사의 물건을 쓸 때, 새 작품이 나왔을 때, 누군가 그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을 때 마치 오래된 동창생의 소식을 들은 듯 애틋해진다. 단짝은 아니었지만 어떤 이유로 호감을 품었던 친구. 가깝지 않았기에 구태여 연락하지는 않지만 잘 살기를 바라던 친구의 사진을 SNS에서 조우한 것처럼 기꺼운 마음이 된다. 인터뷰를 준비하려면 적어도 열흘 이상은 한 사람을 깊게 들여다보며 마음에 품고 지낸다. 그러므로 반가운 동창생 같다는 표현이 영 과장은 아닐 것이다. 


나는 이정도의 거리감을 유지한 인연이 늘어가는 게 좋다. 우연히 인터뷰이들의 소식을 들으면 멀리서 더욱 잘 되기를 진심으로 빈다. 인터뷰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이 없으면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다. 내 일을 가능하게 해 준 고마움을 말없는 응원으로나마 갚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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