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중고로운 평화나라, 어떤 아이템이 어떻게 거래되고 있을까?
오늘도 중고로운 평화나라, 어떤 아이템이 어떻게 거래되고 있을까? 희귀 식물부터 아기 침대까지, 슬기로운 중고 거래 마니아 일곱 명에게 거래의 기술을 물어보았다.
당신 근처에, 희귀 식물을 거래하는 다정한 디자이너.
식물에 발을 들인 건 사회생활의 시작과 함께였다. 업무량이 많은 고된 시기에 식물은 큰 위로가 되었지만, 잘 보살피지는 못했다. 식물을 몽땅 죽이고 죄책감에 한참 권태기를 겪었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진 요즘 다시 식물을 들이기 시작했다. 이번엔 희귀 식물을 위주로.
오프라인 농장 ‘조인 폴리아’ 또는 네이버 식물 카페 ‘알뜰한 식물 생활’을 시작으로 엑스플랜트(Xplant), 심폴, 중고나라와 같은 플랫폼까지 다양한 경로로 식물을 데려온다. 특히 심폴의 경매 기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최근 치열한 접전 끝에 벨벳 질감에 하트 빵떡잎이 매력적인 ‘안스리움 클라리네비움’을 16만 9000원에 구매했다. 쉽게 만날 수 없는 식물을 거래하는 만큼 맘에 드는 친구가 보이면 가격을 깎거나 조건을 흥정하지 않고 지갑을 활짝 연다. 이런 때 인연과 같은 맥락으로 ‘식연’이란 표현을 쓴다.
판매는 주로 당근 마켓으로 한다. 분양할 때는 뿌리, 촉, 잎, 새순 상태까지 상세하게 사진과 설명을 더해 올린다. 농장에서 자라던 아이들보다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다시 가정에 적응을 잘한다. 이는 식물을 중고 거래하는 가장 큰 장점이다.
안민규 (33) @xhnmxnkxx
여러 다른 일을 거쳐 지금은 볼드 피리어드 BX 팀에서 일하고 있는 그래픽 디자이너. 식물엔 늘 진심인 편이다.
스티커 한 장부터 차 한 대까지 중고로 거래합니다
중고나라, 번개장터, 당근마켓까지 다양하게 물건을 거래한다. 오토바이와 같은 마니아틱한 제품은 특정 카페나 커뮤니티를 활용한다. 절반의 비율로 중고 거래의 판매자이기도 구매자이기도 하다. 그만큼 팔기도, 사기도 많이 한다. 팔 때는 사용자로서 느꼈던 장단점을 가감 없이, 가진 내용을 있는 풍부하게 쓴다. 사진도 여러 각도로 많이 찍어 올린다. 파는 아이템은 정해져 있지 않지만, 매물을 올리는 시간은 일요일 저녁 8~9시, 즉 개콘 시간대로 정해 두었다. 저녁 식사는 진작 마쳤고, 다음날 출근을 앞둬 놀러 나가긴 부담스럽지만, 아직 남은 주말이 아쉬운 그 시간에 사람들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기 마련이다. 나의 빅데이터에 의하면 그때 올린 글이 조회 수가 많다.
내가 중고 거래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뭐니, 뭐니 해도 머니. 물건에 호기심도, 욕심도 많은 나의 마음을 충족하기 위해 저렴하게 사서 쓰고 다시 팔 수 있는 중고 거래만 한 게 없다. 최근엔 중고 거래가 활성화되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느낀다. 얼마 전엔 미국판 아이폰을 중고 거래로 샀다. 판매자가 미국에서 입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자가 격리 중이라며 엘리베이터로 휴대폰만 내려보내더라. 신기한 경험이었다. 중고 거래를 하는 사람에게 주고 싶은 팁, 게시 글에 써놓은 걸 먼저 잘 읽고 그다음에 질문할 것. 예전 국어 선생님이 하시던 말씀이 떠오른다, ‘정답은 본문에 있다’고.
최재필(28), @realjeffchoi
회사 다니는 것 빼고 다 자신 있는 회사원. 중고 거래를 하다 보니 빈티지가 좋아진 건지, 빈티지를 좋아해 중고 거래를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드림 슈를 찾는 여정
운동화를 중고 거래하던 나의 역사는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운동화가 정말 좋은데 돈은 없던 고등학생 때, 중고 제품을 사 신기 시작했다. 대학생이 되고 다음 카페 ‘나이키 매니아 닷컴’ 등에서 본격적으로 중고 운동화를 구해 신었다. 비공개 카페가 되었지만, 여전히 이용하고 있는 플랫폼이다. 지금은 네이버 카페 ‘나이키 매니아’, 크림(Kream), 솔드아웃, 그리고 미국 사이트 스탁스(Stockx)를 모두 활용한다. 아무래도 큰 카페일수록 원하는 신발을 찾을 확률이 높아진다. 신발 마니아 사이에서 꼭 가지고 싶은 신발을 ‘드림 슈(dream shoe)’라 한다. 중고 거래의 묘미는 바로 이 드림 슈를 구했을 때. 전 세계 3500족 정도 발매했던 나이키 우븐 부츠 HTM 라인 검/흰을 구한 적이 있었다. 돈과 별개로 큰 희열을 느꼈다. 별 생각 없이 가지고 있다가 가격이 엄청나게 올랐을 때도 기분이 좋다. 예를 들면 최근 나이키 덩크는 40만 원에 사서 가지고 있던 게 100만 원까지 올랐다.
아무래도 중고 거래는 새 제품을 사는 것보다 번거롭다. 판매할 땐 마켓의 최저가에 근접하게 업로드하고 문제가 될만한 제품의 하자는 미리 언급한다. 나중에 귀찮아지는 게 싫어서다. 구매자일 때도 번거로움을 최소화하려 노력한다. ‘00 플랫폼에서 어떤 품목 보고 연락 드려요. 판매 중인가요?’와 같이 한 번에 메시지를 보낸다. 대뜸 ‘팔렸나요?’라 물어보면 메시지가 여러 번 오고 가야 하니까.
박차준(37) @chajun.park
물류회사에서 CS 업무를 맡고 있다. 어릴 때부터 나이키를 좋아했고, 여전히 좋아해 꾸준히 사고 또 판다.
취미는 중고 거래, 특기는 빈티지 사냥.
의류나 소품을 살 때는 이베이, 가구나 조명은 스웨덴 경매소인 부코스키 (Bukowskis), 그 외 잡동사니는 중고나라를 활용한다. 디자이너 가구를 좋아한다면 스웨덴, 핀란드의 중고 거래 플랫폼을 강력 추천한다. 구매 대행을 활용하면 괜찮은 가격에 멋진 제품을 구할 수 있다.
요새는 특정 카테고리를 전문으로 다루는 중고 거래 플랫폼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관심 있는 아이템을 그저 들여다보는 것만으로 재미가 있다. 가구 관련 사이트는 취미처럼 수시로 둘러보다 저렴하게 올라온 제품이 눈에 띄면 낚시를 하듯 보물을 건져 올린다.
구매의 반 정도 비율로 중고 판매도 한다. 판매할 때는 홈페이지에 있던 제품 연출 사진을 꼭 함께 올린다.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구매자의 상상을 도와 거래가 쉽다. 중고 거래의 쾌감은 둘 중 하나다. 좋은 가격에 샀거나, 생산이 중단된 제품을 구했을 때. 단종된 CD 플레이어인 ‘뱅엔울릅슨 9000 mk3’을 미국 이베이에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값으로 구한 적이 있다. 스피커, 거치대, 플레이어를 모두 따로 구매해야 했기에 실제 사용까지 한참을 매물을 찾아 헤맸다. 부품을 모두 구해 조립을 완성한 지금은 아내가 운영하는 카페 ‘뽀르누(forno Seoul)’에서 사용하고 있다. 완벽한 새것보다는 세월을 머금은 물건이 더 멋지다. 그런 점에서 중고 거래는 재미있다.
정지훈(36) @heyjundiary
한남동 리빙 편집숍 ‘챕터원’의 세일즈맨이다. 곧 세상에 태어날 딸을 기다리고 있다.
쿨거래로 달립니다
운동과 관련한 제품 중고 거래를 활발히 한다. 러닝화, 축구화, 운동복 등이다. 중고 나라와 네이버 카페 ‘레사모(레플리카를 사랑하는 모임)’를 주로 이용하는데, 새 제품을 사서 중고로 판매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 온라인으로 운동복을 샀다가 사이즈가 맞지 않거나 움직임이 불편할 때 되팔게 된다. 중고 거래를 통하면 이미 품절되어 구하지 못하는 제품을 손에 넣을 수도 있다. 정말 가지고 싶던 풋살화가 있었는데, 고민을 오래 하다 결국 사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지고 싶은 마음이 오히려 커져 다시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역시 사람 보는 눈은 다 비슷한 건지 폭발적인 인기로 이미 품절이 된 상태였다. 중고 거래 사이트를 둘러보다 우연히 발견한 날, 더는 머뭇거리지 않고 구매를 했다. 아, 지금 생각해도 이 거래는 뿌듯하다.
내가 판매자일 때 문자 세 통 이하로 쿨한 거래가 성사된 경우, 택배 비용을 받지 않는다. 시간은 돈이니까. 중고 거래를 하면서 꼭 지키려는 매너는 시간 약속이다. 사이즈가 맞지 않는 운동복을 중고 거래 플랫폼에 올리자마자 사겠다는 사람이 나왔다. 직거래를 하기로 해서 약속 장소에서 기다렸는데, 구매자가 나오지 않았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도 영원히 연락되지 않고 있다. 직거래뿐만 아니라 택배도 늦어지면 마음이 불안하기 마련이다. 보내주기로 한 날엔 꼭 보내주고 확인도 바로 시켜준다. 그 맘 내가 잘 아니까.
박진웅(30)
직업은 말할 수 없다. 사람들을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몸을 만든다.
남은 미술 재료, 팔리면 팔고, 안 팔리면 말고!
멀쩡하지만 정작 나는 쓸 일이 없는 물건은 버리기 아깝다. 필요하지만 플라스틱을 재료로 한 물건은 새 제품을 사기에 마음이 걸린다. 중고 거래를 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면 환경을 위해서다. 사용하고 남은 미술 재료나 안 쓰는 장난감 같은 취미 용품을 주로 판매한다. 팔리면 팔고, 안 팔리면 말고! 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중고거래를 한다. 무료 나눔도 자주 한다. 언제부터 거기에 있었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한 석고 가루, 나무 블록, 인형 옷 같은 건 필요한 사람을 위해 당근마켓에 공짜로 내놓는다. 새것이나 다름없는 클레이를 내놓은 적이 있다. 받아 가기로 한 사람이 공예가였던 걸까? 직접 만든 보노보노 친구들을 선물로 주겠다고 했다. 둘 곳이 마땅치 않아 받진 않았지만, 나누는 기쁨에 말랑말랑 귀여운 기분이 들었다.
판매할 때는 사진은 최대한 사실에 가깝게 찍는다. 미술 재료의 경우 특히 색이나 상태를 알아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상대가 불안하지 않도록 약속 시간은 꼭 지키려 하며, 웬만하면 봉투까지 신경 써서 깨끗하게 담아주려 한다. 중고 거래라도 새 친구를 맞이하는 것처럼 설레고 기분이 좋았으면 하니까.
채윤희(27) @yooonsik
그림을 그리고 디자인을 한다. 자세히 보면 더 재밌는, 그런 그림책을 만든다.
아기 침대와 장난감 나눕니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는 아이는 연령별로 필요한 물건도 달라진다. 짧은 육아템의 주기를 보완하기 위해 중고 거래를 한다. 새 걸 사서 중고로 팔기도, 중고로 산 물건을 다시 중고로 판매하기도 한다. 아기 침대를 살 때 고민이 많았다. 키도 몸무게도 빠르게 늘어나는 아이가 잠깐 사용하게 될 제품 치고 가격에 꽤 나가기 때문이다. 적당한 매물을 찾던 중, 당근마켓에서 깨끗하게 사용한 좋은 상태의 아기 침대를 무료 나눔 받았다. 매우 많은 부품을 일일이 분해해 차에 싣는 것까지 이전 주인이 모두 도와줬다. 자신도 역시 당근마켓에서 이렇게 무료로 나눔을 받았었다고 말하며.
근처에서 편하게 거래하기 위해 주로 당근마켓을 이용한다. 해당 플랫폼의 ‘키워드 알림’ 기능을 적극 활용한다. 필요한 아이템이 생기면 알림을 걸어놓고, 관련 업데이트를 빠르게 확인한다. 마음에 드는 제품은 즉각 구매한다. 판매자 입장에서도 키워드만 잘 걸어 두어도 판매로 쉽게 이어진다. 중고 거래를 하러 나갈 때는 가방과 큰 쇼핑백을 꼭 챙긴다. 아내와 아이가 누울 수 있는 쿠션을 거래한 적이 있었다. 버스를 타고 거래 장소에 나갔는데 생각한 것보다도 더 커다란 쿠션을 그대로 전달받게 되었다. 다시 버스를 타고 집까지 돌아오는 길, 너무 크고 너무 귀여운 쿠션을 안고 있느라 꽤 민망했다. 이후, 물건을 챙길 가방을 잊지 않으려 한다.
이승효(33)
개발자로 일하고 있다. 아직은 아이가 어려 사들이는 육아 아이템의 비율이 더 높다. 아기가 어린이가 되면 쌓아둔 내공으로 적극적인 판매자가 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