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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드저널 Nov 26. 2020

무빙건의 세포들

Moving-gun's Cells


남녀 사이에 일어나는 미묘한 연애 심리를 꿰뚫어 보는 '기혼 남성' 웹툰 작가. 나조차 모르는 속마음을 섬세하게 읽어내는 〈유미의 세포들〉로 누적 조회 수 30억 뷰, 회당 댓글 1만 개라는 뜨거운 공감을 이끈 웹툰 작가 이동건을 만났다. 5년 7개월, 유미의 머릿속 세포들을 탐험하던 그의 세포들은 온통 네 살 아이에게로 향해 있었다. 독자가 지어 준 애칭 ‘무빙건’으로 더 친숙한 그의 머릿속에서는 오늘도 ‘아빠 세포’가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그의 안락한 보금자리에서 평범하지만 가장 빛나는 시절을 지나는 한 아버지의 일상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집과 일하는 공간이 분리되어 있네요.

원래는 집에서 작업했어요. 작업실이 생기고 나서도 집중이 잘 되는 저녁 시간대를 주로 활용했었는데, 아이가 태어나고 달라졌어요. 집 근처에 작업실을 마련해서 출퇴근 루틴을 만들었어요. 요즘엔 늦어도 7시면 작업을 마쳐요. 집에 와서는 온전히 가족과 사용하려 해요.


집에서는 주로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내요?
집에 오면 아이가 잠들기 전까지 같이 있어요. 잠깐 한눈을 팔면 지원이가 “아빠 어디가?” 부르니까요. 보여 달라는 거 보여주고, 나가자면 나가고, 그렇게 같이 보내요.


지원이는 뭘 가장 즐거워하는 아이인가요?
킥보드 타러 나가자고 자주 얘기해요. 활동적인 걸 아주 좋아해요.


요즘 작가님 최대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작업 공간을 분리하고 삶의 루틴을 새로 만든 것과 같은 맥락에서 ‘아이’예요. 지원이가 기저귀를 떼는 중이라 배변 훈련을 하는 데 집중하고 있어요. "쉬 마려우면 마렵다고 얘기해" 가 요즘 제일 많이 하는 말이에요. 아이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관심 있게 보고 있어요. 내년에는 유치원에 보내야 해서 집 근처 유치원에 대한 정보도 주의 깊게 듣고요.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발견했나요? 혹시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나요?
그다지 좋아하진 않아요. 더 지켜봐야 알겠지만요. 오히려 문자나 숫자놀이를 재밌어해요. 자동차도 좋아하는데, 공룡은 안 좋아해요. 좋아했으면 바랐는데. 제가 어렸을 때 공룡을 좋아했거든요. 그래서 저와 비슷할 줄 알았어요. 아, 지원이가 누나들을 좋아해요. 백화점이든 음식점이든 자기보다 큰 누나들을 보면 꼭 “누나다!” 얘기해요. (웃음)


지원인 누굴 닮았나요?
외모는 아내와 저의 좋은 부분만 닮은 것 같아요. 취향은 절 안 닮았어요. 전 음악이랑 그림을 좋아하는데, 둘 다 별로 안 좋아해요. 음악을 틀면 “조용!”이라 하고, 악기를 불면 하지 말라고 해요. (웃음)


아이와 대화는 많이 하나요?
그런 편이에요. 아이가 아직 말이 유창하진 않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알아들을 수 있어요. 아이가 자주 하는 질문 중에 “아빠 지금 기분 좋아?”가 있어요. 제 기분에 관심을 두고 물어보는 게 신선하기도 하고, 기분이 꽤 좋아요.
























아이 없는 신혼 생활을 꽤 길게 보냈다고 들었어요.
한 3년 정도요. 안 생기기도 했고,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계획을 한 건 아니었는데 아이를 가졌을 땐 생겼을 땐 굉장히 기뻤죠.


아이가 태어나던 순간, 어떤 감정이 들었을까요?
그때까지만 해도 별생각 없었어요. ‘와, 이게 내 아이구나.’ 이런 벅찬 감정이 아니라. 그냥 ‘아, 아이는 정말 조그맣구나.’ 정도의 느낌이었어요. 100일 기념사진을 찍으러 갔는데, 사진사가 "자, 아빠 미소!"라고 하더라고요. 그 얘길 들으면서 ‘그게 뭔데?’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그런데 아이가 나를 인식하고 의사소통을 시작하면서부터는 좀 달랐어요. 아이가 태어난 순간이 아니라 오히려 아이가 저를 아빠로 인식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아빠가 되어가고 있다고 느껴요.


아빠라는 새로운 역할이 생기면서 프라임 세포(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세포)가 바뀌었나요? 새로 생긴 세포도 있나요?
네. 세포들이 많이 바뀐 느낌이 들어요. 결혼하기 전엔 확실히 연애에 관심이 쏠려 있었어요. 밤에 자기 전에도 연애 생각을 가장 많이 했고요. 어느 순간부터 누우면 애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지원이 아빠 세포’가 새로 생긴 것 같네요.
이전에는 알면서도 포기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예를 들어 제가 밀가루가 소화를 잘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스트레스받으면 라면을 끓여 먹어요. 스트레스가 쌓이면 과자도 ‘과작과작!’ 소리 내며 씹어 먹고요. 누가 핀잔을 줘도 그러던가 말던가였어요. 아내 말로는 삶을 약간 포기한 상태였대요. ‘머리 정리 귀찮으니까 빡빡 밀지 뭐,’ ‘내가 안 나가면 되지.’ ‘집에 오지 말라고 해.’ 같은 생각을 할 때도 많았어요. 인터뷰하면 카메라 앞에 서야 하고 질문지에 대답도 신중하게 생각해야 하니까, 그 과정 자체가 부담스럽고 귀찮은 마음도 들어 거절한 적도 있고요.


지원이가 없었다면 오늘 인터뷰 자리도 없었겠어요.
꼭 그렇다고 단정할 순 없지만, 영향이 있는 것 같아요. 〈유미의 세포들〉 연재를 마치며 다양한 매체에서 큰 관심을 가져주셔서 작품에 관한 인터뷰는 좀 했어요. 그래도 사생활 노출은 꺼리는 편인데, 〈볼드저널〉이라는 매체에서 그리는 아버지들의 모습이 좋았던 것 같아요.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동료 아버지들에 대한 생각, 보통의 가정 삶 속 이야기를 포착하는 자연스러운 사진의 시선과 편안한 인터뷰가 좋았어요. 특히 그런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아이와의 사진을 남기고 싶었거든요. (웃음)


최근에 패션 세포가 좀 살아났다면서요?
밖에 나가기 전에 ‘잠깐, 난 지원이 아빠인데, 옷을 좀 더 챙겨 입기로 하지.’ 하고 생각해요. 쇼핑몰이나 사람 많은 데 가면 아빠들 패션을 유심히 봐요. 그리고 아내한테 얘기해요. "저 사람 되게 멋있어 보이지 않아?" 잘 보이고 싶은 대상이 달라졌다고 해야 할 것 같아요. 유치원 아빠 중에서 제일 멋있고 싶어요. 그런데 직장인 아빠들을 이기기 힘들어요. 요즘 유행하는 통 큰 데님에 리젠트 머리를 하고 나타난 아빠를 보면 ‘어? 이 사람 봐라? 이렇게 출근을 한다고? 너무 멋있잖아?’ 생각해요.


〈유미의 세포들〉 전시에는 댓글을 따로 모아둔 섹션도 있더라고요. ‘무빙건, 옥상으로 따라와’ 같은 댓글을 보면 작가님의 친근한 이미지가 느껴져요.
저도 그게 되게 좋았어요. 별명이나 애칭을 만들어 부르거나 "형!"하고 스스럼없이 부르는 것도 정말 좋아요.


3040 아버지를 대변하는 ‘미스터 볼드’라는 캐릭터를 활용한 콘텐츠를 기획하며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 이야기나 세계관을 만드는 일이 굉장히 어렵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공감 포인트를 잘 알고 독자와 소통에 능한 비법이 있나요?
어떤 방법으로 공감 포인트를 수집한다고 말하기는 어려워요. 제 경우 그저 많이 찾아보고 주변에 물어보면서 늘 필사적으로 의견을 구하려 해요. 물론 카페 글도 보고, 트위터, 인스타그램 검색도 하죠. 최신 영화나 드라마에서 공감을 살 만한 코드라던지 트렌드를 열심히 읽어요. 예를 들면 상황을 유심히 봐요. 아, 이런 상황에선 사람들은 보통 저렇게 말하는구나, 저런 말에는 이렇게 반응하는구나, 싫어하는구나, 좋아하는구나. 그리고 그걸 기억했다가 꺼내 써요. 그대로 쓰진 않아요. 그렇게 되면 ‘여자는 이래’, ‘대학생은 이래’처럼 정해버리는 거잖아요. 그런 게 진짜 꼴 보기 싫거든요. (웃음) 대신 그걸 다시 주변 사람에게 물어봐요. “정말 이래?” 그럼 아니라는 답변이 대부분이에요. 그러면 거기서 다시 한번 생각을 정리하면서 이야기를 만들어요. 시즌이 지난 콘텐츠는 드라마도 만화도 의식적으로 잘 안 보려고 해요. 안 먹힐 것 같아서요.



독자와 소통을 잘하는 작가라서 궁금했어요. 아내와도 소통을 잘하나요?
저는 잘한다고 생각해요. 아내에게 물어봐야겠지만요. 그런 사람들 있잖아요. “나 오늘 있지, 어땠는 줄 알아?” 집에 오자마자 작은 거라도 다 이야기하는 사람이 바로 저예요. 길을 걷다 뭘 봤는데 좋았다는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까지도.


그럴 때 아내의 반응은 어때요?
기분 좋을 때는 “아, 맞나?” 아닐 땐 “아, 시끄럽다.”(웃음)


가정 평화를 지키기 위해 하는 노력이 있나요?
말을 안 하면 안 돼요. 예전에는 기분이 안 좋으면 말을 안 해 버렸거든요. 결혼하고 나니 그런 방법을 택하면 큰일 나겠더라고요.


기분이 안 좋을 때 그럼 어떻게 해요?
안 좋다고 얘기하죠. (웃음) 나 이것 때문에 이런 감정이 든다고, 디테일하게 얘기해요. 대화하고 나면 풀리는 경우가 많아요. 누구에게나 조금씩은 공감 능력이란 게 있으니까, 자기감정을 잘 말하기만 해도 ‘하긴, 뭐 그럴 수도 있겠네.’ 하고 해결되는 일이 많아요. 사실 별일 아닌 거로 갈등하고 다투게 되잖아요.


팔로워가 무려 18만 7천 명에 달하는 유미의 인스타그램은 앞으로 어떻게 되나요?
활용할 생각이에요. 현재 제 관심사에 맞게 육아 툰이라던지 네 컷 만화 같은 걸 생각하고 있는데 어떻게 될지는 더 생각해 봐야겠네요.


육아 툰도 정말 재밌을 것 같은데요?
하라면 진짜 잘할 것 같아요. 마침 아이를 키우고 있고, 그동안 경험한 에피소드들도 많으니까. 문제는 이게 직업이라서 시장성을 봐야 해요. 웹툰 작가 세계에서도 분야별로 특화된 전문 분야가 있고, 각자의 역할이 있잖아요. 내가 잘하는 분야에서 더 발전시키고 만들어 나가는 게 맞지 않을까 생각해요. 물론 그 안에서 변화를 주긴 해야겠죠. 이제 막 연재를 끝낸 터라 아직은 고민 중이에요.



트렌드를 읽고, 시장성을 파악한다는 얘기했어요. 작가님이 생각하는 창작자로서 중요한 미덕은 무엇인가요?
저는 만드는 사람보다 '보는 사람'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만드는 사람도 어차피 누군가에게 보여주려고 만드는 거잖아요. 그런 관점에서 콘텐츠는 보기가 좋아야 해요. 이전에 인터뷰에서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도 읽히는 만화를 그리고 싶다”고 한 적이 있었는데 같은 맥락이에요. 가독성이 굉장히 중요해요. 이전에 이미 유행하던 얘기를 다시 하면 김빠지잖아요. 그래서 새로운 거나 요즘 사람들이 관심 있어 하는 걸 찾아요. 그리고 그걸 반영하려 노력해요.


유년 시절 가족에 대해 어떤 기억은 어떤가요?
엄마는 자유로운 사람이었고, 아빠는 통제가 많았어요. 왜 통제란 단어를 썼느냐, 이유를 말 안 해줬거든요. 다칠까 봐 위험하다거나, 살아가는데 필요한 주의를 주는 것은 부모의 몫이겠지만 아이 입장에서는 설명이 없으니 답답할 수 있어요. 저는 아이가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늘 그 이유를 설명하고 얘기해줘요. 왜 4살 아이는 운전석이 아니라 뒷자리 카시트 위에 앉아야 하는지 성인에게 설득하듯 아주 진지하게요.


아이는 어떻게 받아들여요?
기분이 좋으면 알아듣고, 기분이 나쁘면 못 알아들어요. (웃음)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흐름이 바뀌면서 고립을 온라인으로 연결하는 ‘온택트’라는 개념이 생겼어요. 시대적 흐름으로 웹툰이 차지하는 역할이 커지고 있는데, 작가로서 자기 일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요즘 다들 어렵다고 하니 너무 좋아하긴 뭐한데, 다행인 것 같아요. 모바일 폰으로 콘텐츠가 송출되어 누구나 쉽게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으니까요. 2010년도쯤 문구를 만들어 팔았는데 인쇄하러 충무로에 가면 왜 사양산업을 시작하냐고 물었어요. 연말이면 다이어리 물량이 밀려 인쇄소가 특수였다면 요즘에 그런 풍경은 사라졌어요. 사람들은 더 스마트하게 일정을 관리해주는 애플리케이션을 찾아요. 안 팔리는 캐릭터 다이어리를 홍보할 방법을 고민하다가 웹툰을 그리게 되었다는 점이 참 아이러니하네요.


20대에 음악 활동을 했다고 들었어요. 잘 안 되는 일을 계속하는 게 힘이 들어 그만두게 되었다고요. 30대에는 웹툰 작가로 성공했는데 그 갭이 크게 느껴질 것 같아요.
음악을 하고 싶었던 사람으로서 되게 인정하기 싫은 부분인데, 각자 잘하는 게 따로 있는 것 같아요. 음악을 하면서 가장 많이 느꼈어요. 열심히 노력하고 시간을 들이면 어느 정도 결과가 나올 거라고 생각잖아요. 그런데 시작하자마자 빛나는 사람이 있어요. 홍대 앞 인디밴드의 공연장 시간표에서 화요일은 제일 인지도가 없는 팀의 데뷔 무대예요. 우연히 어떤 팀의 공연을 봤는데 음악이 끝내줘요. 딱 2주 공연하더니 바로 사라져버렸어요. 록 밴드 ‘브로콜리 너마저’ 얘기에요. 그렇게 소위 되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저는 끝까지 부정했어요. 우리 실력을 곧 알아봐 줄 때가 올 거라고. 답변을 이어 나가려니 어렵네요. 어쨌든 20대에 하던 음악보다 지금 이걸 더 잘하는 건 확실해요.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는 것 역시 웹툰 작가 만큼이나 섬세한 감수성이 필요한 작업이잖아요.
어떤 점에서는 비슷해요. 곡을 만들고 대중에게 선보이는 것도 같고요. 가장 크게 다른 점이 있어요. 밴드는 협업이고 웹툰은 독고다이라는 것. 저는 협업이 잘 안 맞는 것 같아요. 함께 의견을 내고 합의점을 찾아가는 과정이 힘든 사람이 이에요. ‘내 의견 안 받아들여? 그럼 나 안 해.’ 이런 마음 이랄까. 섬세한데 협의는 못 하는 사람. 웹툰 작가라는 직업을 찾은 건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운이라기보다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 이곳으로 향하게 했던 건 아닐까요?
생각해보니 이거 해보다 실패하고 안 돼서, 또 저거 해보고, 또 그 상황 안에서 최선이나 차선을 찾아가다 보면 길이 보이는 것 같아요. 인생의 원대한 계획 같은 게 있었던 건 아니지만 그런 과정들을 통해 지금의 내 자리를 찾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거 제가 한 얘기처럼 정리해주세요.(웃음)


예민하게 세포 하나하나가 반응하는 사람이라 세포에 일일이 캐릭터를 부여하고 설명할 수 있는 웹툰을 그린 게 아닐까요?
저 자신을 레이더가 넓은 사람이라고 말해요. 좋게 말하면 섬세하고 나쁘게 말하면 예민하죠.


작가로서 섬세함에 대한 장점은 알 것 같아요. 가족 구성원으로서는 어떤가요?
기분이 좋을 때, 다정하게 챙기는 것은 엄청나게 잘해요. 말하지 않아도 아프면 알아채고 약도 물도 챙겨 주는 식이에요. 근데 기분이 안 좋으면 주변 사람을 굉장히 짜증 나게 해요.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오래 전 사건을 기억하고 끄집어내면서 달달 볶을 때도 있어요. 감정의 스펙트럼이 넓은 만큼 극과 극인 것 같아요.


그런 성격은 타고난 건가요? 길러진 건가요?
주변 애들을 보면 타고 나길 예민한 애가 있어요. 원래 순하고 무덤덤한 애도 있고요. 전 유전이에요. 저보다 형이 예민하고, 형보다 누나가 더 예민해요. 그리고 아빠가 제일 예민하고요. 어머니만 몰라요. "어머, 그때 속상했었어? 말을 해줘야지 알지 몰랐잖아." 이런 식이에요. (웃음)


현재 회사를 형과 함께 운영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형이랑은 짝짜궁이 잘 맞아요. 주 2회 연재를 하려면 일주일이 정말 비정상적으로 돌아가요. 작업량이 많아 직원을 구한 적도 있어요. 아이디어가 죽어도 생각이 안나 콘티가 늦어지지는 걸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이해해주지 않잖아요.

꾸역꾸역 혼자 일하던 때였어요. 초등학교 선생님인 형이 방학이라고 쉬고 있는 거예요. 얼른 채색을 좀 가르쳐주고 작업을 도와달라고 했어요. 곧잘 하더라고요. 그 이후로 3D 자료를 부탁하면 찾아주고, 갑자기 스케줄이 생겨도 흔쾌히 와주고, 성향이 비슷해서 작업이 수월해졌어요. 금세 개학일이 다가와서 형이 학교로 돌아갔어요. 빈자리가 커서 제가 학교 그만두고 같이 일하자고 설득했죠. 지금은 역할이 점점 늘어서 콘티 짤 때부터 같이 의견을 나눠요.




만화에 보면 ‘활동을 안 하는 세포는 죽게 되어 있다’는 대사가 있어요. 아빠가 되면서 소멸한 세포도 있을까요?
삐지는 세포가 활동을 안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애를 상대로 삐지기가 어렵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 같아요. 당연한 얘기를 뻔뻔스럽게 말하네요(웃음).


아이한테 서운할 수도 있죠.
애가 “아빠” 하고 부르는데 “흥, 너랑 말 안 해.” 이럴 수는 없잖아요.


지원이가 어떤 아이로 컸으면 좋겠어요?
밝은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우울한 콘텐츠 대신 밝고 유쾌한 걸 좋아하고, 비주류 대신 평범한 거 좋아하고. 그래야 즐길 수 있는 게 더 많아지니까요. 그냥 그 정도가 다예요. 아이들을 다 키운 누나가 지원이를 보면서 “저 때로 돌아가면 잘 키울 텐데.” 라는 얘기를 가끔 해요. 어떻게 키울 거냐고 물어봤더니 관찰할 거래요. 애가 뭘 좋아하는지, 뭘 자주 하는지, 어떨 때 그렇게 하는지 그냥 관찰할 거래요. 그 말이 정답에 가깝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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