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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드저널 Nov 30. 2020

조던이라는 패션

나이키 운동화를 모으는 아티스트, 그라플렉스

TV 속 농구 스타 마이클 조던, 동네 형들이 신던 나이키 운동화를 향한 동경이 오늘의 아티스트 그라플렉스를 만들었다. 나이키, BMW, 몽블랑 같은 유수 브랜드와의 협업은 물론 상하이, 파리, 홍콩 등 세계 각지에서 끊임없는 전시 러브콜이 이어진다. 올 5월에는 ‘조던 서울 Jordan Seoul’의 아트워크 프로젝트를 맡아 진행하기도 했다.

신동진은 1990년대의 이야기와 정서를 사랑하고, 그걸 근간으로 아티스트로서 정체성을 다져왔다. 200켤레 넘는 나이키 운동화를 모으며 여전히 그는 그 시절 마이클 조던을 기억한다.





최근에 작업실을 옮겼다고 들었어요.
작년 11월에 들어왔어요. 이제 8개월쯤 되었네요. 저 혼자 온전히 독립해서 쓰기 시작한 첫 작업실이에요. 이전에는 다른 작가들과 같이 있었거든요.


나이키 운동화를 모으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 이유가 ‘좋아하는 1990년대 것들의 집합이라서’라고요.
1990년대만 해도 지금의 영상통화는 거의 공상 과학이었어요. 당시 전 〈디즈니 만화 동산〉을 좋아했고, 보이즈 투 멘 Boyz II Men 음반을 어렵게 구해 듣던 소년이었어요. 문방구에서 스타들의 대형 브로마이드를 팔던 시절이었죠. 서태지와 신해철 옆에 놓인 마이클 조던 책받침으로 그를 처음 알게 되었어요. 조던의 경기를 보며 유년 시절을 보냈죠. 축복이라고 생각해요. 당시 우리 세대 특유의 정서와 이야기가 참 많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때 보고 느낀 것들은 지금도 제 작업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어요. ‘나이키 운동화를 모아야지’ 하고 수집을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갖고 싶던 신발이 모두 나이키 운동화였을 뿐이에요. 돈이 없어 사지 못한 학생 때의 강렬했던 소유욕에 재출시되는 아이템은 놓치지 않아요. 당시의 욕구를 추억으로 박제한다고 할까.


몇 켤레나 가지고 있어요?
수집용으로 가지고 있는 나이키 운동화가 150켤레쯤 돼요. 그중 조던이 40켤레 정도를 차지하고요. 신는 나이키 운동화가 60켤레가량 또 있으니 나이키 운동화만 200켤레 조금 넘게 가지고 있네요.


안 신고 보관만 하는 신발은 어떤 것들이에요? 기준이 있나요?
나이키×오프화이트 컬래버레이션 시리즈를 예로 들면, 인기가 많은 한정판이지만 전 그냥 신어요. 제 수집의 기준은 ‘리트로’라 할 수 있어요.


이 많은 신발의 보관법이 궁금해지네요.
사고, 열어보고, 그대로 둬요. 거의 닫힌 상자 속에 잠들어 있죠. 그게 다예요. 한번은 홍콩에서 신발을 샀는데, 캐리어에 신발 상자가 안 들어가서 신발만 가져온 적이 있어요. 지금 같으면 박스를 뜯은 다음 고이 접어서 가져왔을 텐데 그때는 방법을 몰랐어요. 그런 건 있는 것 같아요. 그림 보관을 위해 온도와 습도를 예민하게 관리하는 작업실에 신발을 두니 따로 신경 쓸 필요가 없어요.


태그를 안 뗀 상태로 보관만 했다면 리셀도 가능하겠네요.
생각한 적은 있죠. 회사를 관둘 때라든가. ‘진짜로 힘들어지면 다 팔아야지. 그럼 그걸로 몇 달은 버티겠지.’ 다행히 아직까진 한 번도 판 적은 없어요.(웃음)




작업실을 쓱 보니 신발 말고 피겨도 모으고 있는 것 같아요.
게임 회사에 다니던 무렵부터 장난감을 모으기 시작했어요. 당시 제 주변에는 헐벗은 8등신 애니메이션 피겨를 모으는 사람이 많았어요. 수집은 하고 싶고, 애니메이션 피겨는 내 취향이 아니고, 고민하다 베어브릭으로 시작했죠.


피겨나 운동화 수집은 아빠들의 로망이에요. 하지만 돈과 시간을 들여야 하죠.
저도 줄 서서 기다리고, 시간 맞춰서 추첨식 복권인 래플도 했죠. 3년쯤 전에 홍대 나이키 매장 전체 디스플레이를 맡은 적이 있어요. 그 매장에서 에어맥스1을 발매했는데, 그때도 줄 서 있었어요. 당시 나이키 이사님이 절 보고 왜 거기 서 있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왜겠어요, 저도 에어맥스 사고 싶었으니까요!(웃음) 수집 규모가 본격적으로 커진 건 나이키와 좋은 파트너십을 유지하면서였어요. 브랜드에서 때때로 리미티드 아이템을 보내주기도 하고, 수집하는 게 알려지니 주변에서 선물을 받을 때도 있어요. 아내는 제가 한 100켤레쯤 있겠거니 생각하고 마는 것 같아요.


나이키와 파트너로서 인연이 꽤 깊죠?
2009년 쿨레인 스튜디오와의 광고 작업에 참여하면서 시작되었으니 10년이 넘었네요. 어느 순간부터 끈끈한 파트너십이 생겼어요. 퇴사한 나이키 직원분들과도 가끔 만나 밥 먹고, 서로 다른 술자리에 있다가 합석도 해요. 좋은 소식 있으면 축하하고 응원도 하고요.
조던 본사에서 연락이 와 중국 나이키와 일한 적이 있어요. 당시 프로젝트 담당자는 중국계 미국인이었는데, 프로젝트를 끝내고 담당자의 가족 모두가 한국에 놀러 왔어요. 지금도 연락하고 지내요. 협업을 넘어 브랜드와 친구가 되는 느낌이에요.


이번에 가로수길 조던 매장에 아트워크를 진행했다고 들었어요.
‘조던 서울’은 조던이라는 브랜드를 체험할 수 있는 문화 커뮤니티 공간이에요. 이제까지 조던이 블랙을 기본 컬러로 남성 운동선수를 위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있었다면, 이번 매장은 화이트 컬러를 콘셉트로 한 부티크 같은 공간으로 기획했어요. 매장의 새하얀 벽을 마주하면서 생각했죠. 여섯 번의 우승 이야기를 담아봐야겠다고. 마이클 조던을 사랑하고 조던 운동화와 함께 유년기를 보낸 사람으로서 애정을 말하고 싶었어요. 작은 힌트도 놓치고 싶지 않아 번역기를 돌려가며 정보를 파기 시작했죠. 그 시점에 넷플릭스에서 다큐멘터리 〈더 라스트 댄스〉를 개봉했어요.


공부한 거랑 다큐멘터리랑 다른 점이 있던가요?
아뇨, 열받을 정도로 똑같아요.(웃음) 오히려 다큐멘터리에서 마이클 조던과 주변인들의 섬세한 감정을 다뤄서 더 디테일하더라고요. 매주 설레는 마음으로 봤어요. 최고의 영웅인 마이클 조던 뒤에 감춰진 혹독한 시간이 외롭고 고통스럽게 느껴져서 눈물이 다 나더라고요.




























조던과 그라플렉스의 컬래버레이션 시리즈가 출시되는 상상도 해본 적 있나요?
정말 하고 싶네요. 저는 저는 너무 잘 알아요. 협업을 하더라도 제가 농구라는 스포츠를 위한 소재나 기능을 말하긴 어렵겠죠. 넷플릭스 다큐멘터리〈앱스트랙트: 디자인의 미학〉에 나이키 슈즈 디자이너 팅커 햇필드가 나와요. 그는 마이클 조던의 인생 속 사건을 가지고 아이콘을 만들어 레이저 각인을 해요. 저 역시 그런 코드로 접근하고 싶어요. 왜 이 신발을 사랑하게 되었는지 디자인으로 말하고 싶어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는 비교적 조용한 학생이었다고 들었어요. 어떤 그림을 그렸나요?
지금과 비슷해요. 친구들도 같은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때 느낌 그대로라고. 당시에는 칭찬받는 그림은 아니었어요. 원화가가 되고 싶었는데, 방향을 틀어 게임학을 전공하고 3D 그래픽 디자이너의 길을 걸었어요.


게임 회사 일은 어땠어요?
‘파라파 더 래퍼 PaRappa The Rapper’라고 아세요? 제가 중학생 때 하던 건데 정말 귀여운 게임이에요. 힙합 바지에 비니를 쓴 종잇장 같은 캐릭터들이 귀여울 뿐 아니라 노래도 정말 좋아요. 주인공 파라파가 꽃의 요정을 꼬시기 위해 양파 사부한테 호신술을 배우고, 랩으로 삶의 지혜를 배우기도 해요. 리듬에 맞춰 버튼을 누르는 게임인데 디디알, 이지투디제이 Ez2DJ, 펌프의 시초죠. 회사에서는 시키는 작업을 쳐내기 바빴죠. 게임의 줄거리를 기획하고 생명력 있는 캐릭터를 만들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회사 생활은 얼마나 했어요?
스물다섯 살부터 서른다섯 살까지 회사를 다녔어요. 그라비티라는 회사로 이직해서 게임 ‘라그나로크’를 만들었어요. 피겨 아티스트 쿨레인 스튜디오에서 작업을 하기도 했고, 스트리트 브랜드 사쿤과도 2년쯤 일했어요. 4년 전까진 엔터테인먼트 아메바 컬처에서 아트 디렉터로 일했죠. 아티스트로서 아메바 컬처에 합류하는 시기에는 고민이 필요했어요. 디자이너가 필요에 맞는 작업을 한다면 아티스트는 자신의 것을 창조해 그걸로 인정받는 사람이잖아요. ‘그렇다면 아티스트의 역할은 뭘까?’ 하는 질문이 생겼거든요.


답을 찾았나요?
아티스트는 남들이 도전하지 않는 것에 가장 먼저 도전하는 자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도하려니 우선 어떤 아티스트가 되고 싶은지 답을 내려야 했어요. 답은 ‘나다운 아티스트’였어요. 내가 가진 색깔, 생각, 취향, 특기를 샅샅이 파악했어요. 졸업하고 줄곧 회사와 사회의 일원이던 제가 저 자신을 돌아보기 시작한 소중한 시간이었죠.


작업에 대한 영감을 사람들과 나누는 이야기에서 얻는다고 들었어요.
어제도 작업실에서 친구들을 잔뜩 불러 술 마시느라 엉망이었는데, 아침에 와서 후닥닥 치운 거예요.(웃음)




영감의 원천이 되는 자리인데, ‘열한시데렐라’라는 별명이 있다고요.
많게는 일주일에 네댓 번 술자리를 가져요. 신나게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밤 11시에는 칼같이 일어나요. 아내한테 혼나지 않으려고 시작했는데, 꽤 괜찮더라고요. 자정을 넘기지 않고 집에 돌아가면 일에 지장을 주지 않아요. 술 마실 때마다 다음 날이 통째로 날아가면 곤란하잖아요.

두 가지 옵션을 두고 거의 그 안에서 움직여요. 집이 있는 죽전에서 스튜디오가 있는 학동까지 새벽 6시 전에 출근하면 30분 안에 갈 수 있어요. 길에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 새벽 6시 전에 출근해서 오후 4시에 퇴근하거나, 오전 9시 이후에 출근해서 오후 8시에 퇴근하죠. 이런 출퇴근 룰이 가장 좋은 건 맛있는 식당에 10시 반쯤 가서 줄 서지 않고 점심 식사를 할 수 있다는 거예요.


일하는 룰이 그렇다면, 가정의 룰도 있을까요?
음, 음식은 거의 제가 해요. 아내가 음식에 큰 흥미가 없기도 하고.


어떤 음식을 주로 해요?
한식요. 주로 밑반찬이나 찌개를 만들어요. 예전에는 맛있는 음식이 중요했다면, 주부 연차가 좀 쌓인 지금은 냉장고에 어떤 재료가 있는지 파악하고 그걸 빨리 소진하는 게 가장 중요해졌어요.


가정이 주는 안정감과 자유로운 아티스트로서 삶에 간극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
결혼 전에는 내가 아티스트가 될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가까운 주변 사람들만 아는 얘기예요. 아이가 많이 아파요. 태어날 때부터 아팠어요. 회사 월급만으론 병원비와 생활비를 감당할 수 없었고, 매번 이직할 때도 연봉이 많은 이유였어요. 아내는 아이를 돌보고, 저는 어떻게든 돈을 더 벌어야 했어요. 퇴근하고 나면 그림을 그려서 전시하고 팔았어요. 의류 브랜드 협업부터 소규모 회사들의 로고 디자인 작업까지 들어오는 일은 다 했어요. 많을 경우는 직업이 4개일 때도 있었고요. 그러다 자리가 잡힌 것 같아요. 정말 치열했으니까.(웃음)
어디든 훌쩍 떠나 한두 달 작업하고 현지 아티스트들과 사귀고 전시를 여는 상상, 안 해본 건 아니에요. 20대에 가정을 꾸린 제게 가족이 부담인 적도 있었죠. 그런데 질문에 대답하다 보니 지금 나를 회사원이 아닌 아티스트로 살게 한 건 역시 가족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NIKE AIR MAX BW PREMIUM ‘TEAM USA’


가장 처음 간절히 갖고 싶었던 운동화. 당시 우리나라에서 에어맥스보다도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NIKE AIR JORDAN 8 BUGS BUNNY

이 신발을 신은 형들을 보면 멀리 돌아서라도 피했다. 그걸 빼앗았거나 빼앗기지 않을 자신이 있는 사람들이니까.






NIKE AIR JORDAN 1 PINACLE BLACK


가죽과 금장으로 만들어 발매가부터 비싸다. 이 신발을 시작으로 조던1을 연이어 모으기 시작했다.







NIKE AIR JORDAN 11 RETRO CONCORD


마이클 조던이 은퇴했다가 돌아왔을 때 신은 신발. 복귀했을 때 등번호인 45가 프린트되어 있다.







NIKE AIR JORDAN 1 HIGH OG


조던이 NBA에 입단했을 때 신었고, 만화 〈슬램덩크〉 에서 강백호가 또 신어 늘 인기 많은 신발. 언제나 구하기 어렵다.






NIKE AIR SHAKE NDESTRUKT


NBA의 악동 데니스 로드맨이 신어 인기를 얻은 신발.







NIKE AIR JORDAN 6 HARE


마이클 조던이 영화 〈스페이스 잼〉에서 신은 모델.







NIKE AIR FORCE LOW DJ PREMIER


다이나믹 듀오와의 공연 때 DJ 프리미어의 사인을 받고 싶었는데, 당시 신발을 못 구해서 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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