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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드저널 Dec 28. 2020

명대사로 알아보는 우리들의 인생 드라마

눈물이 글썽,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드라마 속 장면, 마음에 새겨진 명대사를 모았습니다. 품고 있는 것만으로도 당신을 따뜻하고 든든하게 해 준 그 말은 무엇이었나요?




<나의 아저씨>, 2018


보고 듣는 것을 좋아해서 드라마, 영화 가리지 않고 많이 보는 내게 〈나의 아저씨〉는 단 하나의 인생 드라마다. 할머니가 달을 보고 싶어 하자 늦은 밤 이지안(아이유 분)은 몸이 불편한 할머니를 카트에 태운다. 가파른 계단을 아슬아슬하게 이동하던 중 직장 상사인 박동훈(이선균 분)에게 도움을 받게 된다. 박동훈을 보고 ‘좋은 사람인 것 같아’라는 할머니의 이야기에 이지안은 차갑게 답한다. ‘잘 사는 사람들은 좋은 사람 되기 쉬워’
듣는 순간, 머릿속에서 퍼즐이 맞춰지는 기분이 들었다. 경제력이 곧 시간과 마음의 여유를 의미하는 이 세상에서, 돈은 결국 좋은 사람이 될 큰 무기가 된다. 씁쓸하고 쓸쓸했다. 다행히 경제력과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정비례하지는 않는다. 다만 살아 보니 조건 없이 베푸는 사람은 좋은 사람으로 남을 때가 많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어 지갑을 열고 내 시간을 쓴다.
우울한 대사와는 별개로 드라마는 해피엔딩이다. 전반적으로 무겁고 슬픈 분위기지만, 보고 나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드라마임이 분명하다. 아직 안 본 사람이라면 꼭 봐줬으면 하고, 이미 본 사람이라면 올겨울 한 번 더 보길.


김형중
브랜드 디렉터로 일하고 있다. 원래도 팟캐스트, 넷플릭스, 유튜브 등 많은 걸 찾아보고 듣는데, 코로나 때문에 그 시간이 더 늘었다. 넷플릭스에서는 더 보고 싶은 게 없을 정도로 닳도록 봤다. 이제는 책을 좀 읽어볼까 생각한다.



<미생>, 2014


올해 나는 새로운 업종으로 이직을 했다. 사람부터 업무까지 적응할 게 산더미 같았다. 경력 이직이라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야 한다는 생각에 조바심도 났다. 무거운 사무실 분위기에 적응이 어려웠던 데다가 업무 실수까지 생기자 회사 생각에 새벽잠을 설칠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 무렵 장그래의 이 대사가 떠올랐다.
위로가 필요했던 때였나 보다. 잠 못 든 밤, 유튜브로 미생 클립 영상을 몇 개 찾아보았다. 그리고 주말이 오자마자 집으로 내려갔다. 엄마가 해주는 집밥을 먹으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다 왔을 뿐인데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회사 생활 속 어려움을 겪는 사회 초년생에게, 매너리즘에 빠진 직장인에게 드라마 미생을 추천하고 싶다. 치열한 조직 사회 속에서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직장인의 삶과 인생을 엿볼 수 있다.



임근배
하루의 마무리로 드라마를 보며 맥주 한 캔 하는 게 낙이다. 넷플릭스와 왓챠를 번갈아 가며 오늘은 뭘 볼지 고민한다.



<골든타임>, 2012


유능한 의사 이민우(이선균 분)은 경쟁이 싫고 스트레스가 무서운 나머지, 스스로를 욕심 없는 사람이라 착각하며 명의를 빌려주거나 의학 영화 번역 자문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이렇게 현실에 타협해 그럭저럭 사는 그의 앞에 또 다른 의사 강재인(황정음 분)이 나타난다. 재인은 민우에게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함께 일하자고 설득하며 이런 대사를 던진다.
이 드라마를 봤을 땐 대학교 2학년 끝 무렵이었다. 그때 나는 욕심이 많았다 (지금도 많다). 끝이 없었고 만족할 줄 몰랐으며, 언제나 지금보다 나은 미래를 그렸다. 그래서 현재를 살지 못했다. 늘 고단했고, 자신과의 싸움에 매몰되어 있었으며, 혼자서만 치열했다. 그래서였을까, 저 대사가 뇌리에 박혔다. 다들 나만큼의 욕심은 가지고 사는구나, 이 싸움은 나 혼자만 하는 게 아니구나, 하며 위로를 받았다. 가끔은 삶이 너무 평탄하거나 지난해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이 대사를 떠올린다. 나는 죽고 싶은 게 아니라, 죽을 만큼 잘 살고 싶어 이렇게 힘든 거라고, 삶의 의지가 그만큼 강한 거라고 다독인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의학 드라마를 보고 싶은 사람이나 억지 로맨스 없는 K-드라마를 보고 싶은 사람에게 이 드라마를 추천한다.


박진명
요즘은 아이돌 덕질이 메인이지만, 재미있다는 건 가리지 않고 다 보는 편이다. 특히 유치하고 촌스러운 걸 좋아한다. 여행 매체 에디터로 일하고 있다.



<태릉선수촌>, 2005


국가대표 유도 선수 홍민기(이민기 분)는 선수촌 안에서 여러 트러블을 경험한다. 그러나 17연승을 기록하며 승승장구하던 그는 잘난 맛에 취해 주변 사람들이 겪는 문제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다.
나 역시 분위기에 취해 주변 사람이 처한 상황을 보지 못한 때가 있었다. 주변의 도움과 운의 몫까지 모조리 내 성공으로 여겼다. 뒤늦게 나의 능력보다 남이 보태준 힘이 더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알고 부끄럽고 미안했다. 이 대사는 당시 내 마음을 잘 정리해준다. 평안한 한 사람의 일상은 많은 사람의 배려로 이뤄져 있다는 것을 이제는 고마워할 줄 알게 되었다. 드라마 <태릉선수촌>은 노력과 운에 관한 이야기를 가볍게 풀어낸다. ‘왜 노력해도 안 되는 걸까?’, ‘이대로 계속하면 뭐라도 되긴 할까?’라는 불안감을 가진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등장하는 캐릭터의 성향이 각자 독특하고 입체적이라 갈수록 흥미진진하다. 보면서 나는 어떤 스타일의 사람인지 가늠해보는 재미도 있다.


임호운
광물을 수출입 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일을 마치면 스포츠 게임을 하거나, 퍼즐을 맞추거나, 드라마를 본다. 코로나 사태 이전에도, 지금도 한결같은 집돌이다.



<괜찮아 사랑이야>, 2014


남에게는 ‘괜찮냐?’ 안부도 묻고, 잘 자란 인사를 수도 없이 했지만, 정작 저 자신에게는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며 장재열(조인성 분)은 라디오 방송 클로징 멘트를 던진다. 이 대사를 듣고서 내가 나에게 괜찮냐고 물어봤던 횟수를 세어 보았다. 내게는 그런 경험이 없었다. 남에게는 수도 없이 진심을 담아 물어봤던 질문이면서 정작 나에게는 한 번도 다정히 얘기해주지 않았던 것이다.
이 장면이 유난히 다시 생각나는 때가 있다. 남들은 다 괜찮다고 하는 어떤 일이 정작 나한테는 별로 와 닿지 않을 때다. 타인의 의견에 휩쓸리기 전에 내 의견에 먼저 귀를 기울이자고 생각을 다잡는다.
매 시즌 새로운 명작이 쏟아져 나오지만, 그래도 이 드라마는 꼭 한 번 봤으면 좋겠다. 두 번 보면 더 좋다. 관전 포인트를 집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인물 설정, 스토리 라인, 화면의 색감까지 모두 정말 예쁘다. 정신 질환을 가진 주인공과 그 주변 인물들이 서로의 그 아픔을 보듬고 치유하는 과정을 보고 느낄 수 있는 드라마다. 요즘처럼 사람이 그립고 마음이 힘든 시국에 더욱 추천하고 싶어지는 드라마다. 나 자신을 자주 잊는 현대인에게, 위로의 힘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김형준
유튜브나 넷플릭스 등 영상 콘텐츠는 가리지 않고 많이 본다. 만 30세의 평범한 직장인이다.



<수사반장>, 1971


드라마 마지막 회, 수사팀 사무실을 떠나게 된 박 반장(최불암 분)은 동료들과 악수를 한다. 그러다 문득 정면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며 이런 이야기를 한다. 건물이 높고 화려해질수록 어두운 그림자는 함께 길어진다고.  이 대사가 기억에 남았던 건 극 안에서 갑자기 극 밖의 나에게 말을 건네는 형식 때문이었다. 최근에 〈수사반장〉을 다시 보는데, 반장님의 대사를 듣고 ‘그렇죠, 빌딩이 높아지면 그림자도 길어지죠, 맞아요.’라며 공감하는 나를 보았다. 작든 크든 욕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체감해 온 다음이라 더 와닿았던 게 아닐까.
그러고 보면 이 드라마에는 명대사랄 것이 참 없다. 범인 잡고 사건 해결하기 바빠 명대사를 읊조릴 시간이 없었을지 모른다. 요즘 감성으로 보면 구질구질하고 질퍽해 보일 수는 있지만, 약간 헐렁하고, 촌스럽고, 낯선 재미가 있다. 세련되고 꽉 짜 맞춘 스토리를 자랑하는 미스터리 스릴러물보다는 조르주 심농(Georges Simenon)의 메그레 시리즈 같은 걸 더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드라마를 다시 찾아봐도 좋겠다.


박진홍
기획자이자 소설가. 하드보일드 소설과 해외 인디 록 음악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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