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중심에서 다카야마를 외치다
아직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일본의 한 마을이 있다. 아직 내 주변에는 이 곳을 여행한 사람이 없다. 가까운 일본이지만 새롭게 접한 이 마을의 여행은 일본 소도시 여행의 매력에 흠뻑 취하게 만들었다. 항상 일본 여행을 간다고 하면 크고 화려한 곳을 많이 여행했었다. 도쿄, 오사카, 교토 등 누가 들어도 대도시라는 간판을 가지고 있을 만큼 먹거리와 볼거리 그리고 쇼핑까지 모든 걸 즐길 수 있는 도시에서 작은 마을로 여행을 가는 것은 더욱더 다양한 것을 보고 느끼고 싶어서였다. 그렇게 나는 다카야마로 향했다.
산과 강 아래 자연이 하나 되는 마을
한국에서 비행기로는 고작 1시간 30분 떨어져 있는 나고야 공항에 도착했지만, 나고야에서 이 곳까지 걸리는 시간은 3시 반 30분 정도가 걸렸다. 공항에서 전철을 타고 역에서는 다시 기차로 열차를 갈아타 끝이 없는 길을 계속 지나갔다. 점점 산으로 들어가는 기차 안에서 중간에 집들이 보였는데 산속에 사는 삶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끝없이 펼쳐진 산을 넋을 놓고 구경하고 있을 때 안내방송이 들렸다. 드디어 도착했다.
첫날은 이미 5시를 넘어가는 시간이라서 잠깐 상점이나 가볼까 생각했지만, 이 곳의 대부분의 매장들은 5시면 문을 닫는다. 밤에는 화려한 불빛을 자랑하는 도시와는 다르게 저녁에 가족과 소소한 저녁과 이야기를 나누며 하루를 마친다. 삶에 치이지 않으며 욕망을 쫓지 않으며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는 삶인 거 같았다.
일본 3대 아침 시장의 상쾌함
다카야마가 유명한 이유 중 첫 번째는 아침 시장이다. 정확한 명칭은 미야가와 아침 시장인데, 미야가와라는 뜻이 시장 점포들 앞에 강이 흐르고 있는데 강의 이름을 딴 시장이다. 오전 7시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발걸음을 옮겼다. 내가 가고 싶은 모든 곳을 두발로 걸어 다닐 수 있다는 게 너무나도 좋았다.
아침 시장의 모습은 내가 예정했던 모습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역의 싱싱한 식재료를 판매하면서 파는 사람 사는 사람 모두 서로 잘 알고 있듯이 웃으면 인사를 건네고 이야기한다. 마을이 크지 않다 보니 서로서로를 아는 모습이 지켜보는 입장에서도 참 정겹게 느껴졌다. 아침 시장에서 간단하게 먹었던 지역의 먹거리들은 건강함을 가득 앉고 있는 한 상 가득 차린 아침밥 같았다.
다카야마를 여행하기 위해선 단 2일이란 시간이면 충분하다. 그것도 모든 것을 샅샅이 살펴보았을 때 2일이다. 지도를 보던 중 마을 윗 쪽에 절들이 10개 모여있는 곳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왜 이렇게 절이 많지 생각해서 호기심 하나로 그곳을 가보기로 했다. 길을 걷고 언덕을 넘으면 첫 번째 절과 마주하게 된다. 나무로 만들어진 절의 모습은 고풍스러운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나무로 만들어진 절은 세월이 흘러 색은 변했지만 이 곳만이 가지고 있는 분위기가 있었다.
한 곳 한 곳을 스쳐 지나가듯 보면서, 왜 이렇게 많은 절이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절 위에서 내려다보는 마을의 풍경은 한낮의 수수한 풍경과도 같았다. 마음이 참 편해진다.
에도시대의 다카야마를 관리하던 사람의 주택으로 1692년에 지어진 다카야마 진야. 처음에는 주택으로 이용되었지만 이후에는 관광서로 사용되었다는 진야는 꼭 숨바꼭질을 위해 만들어진 주택 같았다. 수많은 방과 끝이 없는 복도 가운데 혼자 다니면 길을 잃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300년이 넘는 세월을 보낸 진야에서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진한 타타미 향기가 났다. 이 향기는 이 곳을 떠날 때까지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오후에 따뜻한 햇살이 들어오는 마루에 걸터앉아 비타민D를 한 껏 흡수하였다. 나무는 바람결에 흔들리고, 저 멀리 처마 밑에 달려있던 풍경에서는 청아한 소리가 들려왔다. 참으로 따뜻한 시간이다.
붉은빛의 랜드마크
마을의 가운데는 작은 미야가와라는 강이 있다. 이 강 위에는 다리들이 여러 개 놓여 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들어오는 다리가 하나 있다. 형광 빨강이라고 해야 할까, 붉은빛을 한 아름 앉고 있는 다리는 멀리서 보아도 가장 화려한 빛을 내고 있었다. 봄에는 다리 주변에 벚꽃이 만개하여 장관이라고 하는데 그 풍경을 언젠간 꼭 보고 싶다. 가을날의 다카아먀는 아직 여름의 기운을 물씬 앉고 있었다.
나의 마을을 지켜줘
다카야마에서 가장 유명한 곳을 뽑으라면 누구나 옛 거리를 말할 것이다. 에도시대에 지어진 건축물이 그대로 남아있는 이 골목은 관광객들로 인산인해 하다. 지금의 유명 명소가 되기까지 다카야마는 아픔을 가지고 있었다. 이 지역은 산악지대로 누가 숨기기라도 한 듯, 산으로 꽁꽁 감겨있는 마을이다. 그렇다 보니 일본의 고속성장 당시 지역의 발전마저 점점 늦혀지고 있었다. 젊은 사람들은 한 명 두 명 모두 더 큰 도심으로 나갔고, 마을에는 노인만 남겨되었다고 한다. 이대로 두면 마을이 없어질 것만 같은 불안함에 주민들은 다른 지역에 발전에 굴하지 않고 예전 모습을 그대로 지키며 역사와 함께 마을을 지켜내었다. 지금은 학생들의 수학여행지로, 외국인들의 관광지로 유명하지만 지금까지 되기까지는 주민들의 정성 어린 땀과 노력이 있었다.
옛 거리는 골목길 사이로 양쪽에는 고택들이 줄지어 서있다. 대부분의 건물들은 실제로 살고 있지는 않고, 상점과 카페, 박물관으로 운영된다. 거리를 걷고 있다 보면 꼭 타임머신을 타고 온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아마 누군가 기모노를 입고 이 곳을 지나갔다면 더욱더 큰 착각에 빠졌을지도 모르겠다.
천상의 맛! 히다규
아마 몇 년후에 다카야마에서 가장 기억나는 게 뭐야? 누군가가 이렇게 물어본다면 난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당연히 '히다규지'라고 말할 것이다. 히다규는 다카야마 지방의 소고기로 일본 3대 와규에 들 정도로 유명한 소고기 이름이다. 꼭 횡성한우처럼 말이다. 2일 동안 이 지방의 모든 히다규의 다 섭렵하겠다는 마음 하나로 대부분의 음식을 다 먹은 거 같다.
히다규의 맛을 표현하자면 입에 넣는 순간 사르르륵 녹는 동시에, 그 맛이 입안에 가득 담겨있어 입 맛을 다시고 또 다셔도 계속 생각이 나고, 소고기의 향이 뇌까지 짜릿하게 만드는 천상의 맛이다. 히다규가 담겨있던 수많은 요리를 먹어보았지만 가장 최고로 생각되는 건 히다규 초밥이다. 딱 한 점 밖에 먹어보지 않았지만 전율이 오르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던 첫 번째 음식이다.
마음이 평온해지는 거리를 걸으며, 흐르는 강물을 한 없이 바라보며, 스치는 나뭇잎의 바람을 느끼며 콧 속으로 시원한 공기를 한 껏 들어마셔보았다. 하루 종일 특별한 일은 없었다. 그렇지만 내가 이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이 내 인생의 특별한 일이다. 행복이란 한 단어로 이야기하기엔 너무나도 부족하다. 때로는 말로 어떻게 표현할지 모르겠는 간질간질한 마음이 아닐까? 고로 난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