낫보링 글쓰기 클럽
나는 꽤나 억척스러운 편이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들판에 퍼져있는 잡초같은, 빙하기를 버틴 바퀴벌레같은(…) 그런 바이브를 갖고 있다. 이건 나의 특징이지 꼭 장점은 아닐테다. 소개팅을 주선하면서 '그 여자 참 억척스러워'라는 말이 아마 칭찬으로 들리진 않을 것이다.
이건 엄마에게서 물려받은 성향이다. 엄마는 정말 부끄러움 없이 원하는 걸 요청한다. 중학교 때 시험을 보러 서울에 올라왔을 때가 생각난다. 지하철역에서 나와 버스를 타고 이동하려는 상황이었다. 나는 먼저 버스에 올라타서 자리잡고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가 요금을 내려는데 동전이 애매하게 부족한 상황이었나보다. 그때 엄마는 버스에 탄 모든 사람들이 다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 누구 200원 있으신 분 없나요?”
그 뒤의 기억은 흐릿하지만, 엄마가 부끄럼 없는 까랑까랑한 목소리를 내며 요금통 옆에 서있는 이미지가 아직도 뇌리에 선명하다.
나는 스스럼 없이 하는 일들이 사람들이 많이들 껄그러워 한다는 걸 느끼며 살아왔다. 소소한 예시들을 공유해보자면, 일단 혼밥을 매우 잘 한다. 요새는 유행이라지만, 전혀 트렌드가 아니었던 10년 전 대학생 시절부터 혼밥을 많이 했다. 삼겹살 집에 혼자가서 최소주문 2인분을 시켜먹기도 한다.
엄마처럼 모르는 사람들에게 죄송한 요청을 하는 것도 잘한다. 서울랜드에서 짐을 보관하려는데 1000원 지폐을 넣어야하는 기계였다. 10분 거리에 편의점에 ATM기 있을지도 모르지만, 옆에 계신분에게 현금이 많은게 보인다. 바로 물어봤다. "계좌이체로 드릴 테니 혹시 1000원 현금을 바꿔주실 수 있을까요?" 별 대답도 없이 나에게 그냥 현금만 주고 가셨다. 옆에 있던 친구들은 완전 이상한 사람 보듯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업무에서도 이런 면이 드러난다. 많이들 그만둘 법한 상황에서도 그냥 버틴다. 지금 회사 입사 후 3개월 수습기간 동안 정말 박한 평가를 받았다. 직급이 낮아지는 그런 평가였다. 상황탓을 하기도 좋았고, 그만두는 것도 자연스러운 상황이었다. 일기장에는 속상함이 생생하게 적혀있었다. 그치만 그냥 했다. 오히려 더 증명해보이고 싶었다. 이 팀 사람들의 기준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했고, 객관적으로 내게 부족한 점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몇 달 뒤 리더 분이 한 오뚜기인형을 생일선물로 줬다. 넘어져도 일어나는 모습이 비슷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나는 그저 안 일어나고는 버틸 수가 없었을 뿐이었다.
다른 면으로는 스마트함이 떨어지게 일하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과정이 매끄럽지 않아 부끄러워도 버틸 수 있으니까, 결국 결과만 만들어내면 되니까. 효율은 쉽게 포기한다. 더 영리하게 할법도 한데 그냥 엉덩이로 밀어붙인다. 그래서 야근도 많이 한다. 3시간 야근해도 진척이 별로 없을 때가 많다. 잘 모르겠고 일단 해보자는 식이다. 다른 일정에도 차질이 생긴다. 지각하기 일쑤다.
그렇지만 결국 이 억척스러움으로 살아갈 것 같다. 'Grit'이란 말이 언제부턴가 유행한다. 실패해도 계속 도전하는 끈기를 뜻한다. 내 억척스러움이 잘 다듬어진다면, 멀리서 보때 Grit으로 보이지 않을까. 수 백가지의 안 될 이유속에서 1가지 가능성을 보며 달려나갈 힘이 되어주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