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어디서나 원할 때만 빌려 쓰는 소프트웨어, SaaS
지난 10년을 돌이켜보면 참 많은 변화가 있었다. 2016년까지 쓰던 노트북에는 CD를 넣고 재생할 수 있었다. 어학공부를 할 때 꽤 자주 사용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 뒤에 쓴 맥북에는 이어폰과 충전기 말고는 꽂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는데. 신기하게도 그 뒤로 CD는 사용할 일이 또한 전혀 없었다. USB도 마찬가지다. icloud나 구글 드라이브 같은 클라우드 스토리지 서비스들을 더 많이 사용하게 되면서, 올해들어서는 한 번도 쓰지 않은 것 같다. 이렇게 점점 이동식 저장장치를 덜 사용하게 된 배경에는 SaaS 서비스들의 성장이 있다.
Software as a Service의 약자인 SaaS는 의 '서비스 형태'의 소프트웨어를 의미한다. 전통적으로 문서 편집, 재무 관리 등의 소프트웨어 제품을 구매한다고 하면 아예 라이선스를 구매하거나 외주 업체 맡겨 직접 개발을 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요새는 매당 일정 금액의 사용료를 내고, 클라우드 기반 서비스들을 활용한다.
대표적인 소프트웨어 제품인 파워포인트, 엑셀과 같은 MS 오피스 제품들은 기존에 CD 형태로 구워서 팔았었다. (추억추억^^) 몇 년 전 출시한 MS 365라는 구독 기반 상품은, 결제만 하면 어느 디바이스에서든, 아무 때나, 원하는 기간 동안만 제품을 다운로드하고 작업할 수 있다. 대표적인 SaaS 형태이다.
SaaS 서비스들의 성장세가 어떤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SaaS를 사용함으로써 얻는 전략적인 강점들은 무엇인지 알아보자.
비단 나만 SaaS 시장을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닌듯하다. 글로벌 리서치 회사 가트너의 리포트에 따르면 2020년 전 세계 클라우드 소트웨어 시장 규모는 301조 원 규모였는데, 이중 38%인 115조가 SaaS가 형태였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올해도 18%가 넘는 성장률을 기록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우리나라에서도 큰 흐름이 바뀌기 시작했다. SaaS 서비스들은 촘촘한 영업망과 막대한 고객관리로 시장을 장악한 대기업 중심의 소프트웨어 시장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 이제 제대로 된 서비스를 만들면 규모가 작은 스타트업도 클라우드를 통해 얼마든지 고객을 유치하고 매출을 올릴 수 있다. 최근 채팅 서비스 솔루션 샌드버드가 국내 B2B SaaS 최초로 기업가치 1조원이 넘는 유니콘이 된 것이 이를 증명한다.
나는 SaaS가 향후 소프트웨어 제품의 일반화된 형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먼저 그 시작점에 대해 얘기해보자.
세일즈 포스의 CEO 베니오프는 오라클에서 일하던 중, 하와이로 떠난 휴가에서 오두막을 빌려 생각을 가다듬다가 한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오두막이나 숙소를 빌려 쓰듯 기업들이 인터넷을 통해 소프트웨어나 데이터를 빌려 쓰는 시스템을 갖추면 어떨까. 쉽게 말하면 기업용 소프트웨어를 팔지 않고 빌려줘 한 달 사용료를 받는 개념이다. 1999년 그렇게 SaaS 형태의 서비스를 새롭게 만들어낸 세일즈포스가 설립되었다.
당시 베니오프는 'No Software'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기업들은 더 이상 복잡하고 비싼 기업용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웹에서 쉽게 빌려 쓰는 형태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고객관리 프로그램을 SaaS 형태로 만들어 판매하는 세일즈포스는 현재 전통적인 기업용 소프트웨어 제작 회사 오라클의 시가총액을 넘어섰다.
김난도 교수는 2021년의 10대 트렌드 중 하나로 "거침없이 피보팅"을 꼽았다. 코로나 이후 빠르게 변하는 시장에서 코어를 지키며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들을 시도해야 한다는 거다. 피보팅은 원래 스타트업에서 중요한 개념이었지만,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대기업도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되어 버렸다.
빠른 피보팅을 하기 위해서는 핵심 기술에만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서비스의 타깃 고객, 시장, 서비스 자체가 언제든 바뀔 수 있는 상황에서 고객 관리 소프트웨어를, 광고 관리 프로그램을, 인사관리 시스템을 자체 구축하는 데에 제한된 리소스를 쏟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SaaS 제품이 도입의 장점을 3가지로 요약해볼 수 있다.
1. 비용 효율적인 툴 도입 : 클라우즈 기반 제품은 인터넷 연결만 되면 바로 접속해서 사용할 수 있다. 자체 구축을 함으로써 발생하는 설치과 유지보수에의 높은 비용이 필요하지 않다.
2. 주기적인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 업데이트 또한 인터넷에 연결되면 바로 진행할 수 있다. 제품 개선과 업데이트에의 부담이 클라이언트가 아닌 SaaS 회사에게로 옮겨지게 되는 거다.
3. 확장성 : 필요한 만큼만 사용하고, 유연하게 사용량을 늘릴 수 있다. 서버를 자체 구축 하기보다는 아마존 클라우드 서비스 (AWS)를 사용하는 대표적인 이유기도 하다. 클라우드 기반이기 때문에 해외로 서비스를 확장할 때에도 그대로 사용하기가 용이하다.
대학 시절 배운 '비교우위'라는 개념이 아직도 뇌리에 강하게 남아있다. 경제학에서는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할 때 기회비용이 더 적은 쪽을 ‘비교우위가 있다’고 말한다.
다 잘하는 나라는 더 잘하는 일에, 다 못하는 나라는 덜 못하는 일에 집중할 때 전체적인 생산량이 늘어난다는 이론이다. 다 못하는 나라 입장에서는 절대적으로는 모두가 열위이지만, 비교적으로 우위에 있는 역할이 있을 거다. 각각 상대적으로 더 잘하는 일에 집중했을 때 전체적인 생산량이 증가된다는 것이 '비교우위' 이론의 골자다.
대기업들은 스타트업에 비해 절대 우위에 있다. 서비스하는 제품을 만들면서도 관리용 프로그램들도 충분히 자체 제작해서 사용할 수 있다. 다만 관리용 프로그램을 만듦으로써 핵심 서비스를 만들지 못함으로써 생기는 기회비용 역시 더 크다.
이때 SaaS 툴을 만드는 스타트업은 해당 관리용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데에 있어서 비교우위에 있다. 인사관리에 있어서는, 채팅상담에 있어서는, 협업 툴에 있어서는 제일 많이 고민했기 때문에 최선의 사용성으로 제공할 수 있다. 그렇게 대기업은 본인의 핵심 비즈니스에 집중할 수 있고, SaaS 업체는 클라우드 기반으로 국내외의 고객사들을 확보함으로써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 다윗이 서서히 골리앗을 이기는 합리적인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클라우드 기술의 보안이 강화되고 안정성이 더 높아지면서 점차 더 많은 소프트웨어 서비스들이 SaaS화 될 것이다.
최근 개발자 연봉이 미친 듯이 높아지면서, 개발자 없이도 소프트웨어를 만들 수 있는 No-coding이 각광받고 있다. 개발자 없이도 앱이나 웹사이트를 만들거나 개발 인프라를 구축하게 해주는 SaaS 서비스들을 활용하는 것이다. 이제까지는 고객관리, 인사관리와 같은 관리용 프로그램 위주로 SaaS 서비스가 활용되었다면 점차 핵심 서비스를 만드는 데 있어서도 SaaS 형태의 소프트웨어가 일반화될 거라고 생각한다.
다음 글에서는 더 본격적으로 SaaS 비즈니스의 시장성과 수익 모델에 대한 얘기를 해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