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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번트 Jun 28. 2023

30대 중반 남자가 본 엘리멘탈 리뷰

"애니메이션은 애들이나 보는 거야" 라는 고정관념을 깨 준 픽사(Pixar)에 경의를 표하지만, 여전히 애니메이션하면 종국에는 진부한 교훈, 예컨대 사랑, 가족애, 열정과 헌신, 우정 등으로 종결되는 훈훈한 마무리 전개에 "역시 픽사도 어쩔 수 없구나" 하는 아쉬움이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이번에 새로 나온 픽사 애니메이션 '엘리멘탈'은 진부함의 클리쉐를 극복하는 데 성공했을까? 아니면 지금껏 픽사가 시도하지 않은 전혀 새로운 주제, 완전히 색다른 스토리텔링으로 새로운 흥행가도를 달리는 데 전환점을 가져 올 대작이 될 수 있을까? 여러 의문점이 들어 30대 중반 남자인 내가 직접 영화관에 나섰다.


정답은? ... 대작이다.




1. 제목 '엘리멘탈'의 의미

Elemental은 Element+al 이 결합된 영단어다. Element는 원소, 기본, 본질을 뜻한다.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표면적인 모든 것들의 가장 근본적 원소를 상징한다. 물과 불, 공기, 흙과 같은 4대 원소를 흔히 엘리먼트라 부른다. 그 중 영화의 주인공은 불과 물, 엠버와 웨이드다.



2. 불이 여자, 물이 남자인 이유

보통의 영화, 동화에는 불이 남자, 물이 여자로 의인화되어 나타나는데, 이 영화는 정반대다. 불(엠버)가 여자요, 물(웨이드)가 남자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가게를 물려 받은 엠버는 철딱서니 없는 손님, 예상치 못한 상황에 마주하자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분노를 터뜨린다. 게다가 보통 부모님의 가게는 아들이 물려받는 모습으로 종종 그려지지만, 엘리멘탈에서는 딸이 아버지의 사명을 이어 가게를 지키려는 몸부림을 친다.


반면 남자인 웨이드(물)는 그런 불같은 엠버를 어떤 상황에서도 유연하게 받아준다. 가게가 영업정지 당할 것 같다며 막아달라는 엠버의 부탁에, 도시 상하수도 담당 공무원인 웨이드는 단호하게 거절하는 대신 영업정지를 면할 수 있는 대안을 찾아준다. 가게를 물려받기 싫지만 아버지가 평생을 바쳐 온 곳을 지키고자 자신의 꿈을 포기하는 엠버에게, 스스로 아버지에게 자신의 꿈을 말할 수 있는 용기과 에너지를 뒤에서 묵묵히 지원하고 지켜본다. 꿈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엠버에게, 자신의 가족들을 소개하고 새로운 세계,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웨이드의 큰 공로였다.


영화는 남자는 강인함, 여자는 부드러움이라는 진부함을 탈피하고, 오히려 정반대의 성적 이미지를 캐릭터에 대입하여, 시대의 여성상의 변화, 여성과 남성을 초월한 말 그대로 인간의 엘리멘트, 바로 '성격과 기질'에 초점을 두면서, 불과 물, 분노와 진정, 끓어오름과 가라앉음의 양극성이 우리네 삶에서 어떻게 구사되고 드러나는지에 초점을 맞추며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3. 연인이 아닌 '부부 이야기'

일면식도 없는 남녀가 만나 사랑을 하게 되는 러브 스토리 영화라는 점에서, 많은 연인들에게 애틋함을 주는 영화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제 만 3년차 신혼(?)부부에 접어드는 나에게, 이 영화는 연인 이야기라기 보다 오히려 '부부 이야기'처럼 몰입감을 극대화하는 데 충분했다.


우리 둘은 겉으로 보기엔 불과 불인데, 사실 속 깊숙이 들어가 보면 내 와이프는 '불', 나는 '물'이다. 와이프는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고, 나는 상대방의 마음, 주변의 상황이 내 기분, 생각보다 앞서는 성향이 강하다. 좋게 말하면 주변을 챙기는 것이고, 안 좋게 말하면 눈치를 많이 보는 것이다.


때론 주변 신경쓰지 않고 '나'가 일순위가 되는 와이프의 모습이 이해가 안 될 때도 있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가장 소중히 여기는 그녀의 일관성 있는 모습에 부럽기도, 멋있기도 했다. 영화가 좋았던 점은 불(엠버)이 사회화 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분노를 터뜨리고 또 일을 저지르는 모습을 유지했다는 점이다. 대신 본인이 저지른 일에 대해서는 어떻게든 해결책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 에너지에, 또 엠버만의 에너지가 문제 해결의 근원이 되면서 또다른 전개를 펼쳐나가는 영화의 스토리도 인상적이다.


와이프의 행동, 또는 남편의 생각이 이해가 되지 않아 궁금한 신혼부부 또는 중장년층 부부라면, 반드시 엘리멘탈을 보기를 권한다. 누가 불이고 누가 물인지는 각각의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적어도 둘 중 한명은 나 자신이 될 것이므로, 충분히 감정이입하여 각자의 부부 생활을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리라 생각한다.




피터 송 감독, 한국인 감독이라고 하기엔 한국에서 산 적이 없는 '코리안 아메리칸'이다. 그러나 이 사람이 '한국인'이구나...하는 것을 느끼게 하는 장면이 영화 속에서 연출된다.


그리고 그 어떤 영화 장면보다 가슴 뜨거운 장면이기도 하다. 난 아직도 그 장면을 잊지 못한다. 그래서 한 번 더 이 영화를 보러 갈 생각이다.


아직 영화를 보지 못한 분들이 계시다면, 이 장면 하나를 반드시 놓치지 말고 보시길 바란다. 그리고 그 장면이 어떤 것을 말하는 지는 영화를 본 사람만이 확인할 수 있다.


내 평점은...?

9.5 / 10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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