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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번트 Aug 19. 2023

30대 중반 남자가 본 '콘크리트 유토피아' 리뷰

이건 영화가 아니라, 현실이다



대한민국 '아파트'에 관한 이야기

한국에서 아파트는 곧 '생존'을 말한다. 내 주거, 잠자리를 해결해 주는 차원의 '생존'이기도 하고, 때로는 집값의 무한한 상승으로 수십년 치 모은 월급보다도 더 높은 시세 차익을 가져다 주는 '생존'의 수단이기도 하다. 영화는 그런 한국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기다 못해, '애지중지' 하는 대한민국의 모든 아파트가 무너진 상황을 가정하며 시작된다. 오직 단 한 동의 아파트만 남겨둔 채...





감독 엄태화, 배우 이병헌 조합이 신선한 이유

엄태화 감독. 낯설다. 솔직히 처음 들어본다. 찾아보니 엄태구 배우의 형이라는 것 외에, 특별한 필모그래피는 없다. 그런데 영화의 어두침침한 분위기, 으슬으슬하다 못해 살벌하기 까지 한 영화의 중후한 무게감은, 분명 어디서 많이 봤던 연출법이자 감독 자신도 모르게 나온 그만의 감각이었을 것이다. 좀 더 찾아보았다. ... '박찬욱 감독의 연출부 출신으로...' 아하! 그거였구나.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에서 느꼈던 그 어두움의 느낌, 그것이 연출부 경험에서 살아있었던 것이리라. 


물론 영화 전문가들 입장에서 보는 '필모'는 많은 감독일지 모르지만, 나처럼 취미로 영화를 보는 사람에게는 생소한 감독. 그런 감독과 작업을 시작한 배우 이병헌. 역시 이병헌은 감독보다 영화의 스토리, 그리고 본인이 맡을 배역에 대한 흥미를 가장 우선순위로 두는 듯 하다. <그것만이 내세상>, <싱글라이더> 처럼 비유명 감독과 작업했음에도 불구하고 웬만한 작품들이 모두 흥행을 이뤘던 건, 우수한 감독, 우수한 배우가 모여서가 아닌, 배우가 가장 흥미를 느끼고 몰입할 수 있는 영화를 택했다는 그 시작점, 강한 동기부여에 있었을 테니까.


엄태화의 어두움은 이병헌을 만나, 그저 어두움 그 자체로 남지 않을 수 있었다. 이병헌이라는 배우는 어두움을 더 어둡게, 어두움 속에서도 밝음을 표현할 줄 아는 배우이기에. 그렇게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아파트를 이야기하지만, 아파트 속에 사는 사람들을 돋보이게 표현할 수 있었다. 1동 밖에 남지 않은 아파트 주민들의 비관, 비애를 더 어둡고, 더 처절하게 느끼도록 만들었다. 아파트 밖으로 식량을 구하러 떠났다가, 주민들이 함께 먹을 식량을 발견해 돌아온 이병헌의 웃음, 입주민의 선봉장이 되어 파티를 열 때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르는 이병헌의 노래, 그 모든 것들이 오직 배우 이병헌이었기에 가능했던 것들이니까.





영화는 무너진 아파트가 아니라 '인간의 무너짐'을 이야기한다

아파트가 무너지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 무너진다. 삶이 무너진 인간은, 곧 인간성과 사회성을 잃는다. 학습된 사회성을 잃은 인간은 곧 '동물,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원시적 인간의 출발점으로 회귀한다. 정글에서 동물의 언어를 배우는 모글리와 같은 인간이 되고, 인간이 인간을 죽이며 상대가 죽어야 내가 사는 일사일생의 서바이벌 세계가 펼쳐진다.


오늘의 '아파트'도 이미 무너진 건 아닐까?

뭐 영화처럼 드라마틱하게 아파트가 다 무너진 건 아닐테지만, 아니, 오히려 더 많은 아파트가 빽빽하게 들어서고 있지만, 오세훈 시장이 만든 복합용도 허용, 용적률 상향과 같은 부동산 정책의 변화로 서울은 '더 높은 서울', '더 빽빽한 서울'이 되어가고 있지만, 결국 지금의 아파트로 가득찬 이 한국, 서울이라는 세상은 속으로는 무너진 아파트가 아닐까. 바로 앞집 사람과의 소통은 커녕, 윗집 층간소음으로 서로를 비난하고 멸시하며, 심지어는 칼부림까지 일어나는 이 세상에서, 무슨 이웃주민과의 화목, 아파트 주민간의 단합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내 집 근처에 조그마한 혐오 시설 하나가 들어오면 집 값 떨어진다며 아우성 치는 사람들, 내 집 집값 떨어지는 부동산 정책이 펼쳐질 때면 현수막을 내걸어 '우리 집은 왜 재건축 안해주냐', '투기지역 해제하라' 온갖 '내 목소리, 내 집값' 만 외치는 이 아파트 세상의 대한민국은, 이미 무너진 아파트가 아니면 무엇일까.





영화 제목이 '유토피아'인 이유

콘크리트와 유토피아를 하나로 합쳐놓은 건, 콘크리트로 가득찬 아파트 세상에서는 누구나 다 원하는 이상적인 삶을 구현할 수 있는 '유토피아'란 존재하지 않음을 뜻한다. 아파트는 애초에 콘크리트의 벽과 벽들이 수평, 수직으로 서로를 막고 있는 구조이기에, 소통은 커녕 소통을 막고 있는 수단이자 시설이다. 아파트는 법적으로도 집합건물법 상 '구분소유자'들이 1개의 건물을 나눠서 소유하고 있는 구조 아니던가. 소유와 나눔은 애초에 공존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감독과 극본을 쓴 사람은 애초에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지...


생각이 많아지는 영화다. 그리고 한계를 느끼게 하는 영화다. 그러나 볼 만하다. 영화는 온갖 CG기술을 동원해 구현한 가상의 공간이었지만, 그 어떤 영화보다 가장 현실적인 이야기를 다루었다. 나, 우리의 삶을 '아파트'라는 공간을 통해 보여준 영화이기에, 꼭 한 번 보기를 강력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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