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면 꽤 특별한, 보통의 작고 예쁜 체코 도시
체코 북서부 도시
리토메르지체(Litoměřice)는
2020년 1월 체코 유대인 수용소 마을
테레진(Terezín)에 갔다가,
내가 나라는,
그냥 그 존재 자체의 이유로
억울하게 박해 박은 유대인에
너무 감정이입을 했는지,
마음이 너무 무겁고 우울하고 텁텁하고 황량해서,
그 거친 마음으로
프라하로 그냥 돌아오기가 싫길래,
그 비극적 역사에 잠긴 마음과 눈을 씻기 위해서,
그와 함께 스멀스멀 삐쳐 나온
현재적 차별, 혐오, 불공정에 받은
개인적, 사회적 상처의 기억을
다시 무의식 안으로 구겨 넣기 위해서,
도망치는 마음으로 잠깐 가 본,
테레진에서 가장 가까운,
아직 외부 관광객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체코 북서부 "보통의" 도시다.
체코어 mě는 '므녜',
ř는 '르쥬'로 발음되고,
(Dvořák 이 그래서 드보"르작"이다)
p, t, k, c는 한국어 경자음과 더 유사해서
Litoměřice는
"리또므녜르지쩨"에 가까운 발음인데,
구글에 "리토메르지체"로 나오길래 찾아보니,
체코어문학 전공자들이 만든
체코어 한글 표기"법"이 그렇다.
된소리 혐오증은
외국어 한글 표기법에 널리 퍼져 있으니
이제 그러려니 하지만,
ř는 '르즈'로 표기하면서,
mě는 '므녜', '므네'로 표기하지 않는 게,
음성학적으로 보나,
음운론적으로 보나,
뭔가 일관적이지도 논리적이지도 않다.
하지만 whatever
여기서도 그냥 "법대로"
"리토메르지체"로 표기하기로 한다.
리토메르지체는 아래 지도에서 보듯이
체코 북서부에 위치하고 있고,
프라하에서 간다면,
버스로 약 1시간 소요되는 곳이다.
만약 프라하에서 리토메르지체에 간다면,
가는 방법은
프라하에서 테레진 가는 방법과 동일하다.
똑같은 시외버스를 타고 가다가
좀 더 일찍 내리면
테레진,
5분 더 가서 종점에서 내리면
리토메르지체다.
사실 내가 테레진 가까운 도시 중에
굳이 리토메르지체로 "도망친" 것도
프라하-테레진 시외버스 갈 때 본
그 버스 종점이 리토메르지체였기 때문이다.
테레진과 리토메르지체라는
두 개의 소도시를 둘러보고,
프라하로 돌아올 때 나는
리토메르지체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리토메르지체 - 프라하" 버스를 탔는데,
메모해 놓은 것을 보니
비용은 편도 90코루나(약 5천원)이었고,
운전기사에게 직접 표값을 지불했던 걸로
기억한다.
리토메르지체에서 프라하까지는
시외버스와 기차를 이용할 수 있고,
리토메르지체는 보통의 지방 도시처럼
터미널과 기차역이 바로 옆에 붙어 있다.
나처럼
유대인 수용소 도시 테레진에서
리토메르지체에 갈려면,
테레진 중앙광장 서쪽에 있는
일반 버스정거장에서
1시간에 1대꼴로 있는 버스를 타면 된다.
[테레진 중앙광장엔
일반 버스정거장이 여러 개 있는데,
시외버스도 목적지를 잘 찾아서 거기서 타면 된다]
그냥 시내버스 같이 생긴
그 시외버스를 타고 5분 정도 가면 나오는
두 번째 정거장이자
마지막 정거장이 바로 리토메르지체다.
요금은 테레진에서 리토메르지체까지 편도로
겨우 10코루나(약 5백원)이다.
테레진에서 버스를 탄 후
잠시 후
라베(Labe) 강(독일어 '엘베' 강)에 가까워지면,
강 건너 전형적인 유럽 구시가,
즉,
긴 수평 성벽과
높은 수직 첨탑,
알록달록한 색의 고풍스러운 건축들이 보이는데,
그게 너무 예뻐서,
아픈 역사의 흔적을 체험한 다크 투어리스트에서
예쁜 거 보러 유럽 구경 온 그냥 투어리스트로
모드가 갑자기 전환되면서,
테레진의 비극에 굳어 있던 마음이 부드러워진다.
테레진은 좀 더 짧게 둘러보고,
좀 더 일찍
리토메르지체로 건너올 걸 그랬다.
사실 대외적 관광지로는,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체코를 방문하는 유럽인들에게는,
테레진이 리토메르지체보다 더 많이 알려졌고,
프라하에서 가는 투어도 훨씬 많지만,
체코 내부적으로 봤을 때는,
그 위상이 좀 다른 것 같다.
우선 행정상으로
리토메르지체가
테레진보다 더 중요한 곳이다.
우리의 “도” 정도에 해당하는 체코 북서부
Ústecký kraj (우스티 크라이)
[지도 주황색]에서
우리의 “군” 정도에 해당하는
okres Litoměřice (리토메르지체 오크레스)
[지도 빨간색] 안에
11개의 시(Město)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테레진,
또 다른 하나가 리토메르지체이며,
명칭에서 드러나듯이
리토메르지체 “시”(Město)는
리토메르지체 “군”(Okres)의 행정 중심이다.
리토메르지체는
과일, 특히 포도 재배에 좋은
따뜻하고 온화한 기후로
17-19세기 체코가 대외적으로 보헤미아이던 시절,
“보헤미아의 정원(Zahrada Čech)”,
심지어
“보헤미아의 천국(ráj Čech)”이라고까지 불렸던
지역의 일부이다.
이런 거창한 별칭에도 불구하고,
체코 바깥 사람들에게
이 도시가 잘 알려지지 않은 건,
우선,
체코에서 유럽 전체로 범위를 넓히면,
이 도시가 가진 특이점이 평범한 것이 되어,
다른 "유럽 경쟁자들"에 비해
인지도가 낮은 것 같다.
즉, 리토메르지체는
큰 전쟁이나 혁명, 개혁, 자연재해 같은
유럽의 특별한 역사적 사건의 주배경이 아니었고,
그 나름 특별한 지리적, 문화적 특징도,
따뜻하고 온화한 기후의
수백 년 된 다른 유럽 도시들과 비교하면,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영어로 치환할 단서가 좀처럼 잡히지 않는,
복잡하고 긴 이름을 가져서,
기억하기 어렵다는 것도 중요한 이유인 것 같다.
이 기억하기 어려운 복잡한 이름은
Lutomir(루토미르), Litomir(리토미르)라는
사람 이름에서 나왔으며,
여기에서 lut-, lit-는 “광폭한, 엄격한”의 의미이고,
(참고로 폴란드어 luty(2월)에 이 어근이 남아 있다.
즉, 폴란드인에게 2월은 광폭한 추위의 달이다.)
mir는 러시아 우주정거장처럼
“평화”라는 뜻이다.
그렇게 “광폭하지만 평화로운 자”라는 뜻의
리토미르 또는 루토미르라는 사람(들)의 땅이었던
리토메르지체(Litoměřice)에는
석기시대부터 인간이 거주했던
고고학적 흔적이 발견된다고 하는데,
이름으로 봤을 때,
그리고 실제 기록으로도,
본격적인 역사는
최소한 8세기부터 이곳에 살았던
슬라브인들로부터 시작되었다.
독일어 이름 Leitmeritz (라이트메리츠)도
체코어 Litoměřice (리토메르지체)를
독일어식으로 바꾼 것에 불과하다.
참고로 오랫동안 게르만족의 영향을 받은,
체코, 폴란드, 슬로바키아 등의
서슬라브(West Slavic) 지역의 지명에는
보통 대외적으로 불리던 독일식 이름도 따로 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절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군사 도시인
테레진(Terezín)이
“마리아 테레지아의 도시”라는 의미의 독일어
Theresienstadt라고 먼저 불리다,
나중에 체코어식으로 바뀐 걸 생각하면,
게르만족의 도시인 옆동네 "테레진"에 비해
"리토메르지체"는
그 태생이 체코인의 도시인 거다.
역사적으로 봐도
리토메르지체는
테레진보다,
그리고 웬만한 체코 도시들보다도 훨씬 더 오래된,
체코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다.
9-10세기 리토메르지체는
체코 프르세미슬 왕조(Přemyslid dynasty, Přemyslovci)의 지배 하에 들어가고,
현재 대성당이 있는
돔 언덕의 성벽이 그때 처음 생겼다고 한다.
그 후 11세기 "리토메르지체"라는 명칭이
처음 역사에 등장했고,
13세기 초 체코 왕의 공인을 받아,
체코 도시로서 본격적 역사가 시작되었으며,
14세기 중세 체코의 전성기
카렐 4세(Karel IV) 또는
카를 4세(Karl IV, Charles IV) 시기에
특히 발전했다고 한다.
하지만 15세기부터 체코는
루터의 종교개혁보다 1세기나 앞서
종교에서 체코어 사용 등을 추구한
민족주의 종교개혁자들인
프로테스탄트 신교도 후스파(Hussite)와
기존의 가톨릭 구교도 사이의
갈등과 대결, 전투가 끊이지 않았고,
17세기 프라하 근교
백산 전투(the Battle of White Mountain)에서
체코 민족주의 프로테스탄트가 패하면서
그 세력이 약해지자,
기존의 구교인 천주교와
체코 내 종교 전쟁에서 구교의 선봉이었던
게르만인의 영향이 강화되었다.
이때 체코 북서부 리토메르지체도
새롭게 천주교 교구(diocese)가 되어,
현재 리토메르지체 교구는
체코 내 2개 대교구 산하 6개 교구 중 하나로서
체코 가톨릭에서 중요한 지역이고,
게르만인들의 영향으로
언어적, 문화적으로 오랫동안 게르만화되어,
현재 남은 리토메르지체의 건축도
매우 독일적, 오스트리아적이다.
체코 지도 사이트 mapy.cz에서 캡처한
아래 지도의 붉은 선 안 쪽이
리토메르지체 구시가(Old town)이고,
그 붉은 선 경계 오른쪽 아래
내가 이 포스트 소제목 번호1을 붙인,
기찻길 옆에 있는 하늘색 표시가
기차역과 시외버스터미널이다.
지도에서도 보이듯,
리토메르지체 버스터미널에서 내리면
바로 큰길 건너에 구시가가 있다.
길을 건너서 "길다"라는 의미의
"들로우하(Dlouha) 길"을 따라 걸으면
이제 흔한 듯 흔하지 않은
유럽 구시가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그럼 이제 내가 2-3시간 머물렀던
체코 서북부 중심도시 리토메르지체를 둘러보겠다.
위 지도에서 붉은색으로 표시한 숫자 1-8은
이 포스트의 소제목 번호이다.
리토메르지체 중앙광장은
미로베 광장 (Mírové náměstí, Mírové Square)이라 불리고
여기서 미르(Mír)는
체코어로 "평화"라는 의미다.
광장은 동서로 긴 직사각형 모양인데,
남북으로는 75-90미터,
동서로는 180-195미터로 매우 크다.
그런데 광장을 주차장으로 사용하기로 합의했는지,
자동차가 빼곡히 주차되어 있어서,
실제 크기보다 작게 느껴졌던 것 같고,
꽤 속도를 내며 자동차가 지나다녀서
광장에 서 있기가 좀 불안하기도 했고,
사진을 찍으면 꼭 자동차도 함께 찍혔다.
이 광장에는 중세부터 그 역사가 시작된
고딕 양식 기반의 건축들이 많은데,
사람들이 계속 거주하는 고딕 건축으로는
체코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들이라고 한다.
미로베 광장 동남쪽 입구에 있는
모든 성인 성당(Kostel Všech svatých, All Saints Church)은
13세기 초 처음 그 존재가 기록된,
리토메르지체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이다.
역사가 오래된 만큼
로마네스트, 고딕 양식 등
다양한 건축양식이 덧붙여졌고,
가장 나중에 덧붙여진
18세기 바로크 양식의 외관과 인테리어 때문에
(둥근 초록 지붕과 반입체적 벽면의 장식이
바로 그 바로크인 것 같다.)
언뜻 보면
그렇게 오래된 성당 같이 안 보인다.
이 성당을 지나면,
자동차가 잔뜩 주차된 거대한 광장이 나타나는데,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광장 동쪽의
구 시청(Stará radnice, Old Town Hall)이다.
16세기 르네상스 건축으로
리토메르지체에서 가장 오래된 르네상스 건물이다.
(대칭적 평면 지붕 장식,
아래쪽의 로지아와 아케이트, 둥근 아치형 장식이
르네상스 건축적 특징인 것 같다.)
현재 시청은 광장 남쪽 건물을 옮겼고,
이 구 시청 건물은 지역 박물관으로 사용된다.
이건 구 시청을 포함한 광장 동쪽 풍경.
직사각형 광장의 남쪽은 더 길고,
눈에 띄는 특이하고 예쁜 건축도 더 많은데,
사진발만 잘 받는 게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그리고 현재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건축들이다.
알록달록한 건물들 사이 흑백 건물인
검은 독수리 저택(Dům u černého orla, Black Eagle House)
또한 16세기 르네상스 건축으로
검정 바탕의 벽면에 흰색으로 장식된
스그라피토(Sgraffito)가 특징적이다.
현재는 호텔이다.
음식 저장 공간으로 그리고
화재와 전쟁 때 대피소로 쓰기 위해
리토메르지체 지하에 만든,
중세식 창고와
카타콤(지하비밀통로)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이 건물 지하에 있다고 하는데,
6, 7월에는 그 일부를 일반에게 개방한다고 한다.
(자세한 정보는 아래 링크)
거기서 좀 더 걸어가면 보이는
광장 남쪽 중앙의
지붕 위에 성배 모양 전망대가 달린,
성배 저택(Chalice house, Dům Kalich)
또는 쿠폴라 저택(Dům pod Bání)은
신 시청(Radnice)이다.
아니나 다를까 여러 가지 깃발들이 달려 있고,
둥근 아치 사이에
RADNICE(시청)라고 쓰여 있다.
시청 지붕의 성배 모양 전망대는
여름 시즌(5-9월) 매일 10:00-16:00,
겨울 시즌(10-4월) 평일 13:00에 입장 가능하며,
입장료는 2022년 7월 현재
일반 80코루나(약 4천원),
할인 50, 30코루나.
그 옆으로 계속 다양한 모양과 높이, 색채의
중세 건축들이 계속 이어진다.
그 광장 남쪽 건축이 끝나는 곳에서
광장 서쪽 건축이 시작되는데,
직사각형 광장 서쪽은 길이가 좀 짧다.
아래 사진에 보이는
광장 서쪽 중앙에 있는 붉은색 건물은
전면의 머리 장식에서 이름을 딴
다섯 아가씨 저택(dům U Pěti panen)인데,
리토메르지체에서 가장 중요한
18세기 바로크 건축 중 하나라고 한다.
아무튼 아담하지만 좀 특이하고 예쁘다.
거기서 다시 오른쪽으로 돌면
광장 북쪽 풍경이 펼쳐진다.
광장 북쪽에서 가장 유명한 건물은
마하 도서관(Knihovna Karla Hynka Máchy)으로,
아래 사진 오른쪽에서 두 번째 건물이다.
그밖에는 다들 상업적 용도로 쓰이는 건물이다.
하지만 다들 좀 달라서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그리고 거대한 미로베 광장 중앙에는
페스트로 많은 사람들이 사망한 후
17세기 바로크 양식으로 만든
역병 기둥(Morový sloup, Plague column)이 서 있다.
유럽에 가면 꽤 자주 볼 수 있는 거라
2020년 1월에 볼 때는 큰 감흥이 없었는데,
이제
코비드 19라는 역병의 시대를 살고 나서 보니,
생존함에 대한 감사와
건강한 미래에 대한 기원을 담은
이 기둥이 좀 특별해 보인다.
(동영상: 리토메르지체 미로베 광장)
미로베 광장 남쪽의
검은 독수리 건물 옆으로 난 길
마하 계단(Máchovy schody)으로 걸어가면
체코 현대시의 창시자로 간주되는
19세기 낭만주의 시인 마하(Mácha)의 동상이 있다.
프라하에서 태어난 마하 동상이
리토메르지체에 서 있는 건
그가 25살의 나이로 독감으로 요절한 장소가
바로 이곳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동상 양쪽으로는 좁은 산책로가 있어서
서쪽에는
호세 리잘 파르카니(Parkány José Rizala) 길,
동쪽에는
리토메르지체 파르카니(litoměřické parkány) 길이 있는데,
내가 갔던 2020년 1월에는
마하 동상에서
좀 더 긴 동쪽 산책로
리토메르지체 파르카니까지 직접 연결되지 않아서,
그런데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 잘 몰라서
그냥 멀리서 보기만 했는데,
산책하기 좋은 길처럼 보였다.
리토메르지체에 머물 시간이 조금 더 있었으면,
아마 난 이 전망 좋은 산책로에서
기꺼이 그 귀한 여분의 시간을 보냈을 거다.
아래 사진에서
그 동쪽 산책로 멀리 보이는,
두 첨탑이 달린 붉은 바로크 건축은 18세기
예수회 성모승천 성당(Kostel Zvěstování Panny Marie, Jesuit Church of the Annunciation)으로
현재는 공연이나 전시를 하는 공간이라고 한다.
서쪽 산책로
호세 리잘 파르카니(Parkány José Rizala) 길은
낡은 혁명 기념비 같은 석상이 버려진 듯 방치된
서쪽 끝이
철창으로 막혀 있었는데,
그 산책로 난간 남쪽으로
예쁜 시골 마을 풍경이 펼쳐진다.
그리고 그 난간에서 멀리 성당과 집들도 보이길래,
그쪽으로도 올라가 봤다.
그 성당이 있는 리토메르지체 남서쪽 동네는
돔 언덕(Dómský vrh, Domehill)이라
불리는 지역이고,
멀리 보이던 성당은
성 스테파노 대성당(Katedrála svatého Štěpána, Saint Stephen's Cathedral)이다.
원래 이 자리에는 11세기부터
로마네스크 양식의 작은 성당이 있었다는데,
리토메르지체가
17세기 천주교 교구가 된 후
대성당이 필요해지자
당시 유행하던 바로크 양식으로 새로 지었고,
50미터 높이 종탑은 19세기에 덧붙여졌다고 한다.
종탑에 올라 리토메르지체 전경을 볼 수 있고,
유료 입장이다.
그 밖의 구시가 안의 골목을 그냥 걸어보면,
구불구불한 작은 길들과
높이, 두께, 모양, 장식, 색깔이 모두 다른,
오래된 건축들이 아기자기 예쁘다.
구시가 북쪽으로 걸어가면
리토메르지체 성(Litoměřický hrad)이 나오는데,
13세기 후반에 건설된 고딕 건축이고,
(내가 유럽에서 본 비종교 고딕 건축은
창문이 작고 장식이 적었는데,
여기도 그렇다.)
현재는 와이너리와 컨벤션 장소로 사용된다고 한다.
그 성을 지나
그 북쪽으로 보통의 주택가를 걸어봤는데,
19세기 또는 20세기 초반에 지은 것처럼 보이는
좀 더 크고, “계획적이고”, “틀에 갇힌”,
그래서 구시가에서 본 것들보다
덜 매력적인 풍경들이 나타난다.
겨울이라 해가 금방 지는데,
체코는 어느 도시에 가나
가로등이 어두워서,
해가 지면 지지대 없이
제대로 된 사진을 찍기 어렵다.
그렇게 이제 사진찍기를 그만하고,
떠날 시간이 왔다.
리토메르지체에서 버스를 내릴 때
18:30에 프라하 가는 버스가 있는 걸 봤는데,
혹시 몰라서
6시가 되기 전에 버스터미널로 갔다.
이렇게 나는 2020년 1월 어느 날,
3시 30분경부터 6시경 까지
약 2시간 30분 리토메르지체에 머물렀는데,
중요한 장소들 천천히 둘러보고,
덜 중요한 장소들도 천천히 걷다 보니,
그 시간이 금방 다 가버렸다.
나에게는
그 2시간 30분이 좀 많이 짧았다.
하지만 어쩌면 바로 그래서,
그러니까 좋은 첫인상,
작고 예쁘고 깔끔한 도시라는 느낌에,
시간이 없어 구석구석 다 둘러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더해져서,
그리고 뭔가 내가 알지 못한
"대단하고 흥미로운 사연"을
가진 도시일 것만 같은 호기심이 더해져서,
"제대로 한 번 더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기분 좋은 미련을 품고
리토메르지체에서 돌아왔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아쉬움을 안고 프라하로 돌아온 후,
다른 체코와 슬로바키아 도시들,
그리고 이웃 유럽 도시들을 가느라,
결국
리토메르지체에 다시 가지는 못했는데,
나중에
수용소 마을 “테레진”을 검색하다 보니,
테레진뿐 아니라
1944-1945년
리토메르지체 서부에도
라이트메리츠 수용소(Leitmeritz concentration camp)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흔적이 남아 있지 않은
이 수용소에서는
전쟁 말 주로 무기 생산의 노동을 했으며,
폴란드, 소련, 유고슬라비아, 체코 등에서 온
슬라브족이 대다수였던 수용자들은
살인적 노동 강도, 기아, 영양실조, 질병 등으로,
그리고 거의 끝까지 버틴 사람들도 결국
죽음의 행진(Todesmarsch, Death march)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아마도 전쟁이 길어지면서
전쟁을 유지하기 위한 노동력이 더 필요해지니,
내가 테레진에서
굳이 리토메르지체로 갔던 것과 같은 이유로,
나치도 "가까운" 리토메르지체에
수용소를 추가로 만들었던 것 같다.
새 수용소에 공간이 부족해서,
테레진에 수용된 어떤 수용자들은
리토메르지체 수용소까지 매일
7Km 거리를 걸어서 출퇴근을 해야 했다고 한다.
그렇게 테레진의 아픈 과거의 암울한 기운을
떨치기 위해 도망갔던
예쁜 도시 리토메르지체에도
알고 보니 비슷한 암울한 과거가 있었다.
하긴 5-7미터 떨어진 이웃 마을에
그런 어마어마한 국가폭력의 과거가 있었는데,
그 옆 동네에 비슷한 일이 없었으리라는 생각은
너무 순진하고 어리석은 것 같다.
초면인 도시 테레진이나
오시비엥침에 나치 수용소가 있던 건,
원래 그걸 알고 가서 그런지,
주변에 딱히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 없어서 그런지,
거기에서 고통받은 사람들에게는 마음이 가도,
도시 자체에는 아무 느낌이 없었는데,
직접 보고 느끼면서 경험한
아는 도시,
오랫동안 사람들이 살던 그 도시,
오래된 아름다운 것들이 가득한 그 도시
레토메르지체에
알고 보니 그런 아픈 과거가 있다고 생각하니,
그걸 견딘 그 도시 자체가 뭔가 좀 짠하고,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서 있어도 안쓰럽다.
아무튼 그렇게 나는
결국 아픈 역사로부터 완전히 도망치지 못했다.
인간은 누구나
타당한 이유나 마땅한 근거 없이
다른 인간을 미워하거나 싫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미움"은
감정에 머물러야지,
행위가 되면 안 되는 것 같다.
개인 차원에서도 그렇고,
집단, 사회, 국가 차원에서는 더 그렇다.
누군가에게 이미 일어난 일은
잊는다고 잊을 수 없고,
묻어버린다고 묻을 수 없고,
도망친다고 도망칠 수 없고,
없는 척한다고 없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