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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oga Jan 01. 2023

대답할 줄 아는 것도 능력

(사진 출처: https://www.inc.com/peter-economy/create-culture-of-responsibility.html)



1. 단어의 내적 구조


2018년 상반기 자그레브에서

크로아티아어 배울 때,

몇 명이서 크로아티아어로 이야기하던 중

한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responsibility가 크로아티아어로 뭐야?




외국어를 학습할 때,

화자가 잘 알아서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어휘를

러시아어에서는

активный запас(능동적 저장고)에 있다고 하고,


자유롭게 쓰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들으면 이해는 하는 어휘를

пассивный запас(수동적 저장고)에 있다 한다.


전자를 능동적 어휘력,

후자를 수동적 어휘력이라 할 때,


나는 당시 알파벳부터 시작해서

크로아티아어를 배운 지

3-4개월 밖에 안 되었지만,

수동적 어휘력이 꽤 좋아서

처음 보는 어휘도 무슨 뜻인지 금방 이해했고,


그렇게 이해한 그 단어 구조가

내가 아는 논리에 어긋나지 않으면

처음 보는 단어도 단번에 기억해서

능동적 어휘도 빠른 속도로 늘어갔다.


내가 “언어 천재” 뭐 그런 건 아니고,


전공이 러시아/슬라브 언어학이라는

후천적 이유로 그런 “능력”을 얻은 것 같다.


우선 나는 언어학 전공자라서

단어를 보면 내적 구조를 분리하는 버릇이 있다.


만약에 내가 영어를 처음 배운다고 치면,


명사는 뒤에

접미사-ness, -ment, -ity 뭐 이런 게 붙는구나,

동사 뒤에 out이 붙으면

바깥으로 이동이나 행위의 완결을 표현하는구나,

뭐 그런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하고,


나중에 다른 단어에서도 그게 확인되면

새로운 단어를 그렇게 “수동적 저장고”에 넣고,

나중에 그 개념을 표현할 때

쉽게 머릿속 “능동적 저장고”에서 찾아 쓴다.


그런 데다가 나는 러시아어 전공자에,

대학원에서 폴란드어, 체코어, 불가리아어

제2, 제3, 제4 슬라브어로 배워서,

크로아티아어는 나의 제5슬라브어인데,

슬라브어는 서로서로 매우 많이 비슷하고,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로 프랑스어를 했고,

대학원 때 여름방학 한 달 인텐시브 독일어 수업,

그리고 라틴어 수업도

들은 적 있는 언어 덕후라,


슬라브어를 비롯한 유럽어의 내적 구조에 익숙하다.


어느 순간 우리 반 애들도

나의 그런 “능력”을 알아서

크로아티아어 단어가 생각 안 나거나 잘 모르면

나한테 직접 물어보거나

나를 쳐다보면서 영어 단어를 말했다.


그때 내가 거의 우리 반

영어-크로아티아어 인간 사전이었다.


아쉽게도 지금은 크로아티아어 쓸 일이 거의 없어서

능동적 어휘력은 완전 황폐해졌고,

수동적 어휘력은 그나마 그럭저럭 유지 중이다.



2. 대답 + 능력


다시 2018년으로 돌아가서,

그날의 그 단어 responsibility

내가 아는 유럽어에서 내적 구조가 모두 같다.


난 사실 대부분 유럽어 화자인 그들이

나에게 그 단어를 물어본 게 오히려 신기했다.


그래서 나는 대충 뭐 이렇게 대답했다.


“크로아티아어로 responsibility는
odgovornost.

odgovoriti(대답하다)에서 나왔어.
sposobnost odgovarati(대답 능력)이지.

영어도 response + ability이고,

프랑스어 responsabilité도 그렇고,  
폴란드어 odpowiedzialność도 그렇잖아!!”


표정을 보아하니 그제야 프랑스인 마레바,

폴란드인 아냐도 그걸 깨달은 것 같았다.


나는 유럽애들은 당연히

다 그걸 알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아무도 그런 걸 생각 못해본 표정이어서,

나에게도 좀 놀라운 발견이었다.




영어의 responsible은

프랑스어 responsable에서 왔다.


그건 또 “대답된”이란 의미의 라틴어 responsus,

“대답하다”란 의미의 respondeo에서 나왔고,

이때

re는 “다시” 또는 “되받아서”,

spondeo는 “약속하다, 맹세하다, 보장하다”등의 의미이다.


“책임감 있는”이란 뜻의 라틴어 단어의 내적구조가

“대답+능력”이 아닌 걸 보면,


아마도 책임감대답하는 능력으로 본 건

프랑스인들에서 시작된 것 같다.


“대답하는, 보증하는”이라는 의미로 프랑스어

responsable을 사용한 건 14-15세기라 한다.


한때 유럽 문화와 언어의 중심이었던

프랑스인들의 이러한 생각은

유럽 구석구석으로 퍼져 가서,


이탈리아어 responsabilità

스페인어 responsabilidad,

독일어 Verantwortung, Verantwortlichkeit도

“책임”이라는 단어가 “대답”을 품고 있다.


유럽 변방의 슬라브어도 예외는 아니다.


러시아어 ответственность(오트벳스트벤노스트)

벨라루스어 адказнасць(아트카즈나스츠)

우크라이나어 відповідальність(비드포비달니스트)

불가리아어 отговорност(오트고보르노스트)

마케도니아어 одговорност(오트고보르노스트)

세르비아-크로아티아-보스니아-몬테네그로어, 슬로베니아어 odgovornost(오드고보르노스트)

체코어 odpovědnost(오트포베드노스트)

폴란드어 odpowiedzialność(오트보비에지알노시치)

슬로바키아어 zodpovednosť(조트포베드노스트)


슬라브어에서 “책임”이라는 의미의 단어는 모두


대응하여, 되받아서”라는 의미의 접두사

od, ot, ad, vid에다가,

말하다”라는 의미의 어근

govor, poved, povid, kaz,

그리고 마지막에 명사 형성 접미사

nost, ność, nist, nasts가 붙어 만들어진다.


영어의 answer 처럼

대답하다”라는 뜻의 동사가  

“-에 대한 대가”를 의미하는,

for에  해당하는 전치사 za와 결합하면

책임지다”라는 의미의 동사가 되기도 한다.


그렇게

러시아어 ответить(오트베티트)

우크라이나어 відвітити(비드비티티)

벨라루스어 атве́ціць (아트베치츠)

불가리아어 отговоря(오트고보랴)

마케도니아어 одговара(오트고바라)

세르비아-크로아티아-보스니아-몬테네그로어 odgovarati(오드고바라티)

폴란드어 odpowiedzieć(오트포비에지에치)

체코어 odpovědět(오트포베데트)


“대답하다”이면서

동시에 “책임지다”가 될 수 있다.


(슬로바키아어 odpovedať, 슬로베니아어 odgovarjati의 경우 사전에서는 그 의미나 예문을 못 발견했는데, 이 언어들에서도 아마 “대답하다”가 “책임지다”를 의미할 것 같다.)


이런 유럽어 논리에 익숙해서인지

나는 질문이나 요구에 제대로 답하지 않으면서

“책임지겠다”라거나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가장 기본적인 책임도 지지 않는 사람들이

과연 제대로 책임지고

중요한 일을 실제로 처리할까 의심스럽다.


혹시 그들은 말 그대로

책임의 무게 느끼는 것만으로,

책임을 “지고”,

책임을 “통감”한다고 하는 건 아닐까?


그들이 생각하는,

그래서 그들이 실행에 옮기는

책임은 딱 거기까지인 건 아닐까?



3. 사회적 관계의 무게


한국어 “책임”은

한자어 責任으로,

꾸짖을 책”과 “맡길 임”의 결합이다.


내적 구조만 따르면

아마도 “꾸짖음을 감수하고 어떤 일을 맡는다”거나

“(타인을) 꾸짖으며 어떤 일을 맡아한다

는 것이 그 본연의 의미인 것 같다.


발음은 각각 zeren, sekinin, hantu로 달라도

중국어, 일본어, 베트남어까지

같은 한자에 기반한 표현을 사용한다.


언제 어느 나라말에서 시작된 건지

구글에 검색해봤는데 알 수 없다.


아마도 고대 중국어 아니면

근대 일본어에서 시작되었을텐데,


논어나 맹자나 그 밖의 옛날 문헌에서

책임에 대해 이러이러하게 말했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없고,


책임”을 의미하는 추상명사 responsabilité는

유럽어에서도 18세기에나 등장한

비교적 최근의 개념인 데다가


단어 안에 들어있는 “꾸짖음”이

꾸짖음을 스스로 떠안는다는 뜻이라면

중국보다는 일본 문화 같이 느껴져서,


일본어에서 시작해서,

한국, 중국, 베트남으로 전파된 게 아닌가

근거는 없지만 그냥 막연하게 추정해 본다.




아무튼 좀 더 사전을 훑어보니,

일본어, 중국어 모두

“책임 있는 행동을 하는 것”을

책임을 “(등에) 진다”고 표현한다.


그러고 보면

선행하는 요구나 질문에 대한 반응,

상호작용에 기반한 개념인

유럽어의 “책임”과 달리,


한국어의 “책임”

누군가가 혼자

등에 짊어지거나 떠안아야 할 무거운 짐,

책임자 개인의 문제로 여기는 것 같다.


그래서 마치 그것이 개인의

감정인 듯

책임감(感)”이라는 표현도 쓰고,

책임을 “통감(痛感)한다”고도 말한다.




그런데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책임은 개인만의 문제가 될 수 없고,

항상 타자와의 관계를 전제로 하는 것 같다.


어떤 타인에게도 영향을 주지 않는 일에

나는 책임을 지지 않고,

아무도 나에게 책임을 지울 수 없다.


사실 “책임”이라는 단어에서

책(責)이라는 한자의 뜻 “꾸짖음”도,

내가 꾸짖는 것이든,

내가 꾸짖음을 당하는 것이든,

보통은 사회적 관계에서 나온다.


내가 어떤 일에 책임감을 느낀다면

그건 그 일에 나 혼자만 연루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원래 나 혼자만의 일이었더라도

본의 아니게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었다면,

혹은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고 싶거나

줄 것 같다면,

나는 그 일에 책임을 느낀다.


따라서 책임을 지는 일은

단순히 혼자서 감정을 느끼는 것으로,

그냥 그 무게를 느끼는 것만으로

끝날 수 없는 일이다.


최소한 그 감정과 무게를 느끼고 있음을 

그 일에 연루된 사람들에게 표현해야 하고,

그 일에 연루된 사람의 질문과 요구에

대답해야 하고,

혹시 꾸짖음을 받으면 그걸 감수해야 한다.


그리고는

그들의 요구에 대응하는 행위를,

그리고 상황을 해결하는 행위를 해야 할 것이다.


만약 어떠한 행위로도 돌이킬 수 없는 일이라면,

최소한 질문과 요구에 대답까지만이라도 해야 한다.


물론 그것이 보기보다 쉽지는 않을 수 있다.


특히나 공직이나 이익단체에서

책임을 맡은 사람이 더 높은 지위와

훨씬 더 많은 월급을 받는 건

그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지위든 월급이든 그만큼 받았으면

최소한 받은 만큼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



4. 여러 “대답” 유형


그러면 어떻게 대답하고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슬러브어를 비롯한

내가 아는 다른 유럽어에서는

“책임”을 의미하는 단어가 많지 않은데,

내가 아는 한

위에서 열거한 단어들이 거의 전부인데,


영어에는 최소한 3개가 있다.


우리가 잘 아는 responsibility,

내적구조가 동일한 answerability,

그리고 acountability.




responsibility는 프랑스어 responsabilité를

거의 그대로 받아들이고 어미만 살짝 바꾼,

음차(transliteration), 즉 소리차용에 가깝다면,


answerability

앞에서 본 슬라브어들과 독일어처럼

프랑스어 responsabilité를 본 따,

영어 동사 answer에다가

뒤에 ability를 붙여서 의미 구조를 모방한

의미차용(calque)이다.


그 차이가 무엇인지 궁금해서

찾아보고 이것저것 읽어봤는데,

내가 이해한 걸 정리하면 이렇다.


Responsibility

우리가 흔히 이해하는 공적, 사적 “책임”에 가깝고,

“책무”, 즉 의무이기도 하다.

좀 더 추상적이고 일반화된 책임이다.


AnswerabilityAccountability

말 그대로 대답(answer)할 수 있고,

설명(account)할 수 있는 능력과 상태이다.

구체적으로 책임지는 능력이나 상태이다.


이 두 단어는 내적 구조만 보면

답할 수 있는 상태인가,

설명할 수 있는 상태 인가로 구분되지만,


어떤 질문에 대답할 수 있으면 설명할 수 있고,

설명할 수 있으면 질문에 대답할 수도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같은 상태라고 보면 된다.


만일 누군가가 일을 떠맡았다면

그들은 그 일을 해야 할 responsibility를 가지고,


그 일을 하고 나서,

그것을 어떻게 어디까지 하고 확인했는지를

대답하고 설명해야 한다면

그들은 answerability나 accountability를 가진다고 한다.


그래서 responsibility

여럿이 공동으로 질 수 있지만,

answerabilityaccountability

그 일의 담당자에게만 해당된다.


또 그래서 answerabilityaccountability

어떤 일의 사후에만 적용되지만,

responsibility는 어떤 일의 사전과 사후

모두 적용된다고 한다.




어떤 일에 관련된 단체의 책임자가

“내가 하지도 않은 일에 어떻게 책임지냐

고 억울해한다면,

그래서 아무런 죄책감 없이 형식적 사과를 한다면,

또는 부하에게 책임을 미룬다면,

그들이 말하는 책임은

answerability, accountability인 것이고,


그래도 당신이 책임자니까 책임을 지라”고

우리가 말한다면,

그러면서 그들의 진심 하나 안 담긴 뻔한 사과문과

실무자에게 책임 전가하는 모습에 분노가 치민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책임이

responsibility이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한국어 “책임”

이 두 종류의 책임을 모두 가리킨다고 느끼며,


내가 아는 유럽어에서 “책임”에 해당하는 단어들도

전자와 후자의 책임을 다 표현한다.


후자, 즉 일차적인 “대답”이 아닌

좀 더 추상화된 “대답”의 의미 때문에,


크로아티아에서 같이 공부했던 유럽어 화자들이

자기말과 다른 유럽어의 “책임”이

“대답 능력”임을 간파하지 못하고

굳이 나에게 그 단어를 물어봤던 것 같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책임을 묻고,

어떤 책임을 어떻게 져야 하는 걸까?



5. 숨은 질문에 답하기


어원을 찾다보니,

프랑스어 형용사 responsable이 처음 등장한 지

수세기 후에 명사 responsabilité가 등장했다.


아마도 성질을 나타내는 추상명사

성질을 나타내는 형용사보다

더 추상화된

더 고차원적 사고를 드러내기 때문일 것이다.


(원래 명사는 대상을 표현하기 마련인데,

추상명사는 추상적 개념을 대상화한 것이라

보다 복잡한 인지 과정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냥 “책임을 지는 상태”에 있는 것보다

(être responsable)

“책임”을 안거나 지는 것이

(prendre ses responsabilités)

더 진화되고 발전된 사회에서

가능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그 이전엔 책임자가

책임자임넵시고

특정한 일을 하는 사람들 위에 군림은 하고

권리는 누리지만,

안 좋은 결과에 책임지기보다

인생이 그러려니,

운명이 그러려니,

신의 뜻이 그러려니

사람들이 생각하게 하고 넘겼을지 모른다.


지금도 책임감 없는 뻔뻔한 이들이 그러는 것처럼.


자기가 한 일에 책임을 질 뿐 아니라,

하지 않은 일에도 책임을 질 수 있다는 생각도

마찬가지로

더 진화된 고차원적 생각이고,

더 발전된 사회에서 가능한 것 같다.


특정한 일이 일어난 후뿐 아니라,

일어나기 전에도 책임질 수 있다는 생각도

역시 매우 앞선, 고등 인간이 할 수 있는 생각이고,

앞서 나간 사회에서나 공론화 가능한 것 같다.


그럼 어떻게 하지도 않은 일에 대해,

심지어 일어나기도 전에 책임을 질 수 있을까?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는 저서에서

미국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책임은 감정이입(empathy)를 전제로 한다 했다.


특정한 일의 참여자에게 “감정이입”을 하여

그들의 입장에서 질문하고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으며,

그들처럼 생각하면,

특정한 일이 일어나기 전에도

미리 일처리 가이드라인을 만들 수 있는데,

나는 이것이 책임 있는 행동이고,

책임자의 임무인 것 같다.


그리고 혹시나 나중에 문제가 생기거나 하면

(책임 문제는 보통 나쁜 일이 생겼을 때 불거진다)

그 일에 관련된 사람들에 “감정이입”하고

공감(sympathy)”하고,

그들의 질문에 답하고,

요구에 적절하게 답하면서

문제를 풀어가거나 제대로 사후처리할 수 있는데,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책임감 있는 처신이다.


이 두 가지,

사전사후에 책임 있는 책임자가 되는 건

별개가 아니라서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후자의 경우

앞으로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역시나 관련자들에 감정이입하여,

잠재적 질문에 대답하며,

새로운 가이드라인과 지침을 만들고 계획하고,


전자의 경우

차후 문제가 발생했을 때

관련자들의 입장을 경청하면

그 문제 지점이 뭔지 신속하게 확인하고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그것이 큰 일이든 사소한 일이든

책임 있는 행동의 메커니즘은 비슷한 것 같다.




새삼 책임과 대답하는 능력을 얘기하고 싶어진 건

2달 전 일어난 참사를 처리하는

그들의 지리멸렬하고 책임감 없는

사전 그리고 사후 일처리 방식 때문이다.


그렇게 2달이 지나는 동안

비겁하게 Responsibility는 무시하고

Answerability 뒤에 숨으면서,

참사 “책임자”는 계속 낮은 위계로 내려가고,


왜 그들이 하지 않은 일에 책임을 지냐는

무책임한 말들이 포털의 댓글이 넘쳐나고 있다.


그들이 아무 일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대비하는 대가로,

혹시 일어나면 책임지는 대가로

세금으로 지불하라고 암묵적으로 우리가 동의한

자기가 미리 땡겨받은 막대한 보상에 걸맞은

사전, 사후 책임을 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책임을 다하지 않음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거다.


혹시 감정이입 같은 거 할 줄 모른다면,


관리자로서 직접적인 실무가 아닌 일에 책임진다는

또는

일어나지 않은 일에 미리 책임지고 행동한다는

고차원적 사고같은 거 할 줄 모른다면,


뭐라고 질문하고 요구하는지 듣고 싶지 않고,

엉뚱하고 뻔한 답변으로 내 위기만 우선 모면해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거라 생각한다면,


영어 단어 몇 개 섞어 애매하게 사후대책 말하면

유능하게 보일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거 책임감이랑 거리가 아주 먼 거니까,


제발 자기소개에 “책임감 있다”는

거짓말 하지 말고,


제발 많은 사람들 책임져야 하는 일을

돈 많이 준다고 덥석 맡지 말고,

보다 진화되고 발전된

고차원적 진짜 책임감을 가진 사람들에게 쿨하게

양보해 줬으면 좋겠다.


그게 그들과

권력자들에만 선택적으로 감정이입하는

또다른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사회 공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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