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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이혜 May 24. 2020

초콜릿, 그리고 빵 조각과 같은 것들

시베리아 횡단열차 여행에세이 #7



열차에서 내려 가장 먼저 만끽할 수 있었던 것은, 긴 호흡으로 차갑고 시큰한 공기를 흠뻑 들이마실 수 있단 거였다. 시간은 새벽으로 넘어가고 있었지만 이르쿠츠크의 건물들은 각자 밝은 빛을 내고있었다. 생각보다 길은 훨씬 더 밝혀져 있었다.


우리는 숙소에서 얼마 걸리지 않는 24시간 마트에 가, 내일 다시 타게 될 횡단열차에서의 식량들을 미리 사두기로 했다. 그리 크지 않은 마트였으나, 잠깐씩 정차하던 역에서 만났던 상점들의 족히 열 배 이상은 될 것이 분명했다. 사촌동생과 나는 하나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각자의 손에 장바구니 한 개씩을 들고 서로 필요한 것들을 담기 시작했다. 그 마트에는 러시아에서 유명하다고 했던 초콜릿과 티 종류들도 다양하게 팔고 있었다. 찬찬히 살펴보니 내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사 왔던 초콜릿도 조금 더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고 있었다. 이곳이 좀 더 물가가 저렴한 것 같아, 필요한 것이 있으면 좀 더 사놓아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어떤 초콜릿들을 골라 담아야 할지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등 뒤로 익숙한 문장들이 들려왔다.


“뭔 놈의 초콜릿을 그렇게 많이 담냐? 그거 한국 가서 다 선물할 거냐?”


흠칫 놀랐다. 들려오는 말은 긴 문장을 구사하고 있지만, 동시통역되는 것처럼 단숨에 알아들을 수 있는 말들이었다. 보아하니, 한국에서 놀러 온 여행객들인 것 같았다. 내 추측에는 갓 스무 살 또는, 이십 대 초반이 되는 청년들이었다. 이미 내 장바구니에도 각양각색 다양한 맛의 초콜릿들이 이미 종류별로 수북이 쌓여있던 터라, 나에게도 해당되는 말인가 싶어 내 손에 들린 장바구니에 미세한 반동이 생기고 있었다. 잠시 눈을 돌려볼까 하다, 이를 외면하고 난 마저 초콜릿을 골라 담는 일에 집중하려 했다. 그렇지만 그 뒤로 아직 끝나지 않은 대화의 나머지들이 더 들려왔다.


“선물할 거 아닌디. 나 혼자 다 먹어버릴 건디”


“이야, 무슨 그 많은 초콜릿들을 다 먹는다 하냐. 초콜릿 애호가냐?”


숨도 쉬지 않고 끊김 없이 연신 티키타카로 이루어지는 대화들을 엿들으려 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괜한 친근함이 느껴져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사실 나도, 이 여행에 와서 가장 먼저 사게 된 것이 초콜릿이었고, 가장 많이 갖고 있는 것도 초콜릿이었다. 하지만 그것에 만족하지 못해 더 많은 초콜릿들을 흔히 말하듯이 ‘쟁여놓을’ 생각이었고, 이것을 한국에 돌아가서 주변 사람들에게도 나누어줄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초콜릿이 나에게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었냐 말해보자면, 열차에서도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초콜릿 하나를 입안에 냉큼 넣어놓고 잠을 깨려 한다거나, 그 열차 안에서 만난 러시아 사람들에게도 혹시 그들이 평소에 애호하던 것일 수도 있기에 내가 산 초콜릿을 먹어보라고 건네어 본다거나, 어느 순간 내 몸에서 지루함과 나른함이 만들어낸 신물 같은 것이 올라오려 할 때면, 그 징조를 진정시켜주는 만병통치 감기약 같다고 할 수 있었다. 한 가지가 아닌, 다양한 맛 별로 담아놓고 한 조각씩 똑, 똑, 떼어내어 먹는 초콜릿 조각들은, 모두 그들의 역할을 갖고 있는 용하디 용한 종합감기약 같은 것들이었다.




한국에서도 초콜릿과 비슷한 역할을 해주는 무언가가 나에게는 한 가지 더 존재했는데, 그것은 ‘빵’이었다. 식빵처럼 포슬포슬하고 그 속의 결을 따라 찢어 먹는 것과, 스콘처럼 단단하고 잘게 부서지는 부스러기에 나머지의 조각까지 사투하며 입에 담아내야 하는 것까지. 빵은 그것들마다 각자 다른 의미를 갖고 있고, 매번 또다시 새로운 것들을 내게 가져다주었다.


내게 빵은 또 어떤 것이었냐 하면, 대학시절 처음으로 말을 트고 친분을 갖게 된 동생과의 어색함을 깨 주게 했던 것도, 서로가 빵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되고 나서부터였단 것. 서로 알고 있는 각 프랜차이즈 빵집들의 빵에 대한 특징을 읊고 나서 이에 대한 맞장구를 쳐주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나와 일정 시간을 보낸 사람들은 나를 ‘빵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정의 내리기 시작했는데, (심지어 이것이 절정일 순간에는, 나를 오롯이 ‘빵!’이라 부르던 사람들까지 생겨난다) 나는 이것이 썩 싫지 않았다. 나를 새롭게 정의 내려 줄 수 있는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의미인 것 같아서였다.


언젠가 몸이 아파 누군가가 건네는 빵을 거절한다면 그 날은 내가 정말 몹시도 아픈 것에 대해 인정하는 것이 되어 크나큰 걱정을 몸소 받아내었으며, 또 언젠가는 내가 먹고 싶어 단지 미리 사두었던 것인데, 때마침 누군가에게 그것을 나눌 수 있는 타이밍이 있어 나는 정말 맛있는 것을 나누어주는 인심 좋은 사람이 되어있었다는 것.

또 그 언젠가는 빵집에서 사계절이 넘는 시간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며, 휴가를 나온 아들이 다시 복귀하기 전 아버지와 항상 마지막으로 들려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곳, 퇴근 후 딸에게 무얼 먹고 싶은 게 있는지 전화를 걸게 되는 엄마의 물음이 있는 곳, 이러한 곳이 빵집이며, 빵집만이 갖고 있는 온전한 온기와 정이라는 존재를 알게 되었다. 심지어 그 언젠가는 빵 공장에서도 잠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는데, 그곳을 휘감는 밀가루 반죽 냄새에 내 후각은 반사적으로 들떠 그곳에서의 내 눈을 더 반짝이게 만들었고, 그러한 내 눈을 바라봐주던 사람과 난 연인이 되어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 한 순간에 일어난 일들이었지만, 그 일부의 하얗고 말캉하고 따뜻한 반죽덩어리들이 모여, 매번 나를 진짜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고, 다시 내 곁에 인연들을 데려다주었다.


아마 우리 모두에게는 이렇게 먹고 먹는 것 중, 유독 당신에게 가장 달콤하고 씁쓸했던 그 무언가가 존재할 것이며, 그것이 다시 우리를 삶의 온기로 흥건하게 만들어 주고 있을 것이었다.


무엇이 되었던 그 온갖 것들 중에, 흔하디 흔한 것들 중에, 당신을 뜨뜻하게 뎁혀 줄 수 있는 것이 존재한다면, 앞으로 우리의 눈빛도 좀 더 짙어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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