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횡단열차 여행에세이 #5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깜깜한 새벽이 도래하면, 하루 중 가장 많은 사람이 내리고 올라탔다.
난 어두운 새벽에 꼭 한 번씩은 잠에서 깨곤 했다. 사실 어딜 가나 머리만 대어도 걱정 없이 잠이 드는 탓에 여행지의 잠자리에서도 딱히 불편함을 느낄 이렇다 할 것들이 없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유일하게 잠에서 깰 때는 캄캄한 새벽이었으며, 분주하게 올라탄 사람들이 짐을 정리하고 일행들과 얘기를 하는 말소리가 열차 저 어딘가에서 맴돌아 내 귓가를 두드리고 있던 탓이었다. 지난밤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새로 사람들이 탄 모양이었다. 열차 안에는 들린 적 없던 아이들의 목소리가 계속 들렸다. 잠결에 가족들이 함께 있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오히려 그 아이들의 목소리가 나를 안심시켜주는 듯, 지난밤 두려움으로 단단히 체했던 나의 체기를 없애주고 있었다.
열차의 창문으로 환한 빛이 들고, 날이 밝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나, 난 다시 깨어났다.
새벽 내내 연신 몸을 웅크리고 잤다. 냉정의 여파 때문이었다. 밤새 계속 구석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일전의 사람들을 다시 마주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2층 자리에서 고개를 슬금슬금 내밀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식당에서의 무리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1층과 2층 침대를 정글짐처럼 옮겨 다니며 연신 오르락내리락하는 꽤 많은 여자아이들이 보였다. 한 가족이라고 하기엔 너무 많은 인원이었고, 그 친구들의 보호자로 추정되는 사람들은 왠지 그 친구들의 훈육을 맞고 있는 선생님 같았다.
내 눈은 술래를 잡는 것처럼 쉴 새 없이 그 친구들을 따라다녔다. 나와 가장 가까운 자리에 있던 생머리에 눈이 정말 예쁜 친구를 뒤쫓고 있던 내 시선이 그 친구와 마주쳤다. 그 아이는 입꼬리를 올리며 나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사촌 동생과 나는 아이들과 말을 한번 해볼 수 있는 일말의 기회 같은 것을 노리고 있었다. 사촌 동생은 핸드폰의 번역기를 켜서 아이들과 잠시 놀아도 되겠냐고 선생님들에게 건네 보였다. 돌아온 대답은, 아이들이 시끄러워질 수 있어 안된 다는 것이었다. 아쉬움이 컸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 아이들도 이미 우리가 본인들에게 꽤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눈치였다. 1층, 그리고 2층, 또는 복도 등 각양각색의 본인들 자리에서 우리를 슬금슬금 쳐다보고 있었다. 마치 정글 어딘가에서 빨갛고 단내가 가득 나는 향긋한 열매들이 주렁주렁 달린 모양새였다. 그 덤불을 헤치고 달큼한 웃음소리가 퍼져왔다.
아이들이 전부 모이니 족히 일곱 명에서 여덟 명이 되었다. 금발 머리에 인형같이 동그란 눈을 갖고 있던 아이들은 점점 우리가 있는 자리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때쯤 되니, 그 선생님들도 아이들을 막지 않았고, 여행하러 온 우리를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선생님들은 한 아이에게 뭐라 말을 하는 것 같았고, 영어를 할 수 있는 하늘색 티를 입은 꼬마 친구가 우리에게로 다가와 몇 마디를 건넸다.
“웨어 아 유 프롬?”
“하우 올드 아 유?”
우리가 답하면 그 아이는 우리의 대답을 다시 선생님들에게 바로 전해주었다.
나는 가이드북에서 간단한 러시아 회화가 적힌 페이지를 펼쳐내었다. 그곳엔 이름을 소개하는 법이 러시아어로 적혀있었다.
“미냐 쟈부뜨 혜리-”
(내 이름은 혜리입니다.)
우리 곁에 모여있는 아이들을 보며 또박또박한 한국어를 닮은 발음보다는 어색한 강세를 넣어 러시아어를 따라 하였다. 그 하늘색 티를 입은 아이에게서 ‘오와’라는 짧은 감탄사가 나왔다. 그 아이는 내가 들려준 나의 이름 두 글자를 따라 하였다. 그리고는 본인의 이름을 말해주었다.
“미냐 쟈부뜨 스웨다-”
(내 이름은 스웨다입니다.)
그 아이의 이름은 스웨다였다. 아이 중에 유일하게 영어를 할 줄 알았고, 함께 있던 친구들의 나이를 영어로 다시 바꿔 전달해주고 있었다. 여섯 살, 일곱 살, 여덟 살, 그 친구들의 나이었다. 스웨다는 일곱 살이었다. 나와 제일 먼저 눈이 마주쳤던 아이는 키라였다.
서로의 통성명이 끝난 후, 아이들은 갑자기 본인들의 자리에서 무언가를 들고 왔다. 리듬체조를 하는 모습이 그려진 노트 한 권을 쥐고 있었다. 아, 리듬체조를 하는 아이들이었구나. 나는 그 그림을 보고 흉내 내며, ‘리듬체조’인지 물었더니, 아이들은 노트 그림을 가리키며 맞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은 훈련을 위해 선생님들과 함께 가족을 떠나 그 어딘가로 이동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무언가를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곰곰이 생각하다 마음을 먹곤 아이들이 있는 자리로 갔다. 펜을 적는 시늉을 하며 노트 한 권만 달라고 했다. 알아들었는지 스웨다는 나에게 수첩 하나를 넘겨주었다. 나는 그곳에 ‘코리아 네임’이라는 말과 함께 스웨다의 이름을 한글로 또박또박 적어주었다. 스웨다는 그것을 보고, 다시 ‘오와’라는 감탄사를 내었다. 그 짧은 감탄사는 똑같이 생겼지만 각기 다른 맛을 내는 달콤한 사탕 같았다. 그 소리가 들릴 때, 난 달디 단 사탕을 한 움큼 녹여 삼킨 것처럼 행복해졌다.
스웨다는 옆에 같이 있던 친구들의 이름을 하나씩 말해주었다. 그러자 아이들도 더 가까이 모여들어 내가 적어주는 것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모든 아이의 이름을 적고, 난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왔다. 가만히 있었지만, 소란스럽게 몸이 들떠 올랐다. 마음속에서 무언가 두근대고 설레는 것이 이상하게 넘쳐났는데, 그것들이 아직 주워 담아지지 않고 있었다. 그 맘이 진정 되기도 전에 다시 꼬마들이 볼펜을 들고 찾아왔다. 보라색에 반짝이가 들어가 있는 동그란 뚜껑을 갖은 펜이었다. 그것은 내가 어렸을 적, 검정, 파랑, 빨간 볼펜들보다 아껴 쓰던 그 펜과 무척 닮아있었다. 아이들은 내 앞에 그 조그만 손을 올려놓으며 손등 위에 자기 이름을 한글로 적어달라고 했다. 나는 놀라는 표정과 괜찮냐는 뜻으로 그들의 솜사탕 같은 손을 가리켰다. 아이들은 괜찮다며 빠른 반동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꼭 내가 사인회를 하는 것처럼 아이들은 각자 볼펜 한 개씩을 들고선 내가 앉아있는 열차 자리 옆으로 줄을 서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내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아이도 있었다. 내 이름은 아이들 사이에서 마치 소문처럼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다. 낯선 사람에게 무언가 부탁한다는 생각에, 아이들이 나를 위해 가장 먼저 해주는 일은 내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 내가 적어주길 원하는 말을 꾹꾹 눌러 말해주었다. 가장 작은 키에 가장 어려 보였던 아이는 내 이름 두 글자만을 얘기하고는 긴장이 되는지 갑자기 저만치로 멀리 되돌아가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 침 한 번을 꼴깍 삼키곤 또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내가 쓸 수 있는 가장 또렷한 형태의 한글을 적어 내려갔다.
아이들이 열차에서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더 남아있는 것 같았지만, 우리는 그날이 마지막이었다. 곧 몇 시간 뒷면 이르쿠츠크 역에 도착하기에, 이미 모든 짐을 다 정리하고 처음에 받았던 침대와 베개 커버도 반납한 상태였다. 이제야 만났다는 것이, 시간이 넉넉지 않다는 것이 미처 아쉬운 마음이 들게 했다.
역에 도착할 시간이 점점 가까워져 왔다. 사촌 동생은 곧 가야 한다고 말했고, 번역기는 그 의미를 러시아어로 아이들에게 전달해주었다. 아이들도 다시 그들의 언어로 말을 했다. 어설픈 번역기의 번역체는 연신 그 말들을 담아내었다.
- ‘왜 떠나지 마세요’
- ‘당신이 더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찾을 수 없습니다’
온전하지 않은 이 말들을 바라보면서, 내가 흔히 듣고 들었던 가장 완벽한 구실을 하고 있던 때의 문장들보다 더 맘이 아린 무언가가 나를 덮쳤다.
열차는 점점 속도를 낮추었고, 바깥에는 열차에 타기 위한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내가 있던 자리에서 복도를 지나 다시 내릴 수 있는 문이 나올 때까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우린, 그렇게 이르쿠츠크에 도착했다.
2019년 겨울,
열흘 동안의 러시아 시베리아 횡단열차 여행기를 담은 에세이가 계속됩니다.